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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나 Oct 04. 2020

책에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

사기만하고 안 읽잖아요 솔직히

이사를 앞두고 벼락치기식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 있다. 책 정리가 난관이었다. 2년간 정기구독 서비스로 받은 책 한무더기, 친구에게서 받은 책 한무더기, 내가 구입한 책 한무더기해서 200권이 넘어간다. 집 평수를 고려하면 분에 넘친다. 마땅히 보관할 곳이 없어 책상 밑에 쑤셔놓고 잊었는데, 최근 청소하면서 그곳에 '생태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거미와 좀벌레가 보금자리를 만들고 있던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필요 없는 책은 싹 버리기로 했다.


뭐지, 이 찜찜함은...


버릴 책, 버리지 않을 책, 팔 책으로 구분했다. 하지만 막상 분류를 해보니, 버릴 책이랄 게 딱히 없었다. 대학원 교재, 시험 공부하면서 끄적인 연습장만이 자신있게 내다 버릴 수 있는 자식들이었다.


예컨대 다시 읽을 가능성이 있는 책이라면 보관할 가치가 있다. 내가 두번 이상 읽은 책은 다음 열한권이다.


김애란의 <비행운>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

한강의 <소년이 온다>

홍선표의  <내게 유리한 판을 만들라>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진중권의 <춤추는 죽음>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기리노 나쓰오의 <그로테스크>

이토 준지의 <블랙 패러독스>

이토 준지의 <소이치의 저주일기>


아직 한번밖에 안 읽었지만, 참고하거나 인용하기 좋은 책도 있다.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

니나 브로크만 & 엘렌 스퇴켄 달의 <질의 응답>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차병직 등의 <지금 다시 헌법>

장하준 등의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등등 어쩌구 저쩌구 장하준 책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대변동>

그 외 스페인어 사전, 스페인어 교재 등


아직 안 읽었지만 앞으로 읽을 가능성이 있는 책 리스트도 덧붙인다.


세계문학단편선 - 진 리스

이탈로 칼비노의 <존재하지 않는 기사>

장 아메리의 <죄와 속죄의 저편>

마사 누스바움의 <혐오에서 인류애로>

김중혁의 <뭐라도 되겠지>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성의 없는 번역 탓에 인내심이 요구됨)


여기까지 보관하고 나머지는 처분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지 못하다. 이런 변명도 가능하지 않을까. 다시 안 읽을 것 같기는 한데, 내용 자체는 좋아서 버리기가 아쉬운 책 리스트다.  


세계문학단편선-대프니 듀 모리에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

수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이자혜의 <미지의 세계>

김혜리의 <영화야 미안해>

김훈의 <칼의 노래>

김훈의 <남한산성>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이외에도 여러 목록들이 있다. 어떤 책은 페미니즘을 다루고 있어서 버리기 싫고, 어떤 책은 콘텐츠는 별로인데 표지와 편집이 잘 빠져서 버리기 싫다. 이 책은 이래서, 저 책은 저래서...



아무리 재미없는 책이라도, 버릴 결심이 쉽게 서지 않았다. 옷이나 신발을 버릴 땐 후련했는데, 책에 대해선 주저한다. 왜일까? 책이 갖는 특별함에 대해 온갖 의미를 붙일 수도 있겠지만 정직하지 못한 답이다.


책을 모으는 데는 딱히 숭고한 이유없다. 사람들은 저마다 특정 대상이나 물건에 애착과 욕심을 갖는데, 책도 그 물욕의 대상에서 열외는 아니다. 외제차를 사고 화장품을 모으는 마음으로 책을 고를 뿐이다. 내가 돈주고 사고 싶었던 건 책 자체라기보단 책이 풍기는 이미지였을지도 모른다. 풍요로운 서재를 보면서 느끼는 만족감 같은 걸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제 그 액세서리를 버릴 때가 되니 자못 아쉬운 게다(but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다. 책은 부동산이 완비되어야 모을 수 있는 것인데).  




하지만 모든 책이 허세였던 건 아니다. 공부하듯 메모하며 읽었던 책도 있고, 탐날 정도로 빛나는 문장들로 가득했던 책도 있다. 여러 변명들을 붙이기는 하였지만, 책 정리를 하면 할수록 중요한 책, 덜 중요한 책이 무엇인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책에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옥석을 가리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 아닐까. 곤도 마리에처럼 설레지 않은 책들은 모두 비워버리기로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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