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결산
내년도 사업계획을 세우는 데 앞서 올해 한일을 결산해봤다.
올해 미션 중 하나는 '직장 다니면서 대학원 졸업하기'다. 2년 전 나는, 회사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새벽 3~4시까지 야근했던 인생의 암흑기. 쪽잠 자다가 수업 들으러 대전행 KTX에 몸을 싣곤 했다. 그만큼 열정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만큼 인생이 허무했던 거다. 더군다나 논문을 준비하던 올해 초엔 닭똥같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는데 뭘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논문은 뭐랄까 RPG 게임과 같다. 레벨업을 할수록 더 강력한 몬스터가 나온다는 점에서다. 연구모형설계의 두통을 넘고보니, 설문조사의 쪽팔림이 있고 그너머엔 통계분석의 폭주가 이어지는 식. 그중 복병은 방법론이었다. 연구계획서를 제출하던 시점까지도 이해를 못했다. 코로나까지 터지는 바람에 지도교수와 원활한 소통도 어려웠다. 그 막막함 때문에 한동안 수능 시험장을 찾아 헤매는 악몽을 꿨다. 다행히 여차저차 논문 심사를 통과하고 학내 컨퍼런스에서 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하지만 또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척척석사로 만족하련다.
석사학위를 따고 달라진 게 있느냐고? 연봉이 더 올랐다든가,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했다는 해피엔딩으로 끝 맺으면 좋겠지만, 너무나 현실스럽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글이 브런치식 스타일을 따른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장했습니다' 식의 훈훈한 맺음이 있겠지만, 아무 일도 없었는데 별 수 있겠나. 아무리 의미를 생각해봐도 딱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던 해였다. CNN, NBC 뉴스를 습관처럼 보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전화영어를 꾸준히 하고 있다. 이런 나를 주변인들은 의아하게 바라보는데, 그 이유는 영어는 내게 그닥 쓸모있는 툴이 아니라서다.
내가 종사하는 직종은 '국산', '토종', '신토불이'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무언가>인데, 글로벌과는 깊은 인연이 없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영어공부에 몰두하는지도 모르겠다. 영어공부를 노동이 아니라 놀이로 인식해서다. 더군다나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계획했던 해외여행도 못 갔다. 여행욕구를 영어공부를 통해 승화시켰다.
전화영어는 올해 찾은 의외의 즐거움이었다. 내가 선택한 프로그램은 영어뉴스를 읽고 외국인 선생님과 대화하는 과정이다. 일주일에 세번, 하루를 마무리할 저녁에 이국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선생님도, 대화주제도 매번 다르다. 우연히 스쳐가는 '플라스틱한 인연'과의 대화는 뭔가, 쿨하다. 스페이스X랄지, 그레타 툰베리랄지 온갖 것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는 20분이 지나면 깔끔하게 끊는 거다. 대화가 잘 통했하는 날이라면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더이상 곱씹지 않게 된다. '먹고사니즘의 고달픔'을 단절하는 버튼이랄까. 여러분도 멘탈 헬쓰가 안 좋을 땐 한번 시도하시길.
올해 세번째로 열심히 한일. 원래 이 자리엔 '운동'이 들어가야 한다. 11월초까지만 하더라도 수영장과 헬스장을 오가며 열심히 운동했다. 코로나 3차 웨이브 이후에 완전히 망했다. 그러한 연유로, 이 자리에 운동 대신 주식을 넣어본다.
2020년 3월 코로나가 터지고 주가가 크게 폭락했다. 좋은 회사의 주식을 저렴하게 살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주식계좌를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주식은, 정말이지,, 너무 너무 재밌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초롱초롱했던 시기가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당시 내가 산 주식은 국내로는 삼성전자와 네이버, 해외에선 알파벳(구글 모기업), 마이크로소프트 등이다. 종목으로만 따지면 현재 투자 성적은 나쁘지 않다. 당시 삼성전자 주가가 4만8000원인가 했는데, 이 글을 쓰는 현재 기준으로 8만원이다.
문제는 내가 중간에 버스를 잘못 탔다는 거다. '곱버스'라는 버스를.....지금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포트폴리오, 해외주식 이딴 거 때려치우고 삼성전자에만 몰빵해서 진득하게 기다릴 걸 그랬다.
+ 올해 목표였지만 못한 일
1. 파이썬 공부 = 책만 샀다.
2. 운전면허증 = 책도 안 샀다.
3. 수영 평영 정복 = 코로나 때문에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