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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씨네 Sep 21. 2024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 & ’새벽의 모든‘

미친 현대인들의 노래. 나는 그래도 미치지 않았어.


번아웃
어떠한 활동이 끝난 후 심신이 지친 상태. 과도한 훈련에 의하거나 경기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아 쌓인 스트레스를 해결하지 못하여 심리적ㆍ생리적으로 지친 상태이다.


우리는 가슴속에 사표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매일매일이 지옥인 삶에서 번아웃이 오지 않는 게 도 이상한 일이죠. 정신병인데 정신병이 아닌 것 같은, 현대인들의 고뇌를 다룬 두 영화를 얘기해 봅니다. 도대체 세 남녀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바닷가 작은 마을. 한 여성이 출근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프랜. 출근을 해도 티가 안 날 정도로 내성적인 그에게 곧 퇴직을 앞둔 직원 캐롤을 격려하기 위한 롤링 페이퍼를 작성 중인데 생각해 보면 바로 건너편에 보이지만 딱히 많은 대화를 나눈 것 같진 않아요. 퇴임식에 조용히 조각 케이크를 들고 제자리로 향하죠. 창문 밖의 크레인이 자신에게 다가오거나, 거대한 뱀이 덮치거나, 변사체로 숲 속에서 발견되거나… 아니면 바닷가에 모닥불 대형에 그 속에 발견되거나. 그의 머릿속에는 극단적인 상상으로 가득해요. 어느 날 캐롤 후임으로 로버트란 남자가 회사에 출근을 해요. 근데 이 남자는 삶에 무감각하던 프랜에게 말을 걸어주고 있죠. 사내 메신저로 오고 간 대화가 그에게 첫 데이트로 이어집니다. 영화를 좋아하고 첫 직장이고 오리엔탈풍의 파이집이 단골이라고 합니다. 또한 로버트는 돌돌싱이라고 하는군요. 급격히 친해진 두 사람은 작은 파티에 참석하는데 ‘액션 마피아 게임’(?)에서 사람들의 환호를 받죠. 하지만 프랜은 이 모든 게 부담스러워요. 그리고 로버트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덜컥 내뱉게 됩니다.





영화 ‘죽고 싶지만 사랑은 하고 싶어‘는 삶에 찌들어가던 여인이 생애 첫사랑에 도전하는 이야기입니다. 무미건조한 삶에 소극적이지만 그렇다고 말을 함에 있어서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던 사람이 사랑을 알게 되는 과정이 기존의 멜로와 약간의 차별화를 지니죠. 프랜의 공상에는 늘 극단적인 생각이 패키지로 따라와요. 그렇다면 그를 억누르는 뭔가가 있냐 싶겠지만 그런 것도 없어요. (물론 전사는 나오지 않지만 그런 계기는 분명히 있겠죠. 어머니 전화를 안 받는 걸 보면 말이죠.) 직장생활도 평이합니다.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너무 조용합니다. 오히려 그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을 영화 속에 자꾸 심어주고 있으니 말이죠. 결정적으로 백마 탄 왕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큰 차별화죠.


‘스타워즈’의 새로운 여자 제다이로 주목받은 데이지 리들리와 정반대로 상대편 데이브 메르헤예는 그리 알려진 배우는 아니죠. 레바논 출신의 코미디언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정극을 보여주죠. 흔히 말하는 잘생긴 얼굴이 아닌 평범한 남성과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환상을 심는 듯한 선택을 제작진은 하지 않았던 것이죠. 원제는 ‘Sometimes I Think About Dying‘로 직역하면 ’나는 날마다 죽음을 생각해‘입니다. 하지만 직역이 아닌 꼬아버린 제목이란 점은 아쉽죠.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면 잠깐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어요. 하지만 지나친 망상은 해로워요. 술과 담배만 해로운 게 아니죠.



(영화의 엔딩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의 곡입니다. 복사기와 숲이 같이 공존하는 이 엔딩은 현실과 판타지의 그 어딘가 일지도 모르죠.)









후지사와는 PMS(월경 전증후군) 때문에 자주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주체 못 해 비 오는 날 거리에서 쓰러진 상태로 발견됩니다. 스스로 사표를 쓰고 여러 직장을 전전하다 과학 키트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쿠리타 과학’이라는 작은 회사로 오게 됩니다. 그의 옆자리에는 야마조에란 남성이 있는데 대답도 하는 둥 마는 둥 무기력함과 더불어 시도 때도 없이 탄산수만 마셔대죠. 알고 보니 그는 공황 장애로 발작증세가 심한 편이죠. 츠지모토와 같이 일을 했다가 그의 지인이자 회사대표인 쿠리타와 같이 일하고 있지요. 야마조에의 발작을 알게 된 후지사와 역시 그에게 자신의 병을 커밍아웃해요. 한편 플라네타륨(별자리 투영기) 상품 소개차 실내 체육관의 대형 반구에서 별자리를 보는 행사를 준비 중인데 쿠리타의 죽은 동생이 오래전 카세트로 녹음한 내용에 원고를 덧붙이는 형식으로 두 사람이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 그와 별개로 두 사람 모두 이 회사를 떠날 수도 있는 상황이기도 해요. 특히 후지사와는 어머니의 재활치료를 위해 고향에 내려가야 할 상황이고요. 밤과 낮… 그리고 그 사이 새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영화 ‘새벽의 모든’은 누군가에게는 정신병으로 보이는 두 남녀가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이겨내는 과정의 이야기입니다. 세오 마이코의 동명소설이 원작이죠. 신카이 마모토 애니메이션의 목소리로 익숙한 두 배우 마츠무라 호쿠토와 카미시라이시 모네가 만나 시너지를 이루는 작품이죠. 초반에 두 사람은 상대방의 아픔을 모르기에 우를 범하죠. 후지사와는 남들이 볼 때는 히스테리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정신병으로 말하기에는 여성들이 많이 겪는 고통이라는 점에서 남성들은 이해할 수 없죠. 반대로 야마조에의 발작과 관련해서는 후지사와는 이해하지 못해요. 이런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이래하고 오해를 풀어요. 미야케 쇼는 평범한 소재에서 소소한 감동을 줍니다. 이야기에 위기를 넣어 쓸데없이 확장시키려고 하지 않죠. 그래서 공감되죠. 보통 다른 영화는 또 다른 오해로 두 사람이 싸울만한 빌미를 제공하지만 이야기는 더 자연스럽게 이어져요.


왜 별이고 새벽일까라는 생각을 해봐요. 오래전 사람들은 지구가 돈다는 것을 몰랐고 태양은 멈추어있기에 자기중심적이라는 대목이 나와요. 별도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그것을 모르죠. 태양은 멈춰있기에 외로운 행성이기도 하죠. 외롭고 힘들어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기 쉽죠. 두 사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음식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그렇게 외톨이에서 벗어나죠. 그렇게 외로운 행성과 별들이 모여 밤이 되고 새벽이 되며 아침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들의 상황을 모두 번아웃의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삶이 고달프기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PMS에 시달리고 누군가는 공황 장애에 시달리죠.

웃기는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과거 저는 콜센터의 업무를 본 적이 있는데 정작 저는 전화를 두려워하는 전화 공포증(콜포비아)을 가지고 있어요.


구인구직 포털 알바천국이 지난해 9월 콜포비아와 관련해 MZ세대 2735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29.9%가 ‘콜포비아를 겪고 있다’고 답했다. ‘가장 선호하는 소통 방식’으로는 응답자의 61.4%가 문자나 SNS와 같은 텍스트를 꼽았다. 반면 전화 소통(18.1%)은 대면 소통(18.5%)보다도 낮은 3위를 차지했다.

(2023-02-04 동아일보)


생활 속의 정신병은 그래서 쉽게 치유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인들은 모두 정신병자이다’란 말을 자꾸 생각해 보게 되는 요즘입니다. 지난번 일탈의 영화를 소개했는데 저는 여전히 세상의 일탈을 꿈꾸는 게 아닌가 싶어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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