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성이 높을 수록 떨어지는 정보의 신뢰성
2013년, 한국의 취업 시장에 잡플래닛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했다.
"직장인들의 솔직한 이야기"라는 슬로건과 함께.
이 서비스는 구직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필수 방문 사이트로 자리 잡았다. 나 역시 이 플랫폼의 열렬한 사용자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여러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경험하면서, 더 이상 잡플래닛 리뷰에 높은 가중치를 주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이직에서의 경험과 강형욱씨의 논란을 지켜보며 이 플랫폼이 가진 양면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잡플래닛의 가장 큰 특징은 익명성이다. 이는 직장인들이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솔직한 의견을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익명성 덕분에 기업의 부조리나 문제점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책임감 없는 비난, 과장된 불만, 심지어 허위 정보까지 나타나곤 한다. 이는 '온라인 탈억제 효과(Online Disinhibition Effect)'와 관련이 있다. 익명성이 보장될 때, 사람들은 현실에서보다 더 과감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뇌는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는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불리는 심리학적 현상이다. 이러한 성향은 잡플래닛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수십 개의 긍정적인 리뷰보다 한두 개의 강력한 부정적 리뷰가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의사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부정적인 기업 리뷰는 긍정적인 리뷰보다 2.3배 더 큰 영향력을 가진다고 한다. 이는 기업의 이미지와 채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첫 직장을 고르는 순간, 많은 구직자들이 잡플래닛의 리뷰에 의존한다. 하지만 몇 줄의 리뷰로 한 회사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을까?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구직자의 70%가 회사 지원 여부를 결정할 때 기업 리뷰 사이트를 참고한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그중 55%가 부정적인 리뷰를 읽은 후 지원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개인의 경력 발전뿐만 아니라 기업의 인재 확보, 나아가 산업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다. 내가 일했거나, 전해 들은 크고 작은 모든 회사들은 여러모로 건실하고 조직 문화도 나름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인정하기 어려운 부정적 리뷰 몇 개에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있었다. 심지어 그중에는 이 회사와 아예 관계 없는 리뷰도 있었다. 아마도 아무 리뷰나 하나 쓰면 다른 리뷰를 볼 수 있는 정책 때문인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 역시 잡플래닛의 리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때로는 지나치게 반응한다. 대표가 의연하게(또는 한 척?) 하나 하나 댓글을 달다가 나중에는 싸우고 있거나, 직원들에게 긍정적인 리뷰 작성을 종용하거나, 심지어 허위 리뷰를 올리는 등의 사례도 발생한다. 이는 결국 정보의 신뢰성을 더욱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교과적인 해결 방법으로. 실제로 좋은 기업 문화를 만든다고 해결 될까? 솔직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무슨 짓을 해도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다. 그러니 기업 입장에서는 종용이나 허위 리뷰로 대응하는 것 외에는 해결 방법이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다고 이해가 되기도 한다.
현재 잡플래닛은 리뷰의 진실성을 검증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는 기술적, 법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철학적 문제이기도 하다. 어디까지가 '의견의 자유'이고, 어디서부터가 '허위 정보의 유포'일까?
리뷰 작성자의 익명성을 보호하면서도, 동시에 허위 리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 표현의 자유와 정보의 신뢰성 사이의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블라인드와 같이 재직자 이메일 인증을 통한 최소한의 검증 장치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AI를 활용한 리뷰 내용 분석, 실제 고용 통계나 기업 성과 데이터와의 비교 분석 등을 통해 보다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다양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잡플래닛에서는 이러한 시도들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 물론 이는 기술적, 재정적 한계 때문일 수 있지만, 플랫폼의 신뢰성과 유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잡플래닛은 우리에게 기업 문화의 투명성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했다. 하지만 동시에 정보의 신뢰성, 익명성의 남용, 부정성 편향 등 여러 문제점도 드러냈다. 이제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할 때다.
못할거라면, 리뷰는 폐쇄하는게 낫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