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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나 Sep 27. 2020

쉐도우 스피킹 1년, 전화영어 두달, 그리고 오픽 IH

나의 영어 공부 역사


난생 처음 치른 오픽 스피킹 테스트에서 IH(Intermidiate High) 등급을 받았다. 오픽에서 가장 높은 등급 AL(Advanced Low)인데, 그 바로 아래에 있는 등급이 IH다. 시험 치를 때 참 많이도 버벅였다. 능력치에 비해 후한 점수를 받았다.


나는 영어 흑역사가 깊은 사람이다. 자신도 없고 잘하지도 못한다. 노래방에서 팝송 한곡을 땡기는 날이면 지인들이 술 깬다고 정색할 정도다. 영어 듣기 평가의 easy 모드를 듣는 것 같아 불쾌하다나.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지하철에서 웬 외국인이 길을 물었다. 이게 Go straight라든가, Turn left라고 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이 양반 가는 길이 하필이면 복잡했다. 지하철 노선을 여러 번 갈아타야 했던 게다. transfer라는 단어가 떠올랐다면 수월했을 텐데, 도저히 생각이 안 났다.


you must go out here! you have to get off this subway right now!!!


급한 마음에 손가락질하면서 외쳤다. 이 말을 받은 외국인의 제스처가 가관이었다. 그는 황당하다는듯 어깨를 으쓱하고는 눈을 크게 굴리며 okay;;; 라고 말했다.  미국 드라마 <프렌즈>에서 조이가 멍청한 말을 할 때 친구들이 짓던 그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바로 이런 표정.


 '이게 뭔 개소리야'의 내면적 표현.


이런 굴욕에도 불구하고 나는 취직한 이후에도 영어 공부를 꽤 꾸준히 했다. 나에게 아호가 있다면 아마 '존버'가 아닐까 싶다. 특히 지난 1년간은 하루에 30분 정도는 영어공부를 하려고 했다. 부법으로는 게 두가지 방식을 취했다.



1. 미드 쉐도우 스피킹



영어 스피킹 첫 공부법은 미드 도잉이었다. 미국 드라마를 보며 대사를 무작정 따라 읽는 공부법으로 유튜브에서 한때 유행했다. 교재는 주로 미드의 고전인 <프렌즈> <오피스>. 30분짜리 에피소드를 일주일 동안 반복시청며 대사를 완벽하게 숙지하는 식이다. 상황별 영어 표현, 단어에 실린 원어민들의 억양을 익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듣기 실력도 많이 좋아졌다.


다만 이 공부법에만 의존해서는 몇가지 한계점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데..


현실은 드라마와 달라서 내가 드라마에서 익힌 대사를 써먹을 수 있는 순간이 좀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블랙미러 보면서 끄적인 것,,"손목 묶으라"는 표현을 언제 쓰겠습니까


싱가폴 여행을 갔던 때였다. 커피가 주문했던 대로 나오지 않아 카운터에 설명을 해야 했. 어렵지도 않은 퀘스트였는데도, 외국인 점원이 다가오니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유창하게 쉐도우 스피킹을 했던 지난날 어디로 간 지, 버퍼링이 심했다. 문장을 조립해내는 능력은 쉐도잉과 개의 영역임을 깨달았다.


또 미드 쉐도우 스피킹에는 큰 난점이 있는데, 그것은 미드가 재밌으면 어느새 영어공부는 나몰라라 미친듯이 정주행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는 점이다. 넷플릭스엔 너무 많은 유혹이 도사린다.


2. 민병철유폰(전화영어)


내 영어 루틴에 변화를 주고 싶어 택한 것이 있으니, 바로 민병철유폰(전화영어)이었다. 요즘엔 전화영어나, 화상영어 서비스들이 많은데, 민병철유폰 커리큘럼이 가장 체계적이라는 평을 들었다. 레벨테스트 결과지를 받아보니 과연 그랬다. 내 영어 실력에 대해 꽤 상세히 진단해준다.


3개월치 수강권을 끊었고, 일주일에 3번 정도 20분 동안 통화하고 있다. 수업 커리큘럼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영자신문을 위주로 공부하고 있다. 선생님은 랜덤이다.



민병철유폰 두달째, 영어 실력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나는 여전히 외국인과 대화할 때, well, 유노윤호~하며 버퍼링과 렉이 심하게 걸린다. 다만 몇가지 점들은 확실히 나아졌다.


외국인 울렁증이 일부 해소됨.

돌발질문에 비교적 침착하게 대응.

복수/단수 표현, 적절한 시제 사용(하지만 여전히 어렵다.)

단어를 더 빨리 떠올리게 됨.

영작속도가 빨라짐.


민병철유폰 영작 첨삭






오픽시험장. 마스크 쓴 채로 시험 봅니다.


쉐도잉 1년, 전화영어 두달.


중간 점검 차원에서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의 단계에 올랐는지 알고 싶었다. 오픽 시험장에서 내가 받았던 질문은 이랬다.


자기소개

글쓰기 관련 질문 : 글쓰기 실력을 어떻게 향상했나, 무엇을 주제로 글을 쓰는가, 나의 글쓰기 습관 등등..  

TV 시청 관련 질문 :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등등..

직장 관련 질문 : 회사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대한 것, 회사의 역사, 어떻게 번창하고 있는지 등.

상황극 : 집 유리창이 깨졌는데, 집주인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할 건지.

너희나라에서 요즘 뜨는 사업 뭐니?


우리 회사의 역사요? 자기소개를 제외한 모든 질문에 경악했다. 그래도 최대한 정신줄을 잡고 가급적 지켜나가고자 했던 몇가지 포인트들이 있었다.


1)  외운 거 티나면 감점이다.


어느 정도 정형화된 틀을 갖춘 토익 스피킹과 달리, 오픽은 돌발 질문과 프리 토킹이 주가 된다. 완벽한 스크립트를 만들어 외우기보다는 브레인스토밍만 하고 갔다. '외운 티가 나는 답변'은 되레 감전 요인이 된단다. 구글에 '오픽 기출 질문'만 검색해도 지금까지 출제됐던 다양한 종류의 질문이 나온다. 각각의 질문에 대해 어떤 썰을 풀 건지 생각했는데 이게 꽤 도움이 됐다.


2)  오디오 공백을 최소화한다.


최대한 공백 없이 오디오를 꽉 채우는 편이 점수를 따기 좋다는 말을 들었다. 돌발 질문이 나오면 일단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땐 시간을 벌 수 있는 문장들이 필요하다.


um,,,Actually I have never thought about this before,,let me think 라든지

오마갓 이바~,,쏘 하드 퀘스쳔~,, I'm not so sure that I can tell you the answer even in Korean라든지

오바에바참치 액션을 떨며 생각할 시간을 벌었다.


3) 문장을 되도록 길게 늘인다.


군더더기가 없어야 좋은 문장이라고들 하는데, 영어 스피킹 시험에 있어선 좀 다른 것 같다. 단순한 문장도 복문으로 말해야 점수가 올라가는 듯싶다. what I'm trying to say~라든가, I would have to say 라든가 하나마나한 말들이 플러스 요인이라고 한다.


오픽의 이바. 눈 움직일 때 불편한 골짜기가 느껴짐.




세상을 바라보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고정형 마인드 셋'과 '성장형 마인드 셋'이 그것이다. 고정형 마인드 셋을 가진 사람들은 결과를 중시한다. "그래서 시험 점수가 어쨌다는 거야?" 과정보단 결과 자체만 따져보는 태도다. 성장형 마인드 셋은 다르다. 결과보단 성장 과정에 더 큰 가치를 둔다.


뇌과학자들이 말하길, 고정형 마인드셋보단 성장형 마인드셋이 세상살이에 더 적합하단다.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가 잘하지 못하는 것들마주칠 수밖에 없다. 결과에 가중치를 두는 사람은 쉽게 좌절하지만, 성장에 가중치를 두는 사람은 실패를 마주해도 쉽게 회복하고 다시 도전한단다.


나한테는 영어공부가 그랬던 것 같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영어는 필생의 과제와 같다. 평생 공부했지만 실력은 영 시원찮다는 점에서 영 까다로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오픽 성적이 AL로 나왔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았겠으나, 내 기준으로는 IH도 '뽀록'이므로, 내가 성장하고 있다고 믿고 만족하면서 좀더 정진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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