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가까이 살던 집을 떠나기로 했다. 지금 사는 곳은 동대문구에 있는 1억원짜리 전세 오피스텔이다. 화이트톤에 초록색 포인트 칼라가 들어간 오피스텔. 첫 인상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인 조건을 두고 판단했을 때 나쁘지 않은 집이었다. 큰 대로변에 위치한 데다, 한밤중에도 취객들이 오가는 번화가라 오히려 더 안전했다(술집 많은 곳이 오히려 더 안전함. 다만 약간의 소음을 감수하셔야). 지난해 이런저런 이유로 새벽 3~4시까지 야근^^하곤 했는데, 밤길이 무서웠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다만, 좀더 넓은 곳에서 살고 싶다는 아쉬움이 늘 있었다. 수납공간은 부족한데 잡다한 물건이 많다보니 방을 깨끗이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 부엌과 잠자리가 멀리 떨어져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복층 오피스텔을 구하기로 마음 먹고 발품을 팔았다. 월세집에서 전세집으로 이사한 적은 있어도, 전세에서 또 다른 전세로 이사했던 경험은 없기에 챙겨야 할 게 많았다.
이 과정에서 몇가지 놀랐던 점,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있었다.
1. 당신에게 명함을 건네는 부동산 실장님, 사실 중개보조원이야...
주말 이틀 동안 벼락치기식으로 부동산을 보러 다녔다. 가능하면 중개인을 여러 명 만나고 싶었다. 각기 다른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여러 번해야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다. 명함도 꼼꼼히 챙겼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동산 중개업 조회 사이트(http://www.nsdi.go.kr/lxportal/?menuno=3063)에 들어가 이 사람들이 실제 공인중개사 자격을 갖춘 사람들인지 알아봤다.
결론은 황당했다. 내가 만났던 중개인들 중 공인중개사 자격을 갖춘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모두 중개보조원이었다.
중개보조원은 말 그대로 중개 업무를 단순 보조해주는 사람이다. 전화를 받는다든가, 서류 정리를 해준다든가 하는. 하지만 실상 이들이 하는 업무는 부동산 중개업이다. 집주인과 세입자를 연결하고, 중간에서 계약과 관련한 제반 사항들을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무자격자가 중개행위를 하는 것은 법 위반 행위이지만, 여러 명의 공인중개사와 법무사에게 문의한 결과, 이 세계에선 꽤 노말한 일인듯 싶었다. 중개업무는 보조원이 하고, 계약서 사인은 중개자격을 갖춘 대표가 하는 식이다.
이것은 마치, 뭐랄까. 간호조무사가 수술을 집도하고, 의사는 수납만 도와주는 느낌?
세입자 입장에서는 등기부등본을 제외하고는 집주인이나 해당 매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에 중개인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적지 않은 중개수수료가 지급되는 것이다. 중개보조원이 공인중개사의 명의만 빌려 영업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이라면, 애시당초에 공인중개사 시험 자체는 뭣하러 있는 것인지, 만약 사건이 터지면 공인중개 사무소는 몇달간 영업정지만 먹으면 끝이라지만, 까딱하다간 큰돈을 날릴 위기에 처한 고객들에 대해선 누가 어떻게 보상해주는 것인지...무언가 크게 잘못됐는데 모두가 손을 놓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2. 자네는 '미끼매물'을 확 물어분 것이여
강서구에 집 보러 갔을 때 일이다. <다방>앱을 보고 중개사무소에 전화했는데, 물어본 매물에 대해선 답을 안하고, 아묻따 일단 한번 와보란다. 갔다, 갔는데...아니 뭔 공단기 강사선생님인줄..부담스러울 정도로 단호한 태도, 확신으로 가득 찬 말본새가 그랬다. 그는 내가 물어보지도 않은 '입주지원금'의 개념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했다. 나는 태생부터가 호구같은 사람이라서, 그 자가 무안할까봐 중간에 끊지 못했다. 기 빨려 하직하는 줄 알았다.
설명이 끝났을 때 영혼이 반쯤 나간 듯한 표정으로 '땡스갓~'하고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중개사무소에 일하는 다른 직원을 '굳이' 대동해서 내가 '조금도 원하지 않았던 빌라'를 보여주러 다니기 시작했다...
빌라,,,더 이상은 네이버,,
홀리쉿,, 나는 복층 오피스텔 찾는다고 말했는디...재차 요청하니, "복층 오피스텔 별로, 빌라가 좋아"라는 주제의 만담이 시작됐다. 본인이 현재 복층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는데 이게 얼마나 안 좋은지에 대해 썰을 풀더니, 이제 막 신축한 빌라로 데려가서는 "너무 예쁘다"하며 말들을 주거니 받거니, 나 혼자 망부석돼서 마치 방청객처럼 그들의 동태를 지켜봤다. 셋미프리..
그게 그들의 영업방식인 듯싶다. 미끼매물, 그리고 바람잡이.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다방>앱에서 저렴하고 깔끔한 오피스텔을 보고 찾아갔는데, 막상 둘러보니 사진과는 영판 다른, 20년 된 낡고 더러운 집이었다. 어찌나 지저분한지 나는 그곳이 바퀴벌레의 주요 서식처라고
원 헌드레퍼센트 확신한다,,, 중개인에 따졌더니 다방 앱에 올라온 사진은 리모델링을 했을 경우에 나타날 일종의 상상도란다. 왜 지금 리모델링을 안 하시고? 리모델링은 계약 이후에 할 것이며 2주 가량이 소요된단다. 이건 좀 신선했다.
3. 등기부등본부터 봅시다
발품을 팔면 팔수록, 집 자체가 아니라 등기부등본을 보고 계약여부를 판단하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오피스텔을 구하러다니면서 느낀 것이 권리관계가 깔끔하지 않은 곳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었다.
원래 살던 집 근처에 내 마음에 쏙 드는 복층 오피스텔이 있다. 높은 층고, 저 멀리 잠실타워까지 보이는 시원한 뷰, 고풍스런 대리석 바닥..등을 보고 "여기가 바로 내집이다!" 싶었다. 알고 보니 아직 사용승인도 안난 미등기 오피스텔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출생신고도 안한 셈인데, 벌써부터 세입자를 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등기에 오르기도 전에, 분양도 하기 전에 세입자를 구한다고? 납득이 안 갔다.
그 이후로도 상황은 비슷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드는 오피스텔은 등기부등본이 깔끔하지 못했다. 예쁜 오피스텔은 대부분 신축이고, 신축 오피스텔은 백이면 백 신탁회사가 껴 있었다. 특약사항으로 '신탁 등기 말소'를 건다면 된다지만, 신탁원부를 떼보고 신탁회사에 이것저것 확인하는 일이 너무 리스키하게 느껴졌다. 또 어떤 집은 알고보니 건축용도가 근린생활시설이고(전세반환보증보험 가입 불가), 어떤 집은 주거용이 아니라 업무용 오피스텔(전입신고 안됨), 어떤 집은 근저당이 겁나 껴 있고...또 어떤 집은 매매가 진행 중이라서 계약금 낼 때와 잔금 치를 때 소유주가 다른 것...
그래서 나는 언제부턴가, "그 매물, 지금 보러가도 돼요?"라는 말 대신 "거기 혹시 근저당이 잡혀있나요? 신탁회사가 껴 있거나.."라든가 "집 보러 가기 전에 등기부등본부터 봐도 돼요?"라고 묻기 시작했다.
어지러운 내 책상, 포털사이트 대문에 등판
이런 조용한 블로그에 왜 갑자기 조회수가 터지나 했더니, 다음 대문에 걸려서 그랬던 것이었다. 다음 성님들 덕분에 오랜 시간 봉인됐던 관종력이 상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