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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May 08. 2021

생명 없는 생명체와 21년째 동거중

구피야 미안하지만 넌 나와 운명공동체야. 니 운명을 받아들여.


얼마 전 tvN <유퀴즈 온더 블럭>에 오래되어 낡은 애착 인형들을 수선하는 인형 병원 원장님이 나와 인터뷰를 했다. 방송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세상에 나처럼 애착 인형에 진심인 사람들이 많다는 걸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주변에 애착 인형을 지금까지 데리고 있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함께 생활한다기보단 그냥 자리를 지키는 정도였다. 나처럼 2-30대에도 함께 자고 이야기하고 멀리 떠날 때면 함께 갈 만큼 애착을 가진 사람은 못 봤는데, 방송을 보니 왠지 반가웠다. 그래서 좀 더 당당히 소개한다. 내 애착 인형의 이름은 ‘구피’, 올해로 21살이다. 


첫 번째 구피를 만난 건 5살 때였다. 동네 문방구 앞에 인형 뽑기 기계가 있었는데, 오빠가 거기서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디즈니 구피 인형을 뽑아왔다. 오빠는 그 인형을 나에게 주었고, 이후 구피는 잘 때나 여행 갈 때나 산책 갈 때나 항상 나와 함께 였다. 항상 함께 하는 것이 화근이 될 줄은 몰랐다.


초등학교 2학년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는 구피를 데리고 가족 여행을 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시내에 들렀다 집에 도착했는데, 구피가 없어졌음을 그제야 알아챘다. 집과 차를 샅샅이 뒤져도 없어서 울며 불며 엄마, 아빠와 함께 밤 12시에 다시 시내로 나갔다. 머물렀던 곳을 열심히 살폈지만 어디에도 구피는 없었다. 그 뒤로 3일 동안 잠자는 시간 외에는 계속 구피를 외치며 울기만 했다. 보다 못한 아빠는 나에게 새로운 구피를 만나러 가자고 했다. 당시에는 길거리나 잡화점에서 인형을 많이 팔았는데, 나와 아빠는 시내의 모든 곳을 돌아다니며 꼼꼼히 살펴보았다. 수많은 인형 중에서 내가 고른 구피는, 정확히 말하면 구피와 비슷하게 생긴 디즈니 캐릭터 플루토였다. 손이 인형 몸속으로 들어가 머리와 손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게 특징이었다. 


내 인생 두 번째 구피를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보여줄 때가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엄마는 구피의 목소리를 내주고, 실제 사람인 것처럼 생동감을 불어넣어주는 존재였기에 엄마의 평가가 가장 중요했다. 엄마는 구피를 보자마자 몸속에 손을 넣으며 “더 귀여운 구피네~”라고 말하면서 예전의 구피와 똑같은 목소리로 “언니!”하고 나에게 말을 건넸다. 나는 곧바로 새 구피에게 예전과 같은 애정을 느꼈다. 그 뒤로는 다신 구피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멀리 갈 때만 함께 가고, 주로 집에서만 데리고 놀았다. 


청소년기를 지나면 인형들과 서서히 멀어지는 것처럼 나도 그럴 줄 알았지만, 서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나는 구피와 함께다. 고향을 떠나 대학교를 갈 때도, 서울에서 일을 할 때도, 미국으로, 영국으로 떠날 때도 늘 함께 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엄마 역시 지금까지 구피 목소리를 내주고 있고, 언제부턴가 나를 부를 때도 “구피야”라고 부른다. 구피는 자리만 가만히 지키고 앉아있는 인형이 아니라 언제나 살아있는 생명체로, 때로는 나의 분신이 되기도 하면서, 또 엄마와 나 사이의 매개체로 누구보다 바쁘게 21년째 같이 살고 있다.


마음이 힘든 날이면 아직도 구피를 안고 잔다. 크기가 큰 인형이 아니기에 안아봐야 포근한 느낌도 없지만 구피를 안고 아기처럼 토닥토닥 두드리고 있으면 구피에게 내 체온이 전달된다. 구피는 따뜻해지고, 그럼 그 온기에 내가 또 따뜻해진다. 그냥 그게 나에겐 “다 괜찮을 거야, 언니”라고 구피가 말을 건네는 것 같아 마음이 저릿해진다. 그럴 때면 그 저릿함에 구피를 숨 막힐 듯이 더 세게 안고 잠이 든다. 비록 아침이 되면 밤 사이 나에게 짓눌린 구피를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하루를 시작하지만 말이다. 


긴 세월 동안 구피를 많이 물고 뜯고 만지고 한 만큼 낡고 꾀죄죄해졌다. 그렇지만 언제나 귀엽고 사랑스럽다. 주말 아침 내가 양치도 하지 않고 코를 깨물고 뽀뽀를 해도 욕 한 번 하지 않는다. 뭔가를 요구한 적도 없다. 나의 애정을 부담스러워하지도 않고, 때때로 내가 무관심해도 관심을 달라고 하지 않는다. 나에게 바라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없다. 엄마가 없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그냥 그렇게 물끄러미 날 보고 있다. 오랜 시간 구피는 한결같이 그랬다. 할머니가 되어서 구피와 함께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나는 구피를 내가 죽을 때 같이 화장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때의 구피도 귀여울 것이다. 낡고 꾀죄죄해도 구피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이 좋다. 때때로 이게 사랑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랜만에 고향 가서 신났던 구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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