가족이라는 존재.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저만 해도 가족들에게 차마 말할 수 없는 크고 작은 비밀이 있지요. 여기 서로 고민을 가진 상태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짧은 여정이 시작됩니다. 분명 짧은 며칠인데 이토록 그들은 그동안 그 길을 거닐 수 없었던 것일까요? 영화 '니나 내나'입니다.
예식장... 한 여인이 쉬는 틈을 타 동료들과 얘길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 미정 입니다. 대화를 나누던 상황에서 문 밖으로 누군가가 보입니다.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동생 수완 같습니다. 일이 끝나고 한 무녀의 집으로 갑니다. 신내림을 받겠다고 우기지만 오히려 무당이 말리며 그를 돌려보냅니다. 폐업을 앞둔 사진관에는 둘째 경환은 만삭인 아내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며칠 후 카페로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고 카페 주인은 가게 이름을 어떻게 할 거냐고 합니다. 그냥 쓰던 대로 하자는 얘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셋째 재윤... 그럭저럭 알려진 SF 작가입니다만 가족들에게 뭔가 숨기고 있습니다. 얼마 전 단골 카센터 아들과 몸싸움으로 병원에 입원 중인 아버지 포함 그래 봤자 네 식구인데 이들에게 뭔가 숨기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지가 왔습니다. 엽서 한 장에 꾸불꾸불 한 줄로 쓰인 누가 보기에는 성의 없이 쓴 것 같은...
"아들아, 너무 보고 싶다. 엄마가..."
영화 '니나 내나'는 이렇게 삼 남매가 어머니를 찾으러 진주에서 파주로 떠나는 여정을 다룬 영화입니다. 전형적인 가족영화이며 로드무비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 숨겨진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영화는 조금 더 시간이 경과되어서야 모든 실마리를 관객에게 던져 줍니다. 스키장에서 일하던 동생 수완은 눈보라가 치던 외딴 간이 숙소에 폭설로 고립되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억울한 죽음에 무기력하고 있을 때 소식 없던 어머니가 찾아와 아들의 보상비만 받아내고 사라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이 어머니를 좋게 볼 이유는 없었던 것이죠. 겨우 찾아낸 주소로 찾아간 곳에는 허름한 칼국수 집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몰랐습니다. 낮에 다시 찾아온 이 칼국수 집에는 슬프고 안타까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말이죠.
명필름 영화학교 (현재는 '명필름랩') 출신인 이동은 감독은 영화 '환절기'로 자신을 알렸으며, 두 번째 작품 '당신의 부탁'으로 아주 특별한 모자지간이 이야기를 담기도 했습니다. 그의 영화를 보신 분이면 아시겠지만 의외로 시나리오가 탄탄합니다. 제가 작년 '당신의 부탁'을 볼 때만 해도 몰랐던 사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그래픽 노블의 영화화이죠.
그래픽 노블이라는 게 물 건너 미국의 DC나 마블의 이야기만 생각했습니다. 만화로 만들어진 원작은 소설의 영화만큼이나 쉬워 보이지 않지만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만화와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이 다를 경우 자신이 보여주려는 의도와 잘못 해석될 수 있기에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기왕이면 만화나 소설의 원작자가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이 동일하면 금상첨화인 것이죠. 이동은 감독은 자신의 파트너인 정이용 씨와 세 개의 그래픽 노블과 영화화를 시도했었습니다. '환절기', '당신의 부탁'은 결과물이며 세 번째 결과물인 '니나 내나'를 관객에게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죠. (참고로 '당신의 부탁'은 소설-그래픽 노블-영화 순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스포일러라서 자세히 묘사할 수 없지만 (물론 원작 만화를 읽으신 분은 제가 말 안 해도 아실 겁니다.) 이 영화에서는 칼국수집의 비밀과 셋째 재윤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입니다. 하지만 '뜨악'하고 놀랄 정도의 반전이나 결정적인 사건은 아닙니다. 실제로도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흘러나오던 재윤의 폭탄선언이었고 나머지 미정과 경환은 몰랐던 것이죠. 아니, 경환은 이미 알고 있었다고 재윤에게 말합니다. 어머니가 왜 아들의 돈만 들고 사라졌는가에 대한 이유도 이후에 등장하죠. 물론 그 이유가 정당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여전히 그들에게는 매정한 엄마였으니깐요. 하지만 비밀이 밝혀지며 어머니를 이해하는 계기가 됩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으로만 이 이야기가 그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미정의 철부지 딸 규림은 아버지 없이 어떻게 자랐는가에 대한 상황과 세 남매의 아버지인 남길은 어쩌다 카센터 아들 현중과 몸싸움을 했고 이들의 갈등은 어떻게 봉합되었는가에 대한 비밀도 밝혀집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어머니 유골이 도난당하는 어쩌면 이 영화에서 큰 사건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탄탄한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로 총출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칸의 남자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의 이 영화에 출연해 송강호 씨나 다른 배우들만큼 큰 존재감을 지닌 장혜진 씨가 이 작품에서는 삼 남매를 책임지는 인물로 등장하며, '미생'의 빌런 상사 성대리와 최근 드라마 '국민 여러분'에서 사기꾼 출신의 국회의원 후보 정국(최시원 분)과 대립하면서도 신사적인 매너를 보여준 상진 역으로 등장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태인호 씨가 둘째 경환으로 등장합니다. 독립영화계의 떠오르는 신인인 이가섭 씨는 비밀 많은 막내로 등장하여 이들과 대립과 화합을 이루는데 중요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이동은 감독, 배우 태인호, 배우 이가섭 (좌측부터)
감독도, 배우들도 대부분이 부산권 출신들이기에 사투리 문제라던가 배경인 진주를 담아내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장소를 로케이션 장소로 정해 감탄했다는 관객도 보였으며 미묘한 차이지만 진주와 부산, 마산 등에서 보이는 사투리의 차이를 지적한 예리한 관객들도 보였죠.
가족의 화합을 이야기하던 이동은 감독은 최근 네 번째 그래픽 노블 '요요'를 내놨는데요, 그가 이야기하던 가족의 화합을 이번 작품 '니나 내나'와 어쩌면 언젠가는 극장에서 보게 될 '요요'에서도 유쾌하지만 감동적으로 그려지지 않을까 기대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