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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May 04. 2021

고유명사로 존재하지만 고유명사만으론 설명할 수 없어요.

첫 글로, ‘지금의 저’를 소개합니다.


현재의 나는 누구일까? 하면서 몇 달간 써왔던 글들을 읽어보았다. 글쓰기 수업에 제출하기 위한 글도 있었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걸 적어놓은 글이나 감정을 풀기 위해 쓴 글들도 있었다. 당시의 나는 분명 그렇게 느끼고 생각해서 쓴 것일 텐데 불과 몇 달, 몇 주 사이에 낯설어진 내용이 많았다. 글 안에서 변하지 않은 것을 어렵게 찾자면 문체 정도였다. 비교적 최근에 썼기에 ‘현재의 나’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봤던 글들이 낯설게 느껴지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더 답변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하나 느껴진 건 내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감정을 느꼈고 생각보다 꽤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불과 몇 주 전에 썼던 글에서 ‘내가 이때 이런 생각을 했지, 지금은 좀 다른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내 생각과 비교적 긴 시간 유지한 나의 습관과 취향에 대해 적어보면, 내 일부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몇 가지 먼저 적어보려 한다. 나는 자전거를 타면서 노래 부르는 것과 같은 자유로움을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혹시 누가 들었을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는 것과 같은 자기 검열을 끝없이 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늘 부딪혀 나를 괴롭게 한다. 얼마 전, 이런 내적 갈등과 관련해 오래도록 잊지 말자고 다짐한 순간이 있었는데, 그건 강원도에서 가만히 바다와 파도와 태양을 보고 있던 때였다. 멍하니 눈 앞에 있는 것들을 보고 있다가 그냥 그저 이런 나로서 충만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동시에 나를 괴롭히는 복잡한 문제들의 답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힘과 또, (특히나 나를) 놓아줄 줄 아는 힘을 기르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나는 학창 시절부터 생각이 많을 때나 힘들 때면 일기를 썼는데, 이제는 정말로 글을 쓰는 것이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 됐다. 집중해서 글을 와르륵 쏟아내고 나면 이상하게 자존감이 올라가는 기분이라 그게 참 좋다.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오래된 습관이자 앞으로도 가지고 갈 습관일 것이다. 또, 여러 번의 직장생활을 통해 바쁜 생활보다는 여유를 좋아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성향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외로움은 많이 타서 연애가 꼭 필요한 사람이다. 예상치 못한 일에 자존감이 떨어지고 많이 흔들리지만 이제는 적어도 연연하지 말자는 생각까지는 할 수 있게 됐고, 희미하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도 안다. 그리고 그 방향대로 나아가리라는 것에는 확신이 있다. 이런 점들이 비교적 오랜 시간 변하지 않은 나란 사람의 큰 틀이다.


지난 4월, 산책을 하다가 날이 따뜻한데 바람은 시원하고, 꽃은 펴있고 하늘은 파래서, ‘아, 봄이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봄은 뭘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벚꽃, 새싹, 일교차, 얇아진 옷차림, 겨울 다음의 계절.. 봄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많았지만, 그 단어 중 하나를 뽑는다고 해서 그게 곧 봄은 아니었고, 그 단어들을 다 합친다고 해도 그걸 봄이라고 정의할 순 없을 것 같았다. 그럼 ‘봄이 왔다’라는 사실을 나는 어떻게 인지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오랜 시간 오감으로 경험하면서 여러 가지 봄의 모습을 쌓았고, 이제는 직관적으로 알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일이 아닐까? 나는 김열매이지만 김열매라는 단어로 나를 설명할 순 없다. 여유, 외로움, 글, 흔들림과 같은 단어들로 표현할 순 있지만 그게 곧 ‘나’도 아니다. 나는 계속해서 변하는 나를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쌓아가면서 언제든 ‘김열매’라 불릴 수 있는 형태를 만들어간다.


어제의 봄은 오늘의 봄과 다르고, 어제의 하늘은 오늘의 하늘과 다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게 봄이고, 하늘이란 걸 안다. 그래서 매번 다른 모습일지언정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우리가 망설임 없이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직관으로 그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변하는 나를 파악하고 알아가면서도 ‘김열매’의 본질을 만들어가는 것, 나는 그 과정에 있다. 내가 누구인지 때로는 알 것 같으면서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중엔 꼭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보여주지 않아도, 어떤 사람인지 나도 알고 남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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