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관심있게 보는 유튜버가 있다. '중소기업이 낳은 괴물(중낳괴)'로 통칭되는 '이과장'이다. 그는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현실을 해학적으로 풍자하는 콘텐츠를 제작해왔는데, 최근 선보인 미니 시리즈 드라마 '좋좋소'도 그중 하나다.
드라마는 취직준비생 조충범이 직원 수가 5명에 불과한 무역회사 '정승네트워크'에 입사하면서 벌어지는 기기묘묘한 일들을 묘사한다. 예컨대 근로계약서를 이면지에 써준다든가, 사내 복지에 대해 물어봤더니 "냉장고 있음. 온수 나옴"이라는 답변이 돌아오는 막장스러운 상황들이 펼쳐진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상태도 썩 좋지 않다. 명색이 무역회사인데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이 없다. '회사 엘리트'라고 불리는 주임은 구글 번역기를 돌려 거래처와 겨우 소통하는 수준이고, 정 이사라는 사람은 직장이 PC방인양 당당하게 '월급루팡'을 시전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사장과 친인척 관계에 있는 '백두혈통'이었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조충범은 '추노(무단퇴사)'를 감행한다.
드라마는 "현실 고증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인기를 얻었다(1화 조회수가 135만건). 나 또한 좋소기업을 경험해본 적이 있고(-ed),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기에(-ing)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한편으론 여태 이런 콘텐츠가 없었다는 게 신기했다.
흔히 '오피스 드라마'라고 할 때 연상되는 것이란..
화려한 오피스룩을 한 여자주인공(현실 오피스룩은 스웨터, 청바지, 운동화)
서울 도심가에 위치한 고층 빌딩의 사옥(드라마 '미생'의 원 인터내셔널과 같은) 등등인데..
(사진 왼쪽) 드라마 속 오피스룩 (오른쪽) 현실 오피스룩
주류 미디어는 '서울에 위치한 굴지의 대기업'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설정해 그 조건이 마치 디폴트인 것처럼 묘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에 입학해야 한다는 이 나라의 '순리'처럼, 교문을 나서면 자연스럽게 '서울 도심가에 위치한 고층 빌딩의 사옥'에서 '화려한 오피스룩'을 뽐내며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될 줄로만 안다. 그러나 취직 전선에 뛰어들면 알겠지만, 대기업에 입사하는 건 소수고 나머지는 중견을 표방한 중소기업에서 존버한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주 오랜시간 동안 '공급 없는 수요 상태'에 있었다. 좋좋소의 묘미는 현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를 진짜로 있을 법한 공간에 담아낸다는 점에 있다.
나는 이게 유튜브라서 가능한 콘텐츠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류의 크리에이터들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개그맨 강유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강유미의 ASMR'는 강남역 근처를 배회하는 사이비 신자부터 메이크업샵의 개념 없는 막내까지, 신들린 경지의 생활연기를 선보이며 강유미 유니버스를 구축한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최준(본명 김해준)은 어떤가. 그는 '비대면 소개팅'이라는 코너에서 30대 느끼한 카페사장을 연기한다. 소개팅 상대와 영상통화할 때 나온 첫 마디는 '어? 예쁘다'. 공격적일 정도의 부담백배 애정표현과 반존대를 섞은 말투에서 누군가는 소개팅에서 스쳐간 구역질 나는 인연들을 떠올렸을 게다. 사람과 닮은 로봇을 볼 때 드는 거부감을 뜻하는 '불쾌한 골짜기'란 개념을 차용한다면, 이 경우엔 '유쾌한 골짜기'다. 내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과 상황을 관찰자의 시선에서 즐기는 거다.
트렌드를 선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었다. '게이트키퍼'들이다. 대중에게 도달되는 정보를 통제하는 문지기다. 유튜브 같은 개방형 플랫폼이 대세로 자리잡은 오늘날, 이들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은 자명해보인다. 그럼에도, 시대정신을 여전히 못 읽는 누군가는, 몇십년 전부터 써먹은 진부한 이야기를 성실히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