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n Sep 03. 2024

투자의 덫, 한 스타트업의 성장통과 착각

내가 17년간 보아온 일들

이 글은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성된 가상의 이야기입니다. 등장하는 회사와 인물들은 모두 허구이며, 실제 상황이나 특정 인물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 글은 스타트업과 구성원 누구나 직면할 수 있는 일들을 소설 형식으로 쉽게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테크펫은 반려동물 건강 관리 AI 앱으로 주목받던 스타트업이었다. 창업자 김도전과 그의 팀은 열정과 실력을 인정받아 50억 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하지만 투자 유치 후, 그들의 여정은 예상치 못한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돈이 답일 줄 알았던 순간

투자금이 입금되자 김도전의 첫 결정은 회사 이전이었다. "우리 이제 강남 진출이야!"라며 그는 직원들에게 선언했다. 매달 2천만 원의 임대료를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그를 보며, 재무 담당 박신중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새 사무실 인테리어에 들어간 비용은 예상의 두 배. 김도전은 "첫인상이 중요하지"라며 넘겼지만, 박신중의 한숨은 깊어졌다.


허세의 늪에 빠지다

김도전 대표는 법인차 리스해서 본인 전용으로 타고 다니기 시작했다. 복지를 확대하겠다고 자랑스럽게 선언한 후 사무실엔 최신식 커피머신이 들어섰다. 간식 제공은 물론 무제한 점심비 정책까지 도입했다.


하지만 이런 겉치레식 복지에 직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직원들은 앞에서는 박수를 치면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차라리 연봉을 제대로 주면 좋겠어요"라는 익명의 의견에 김도전은 배신감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이 법인차를 타고 다니는 것에는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그 사이 투자금은 빠르게 타고 있었다.


팀을 키우고, 혼란도 키우다

HR 매니저 이열정은 채용 공고를 내자마자 쏟아지는 지원서에 흥분했다. "우리가 몸값이 올랐네!" 그녀의 말에 김도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많으면 속도가 빨라질 거야"라고 김도전은 확신했다. 한 달 만에 직원 수는 두 배로 늘었다. 하지만 명확한 계획과 방향이 없는 상태에서의 급격한 인원 증가는 오히려 조직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업계에서 '일 잘한다'라고 소문난 사람을 고액 연봉으로 스카우트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조직문화가 탄탄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능력은 빛을 발하지 못했고, 기존 직원들과의 갈등만 커져갔다. "회사는 슈퍼히어로 한 명으로 굴러가는 게 아니에요"라는 어떤 팀장의 말의 의미를 김도전은 뒤늦게 깨달았다.


사용자는 어디에

제품 책임자 정완벽은 투자사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했다. "우리 앱에 소셜 기능을 추가하면 어때요? 반려동물 SNS로 확장하는 거죠!" 그의 제안에 김도전은 흥분했다.


개발팀은 밤샘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들은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바로 사용자의 목소리였다.


"우리 고객들이 정말 이런 기능을 원할까요?" 신입 개발자의 질문에 정완벽은 짜증을 냈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거야. 빨리 만들어!"


성장에 눈이 멀다

마케팅 담당 최홍보는 사용자 수 증가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번 달 KPI는 사용자 200% 증가예요. 할인 쿠폰으로 밀어붙입시다!"


그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일시적으로 사용자가 폭증했다. "우리 앱 다운로드 수가 100만을 넘었어요!" 최홍보의 보고에 임원들은 축배를 들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문제가 터졌다. 서버가 급격히 늘어난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했다. 앱은 느려지고, 자주 다운되었다. 사용자들의 불만이 폭주했다.


"해결에 몇 주는 걸립니다. 단순히 서버만 증설한다고 해결 되지 않습니다. 할 수는 있겠지만 이정도 유입을 감당하려면 서버 비용이 너무 많이 나올겁니다. 급하게  진행해서 이런 상황에 대한 고려는 높은 수준까지 고려 못했어요. 전체 구조를 상당 부분 손봐야해요." 개발팀장의 보고에 김도전은 한숨을 쉬었다. "몇 주나? 그동안 사용자들이 다 떠나겠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제품팀 데이터 담당 박관찰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사용자들이 우리 앱의 핵심 가치를 못 느끼는 것 같아요. 와우 모먼트가 없어요."


"와우 모먼트라니?" 김도전이 물었다.


"네, 사용자가 '와우, 이 앱 정말 좋다!'라고 느끼는 순간이요. 우리 앱은 그냥 평범한 건강 기록 앱일 뿐이에요. 특별한 게 없어요."


김도전은 절망했다. 그들은 사용자 유입 수에만 집착한 나머지, 정작 사용자들에게 진정한 가치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던 것이다.


지표가 이를 증명했다. 신규 가입자 중 80%가 일주일 내에 앱을 삭제했다. 실제 활성 사용자는 고작 1만 명에 불과했다.


"이렇게 돈만 쓰고 사용자는 못 잡는다면..." 김도전의 말끝이 흐려졌다. 과도한 마케팅 비용은 회사의 재정을 빠르게 갉아먹고 있었고, 실질적인 성과는 없었다. 화려한 숫자 뒤에 숨은 냉혹한 현실이 그들 앞에 펼쳐졌다.


결국 무리하게 확장한 서비스는 이들에게 참담한 지표만 남기고 종료하게됐다. 이 과정에서 투자금과 런웨이 시간 상당 부분이 소진됐다.


이제 끝인가

1년 만에 테크펫의 은행 잔고는 바닥을 드러냈다. 이렇다 할 매출원도 확보하지 못해 현금도 돌지 않았다. 투자자들의 실망은 컸고, 후속 투자는 힘들어 보였다. 김도전은 자신의 사무실에 홀로 앉아 생각에 잠겼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진작에 깨달았어야 했다. 화려한 사무실, 비싼 법인차, 무분별한 마케팅, 내 감에 의한 결정, 유명 인사 영입... 이 모든 것이 실제 가치 창출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건 사용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팀원들과의 진정한 협력이 필요했다.


이들은 과연 이 위기를 극복하고 진정한 성장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이미 늦은 걸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