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감성적인 로봇이 필요해!
AI의 등장은 간편하게 영상을 만들고 화면과 음악을 대체하는 효과를 얻지만 딥페이크는 범죄에 악용된다는 논란을 받게 되죠. AI가 보이지 않는 도구의 작업이라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로봇은 실제 보이는 것이죠. 최근 아날로그 감성의 로봇 영화들이 많아졌습니다. 근데 참 이상하죠? 로봇이나 AI는 디지털의 산실인데 말이죠. 이런 반대개념이 따스함을 준다니 말이죠. 자, 이 두 편을 보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실걸요.
미국 뉴욕의 어느 집 앞. 도그는 오늘도 홀로 지내고 있습니다. 홀로 게임하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지겹죠. TV를 돌리다가 반려로봇을 파는 광고를 보게 되고 전화를 걸게 되죠. 그렇게 로봇이 그에게 왔습니다. 즐겁게 하루를 보내던 와중 해안 놀이공원으로 향하게 되죠. 다이빙도 하면서 즐겁게 놀았던 것도 잠시… 로봇이 무리를 한탓에 모래사장에 뻗어버렸고 더 이상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너무 무거웠고 무거웠죠. 다음날 구하겠노라 약속하고 다음날 바다로 오니 공원이 내년 여름 6월까지 휴장 한다는 안내문만… 출입허가증도 반려되고 철조망을 넘으려다 범죄자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사이 로봇에게는 가을과 겨울이 다가옵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바닷가… 로봇은 쓸쓸하고 외롭기만 합니다. 그러던 그에게 어미새가 찾아오고 고물상에서는 새로운 인연을 만나죠. 그런데 창밖으로 오래전 주인이 보입니다. 로봇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로봇 드림’은 동물들이 사는 도시에 배달된 반려로봇과 개의 우정을 다룬 영화입니다. 스페인에서 날아온 이 애니메이션은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라 바론의 그래픽 노블이 원작이라고 합니다. 로봇과 도그가 주인공인 이 작품은 주인공 포함 배역이름이 나오지 않으며 대사도 1도 등장하지 않지요. 말 그대로 이 작품은 로봇을 구하기 위한 주인의 필사의 노력을 이야기한 동시에 고독을 이겨내는 각자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도그는 외로움을 잊기 위해 여러 가지를 도전하죠. 썰매를 타고, 볼링도 치고 연도 날려봅니다. 그중에는 스노우 맨이나 덕 아가씨 같은 인연도 있고 악연도 있지요. 반대로 로봇은 많은 꿈을 꿉니다. 철조망을 점프에서 주인에게 가는 꿈도 꾸고 화면 프레임을 뚫고 나가 ’오즈의 마법사‘처럼 모험을 떠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차가운 고철덩어리에 불과하죠. 그러던 로봇에게 희망이 생깁니다. 어미새와 아기새 세 마리가 친구가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나온 세상에선 호텔 시설일을 하는 너구리 라스칼을 만나면서 평온을 얻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새로 받아준 너구리에게 갈 것인가, 원래 주인인 도그에게 돌아갈 것인가 결정해야 합니다. 바뀐 내 모습에 주인이 실망하지 않을까란 고민과 동시에 자신을 살려준 새 주인도 잊지 못하죠. 연인의 이야기로 대입해도 좋고 반려동물, 가족 등으로 대입해도 나쁘지 않습니다. 엔딩을 보고 나면 경쾌하고 슬프고 짠함이 묻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이 작품은 그런 점에서 어린이보다는 어른들이 공감할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혹은 좋아하던 가족, 연인,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느낌은 어떨까요? 그리고 그 고독이 지속되는 순간 새로운 친구를 만나야 할까요? 그 사람이 멀리 가게 된다면 행복을 빌어줘야 할까요? 결국 우리의 사람 사는 이야기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쌍둥이 빌딩처럼 그립지만 돌아올 수 없는 것도 있기 때문이죠.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그마한 박스가 물살에 떠내려오고 있습니다. 호기심 많은 해달이 누른 버튼에 동그란 구모양의 로봇이 기지개를 켭니다. 로줌 유닛 7134란 생소한 이 이름의 로봇은 꽃게처럼 절벽을 기어올라 숲 속으로 향합니다. 도우미 로봇이라고 소개했는데 숲 속동물들은 기겁을 하기 시작하죠. 잠시 학습모드로 들어간 로줌 유닛 7134… 아니, 그냥 쉽게 로즈라고 부르죠. 아무튼 동물들의 언어를 배운 로즈. 실수로 기러기 둥지를 건드렸고 그중 알하나가 살아남았는데 여우 한 마리가 그것을 낚아채죠. 알은 살아남았고 깨어나는데 로즈를 엄마로 인식하죠. 그렇게 아기 기러기는 브라이트빌이란 이름을 얻고 그 여우의 이름은 핑크라는 것을 알게 되죠. 그 외에도 모성애 강한 주머니쥐 핑크테일, 거위 리더 롱넥 등의 도움을 받습니다. 브라이트빌은 이제 어른으로 성장하고 날갯짓을 펼쳐야 할 상황입니다. 로즈는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것에 한계를 느낍니다. 모두가 떠나고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려는 로즈. 하지만 거대한 비행선 속의 로봇은 좀 다른 생각인 것 같습니다. 모두가 위험해질 상황에서 숲 속 친구들과 브라이트빌이 이제 로즈를 구해줄 차례입니다.
‘와일드 로봇’은 정글숲에 떨어진 로봇과 어미를 잃은 아기 기러기와 천방지축 여우, 그리고 다양한 숲 속 친구들과의 모험을 다룬 애니입니다. 감정 없는 로봇이 어떻게 사랑을 알고 친구가 되는가를 보여줍니다. 작가 피터 브라운 ‘와일드 로봇’의 첫 번째 이야기를 애니화한 작품입니다. 드림웍스의 작품들 중에 오리지널 작품이 아닌 작품들 중 하나인데 약육강식의 세상을 보여주는 조크를 거침없이 보여주는 면에서는 드림웍스지만 교훈적인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비틀기의 재미가 없어서 아쉽죠. 그럼에도 감동은 충분합니다. 로봇이 헌신하고 자신의 몸이 부서져도 희생하려는 점도 좋았습니다.
사실 피터 브라운의 시리즈의 1부 격이라 시리즈도 노릴만하지만 드림웍스가 사실상 해체 수준을 밟으며 속편이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농장으로 간 2편 ‘와일드 로봇의 탈출’과 환경오염의 이야기를 다룬 3편 ’와일드 로봇의 보호‘도 충분히 소재가 좋은 작품이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드림웍스의 이 작품이 더욱 아쉽게 느껴지죠. 이와 별개로 비슷하지만 다른 방식을 선언했던 우리나라 애니 ‘마당을 나온 암탉’과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러기와 모성이라는 공통분모 속에 헌신과 희생을 나타내는 방식이 같으면서 다르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건 분명합니다. 생김새가 다르고 출신이 다르다고 해서 가족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금속도 열을 받으면 뜨겁습니다. 사랑의 온도도 그만큼 뜨거워지는 것이죠.
기술의 발전에 모든 게 장점으로만 다가오지 않는 요즘입니다. 정반대의 방식으로 연인처럼, 혹은 가족처럼 다가온 로봇들은 그래서 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란 느낌이 듭니다. 로봇으로 이야기했지만 결국 사람의 이야기이고 하나의 사회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