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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기시대 Aug 23. 2020

벙커 이야기 #01

표고농사를 지으려 했어요

'표고농사를 짓자'


양양으로

귀농을 하고,

귀농지원 작물로,

표고버섯을 시작하기로 했다.


표고버섯 키우기에 적합하면서도,

자금의 부담을 덜 수 있는 땅.

뭐 조금 불편하면 어떠랴,

어차피 정리하고 가꾸어야 할 텐데,

조금 더 신경 쓰면 되지...


그렇게

양양의 땅들을 물색하다가

물갑리의 한 임야를 보게 되었다.

수풀이 우거져, 농사를 지으려면

손이 적잖이, 아니, 꽤 많이 가야 할 모양새였다.


까짓 거 하면 되지 라는

그날의 패기와 열정으로

그렇게, 덜컥 땅을 매매했다.


그런데...




'뭔가가 잘못된 것 같은데...'


처음 시작한 건

당연히 땅을 고르고 다지는 작업이었다.

포클레인으로 한 살 두 살 떠내자

폐타이어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초기 정리 당시에 쏟아져 나오는 폐타이어들

"이게 다 뭐지?"

쏟아져 나오는 폐타이어들을 바라보면서,

처음의 패기는

조금씩 걱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미 산 땅을 어찌할 것인가...

파내고 고르기를 반복하면,

어떻게든 모양새를 갖추게 되지 않을까?


당황해하고, 멈춰있기에,

이미 이곳에 생계를 걸었기에

지체할 수 있는 명분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렇게

파고, 또 파고

폐타이어들이 조금씩 사라져 가면서,

안도의 숨을 조금 내뱉어 보려 하던

그때!




'자.. 잠깐.. 이건 또 뭐야?'


수두룩한 폐타이어의 충격이

조금 사그라들 때쯤,


'카가가 가각'


포클레인의 삽에

바위 같은 둔탁한 것이 걸리는 소리가 난다.



큰 바위겠거니 생각했는데,

시멘트로 견고하게 만든 두운 벽이다


'이거... 벙컨데?'


그렇게 벙커를 마주했을 때,

땅을 정리해주던 분들이나,

아름아름 알게 된 농사 조언을 구했던,

동네의 어르신들은

땅을 잘못 샀다며,

초보 농사꾼인, 갓 귀농한

그를 어여쁘게 생각하셨단다.


그런데,

당황스럽고 충격적일 이 상황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설렘이 꿈틀거렸단다.


발굴 후, 주변을 정리하고 드러난 벙커 입구




'땅 잘못 샀네.. 어쩔 수 있나.. 부수든가 해야 농사짓지..'


주변분들의 안타까움 섞인 조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부수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마치,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달까...

(충격으로 인해 실성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지만.. 하하)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이 돈을 더 들여가며,

조심스레 유물을 발굴해내듯

(혹은, 흡사 산삼을 캐내듯)


혹여나 상할까,

벙커의 주변을 조심스레 파내기 시작했다.


주변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고생에도 불구하고,

벙커는 그렇게

보물처럼, 운명처럼 다가온 것 같았다.




그렇게 벙커를 캐내고(?)

굳이 벙커를 비껴가며,

힘겹게 표고농사를 짓기 위한 하우스를 지었다.


그렇다.

농사짓기에 이리도 비효율적일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저 벙커를 보고 있노라면,

여느 남자의 로망이 그렇듯,

나만의 아지트가 생긴 것 같기도 하고,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설레었다.


그 설렘 만으로도 충분히

벙커를 부수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고,

땅을 잘못 샀다는 속상한 말들 속에서도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벙커... 이대로 두어야 하나'



벙커를 남겨둔 채로

초기의 표고농사를 짓기위한 계획도 성실히 진행했다.


하지만,

그런 초반의 설렘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야심 차게 시작한

귀농 후 첫 농사

하지만, 기초 생활비를 겨우 매울 수 있을 뿐,

그 이상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사실은,

그나마 잘 되어서

생활비를 벌 정도였다가 맞겠다.


농사에만 의지할 수 없었기에,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돈 벌 수 있는 일은

가리지 않고 했다.

여기저기 도움을 청해가며,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런저런 단체에 가입하고,

무리하면서까지 총무며, 사무국장이며, 맡아가며

어떻게든 살아갈 궁리를 했다.


그렇게 1년, 2년 흘러가면서

어느새

대출로 구매했던 땅의

상환시기가 다가와 버렸다.


'그래, 그냥 허물고 농사를 더 질걸...'

'역시 땅을 잘못산 거였어..'


너무도 태연하게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벙커가

괜스레 미웠다.


어느덧 흘러버린 5년의 시간,

열심히 살았음에도,

여전히 팍팍한 귀농생활


그리고, 서서히 조여 오는

대출상환의 압박


설렘으로 남겨두었던

벙커였지만,

더 이상 설렘만으로 남겨둘 수 있는

사치를 부릴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선택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고민을 했다


'벙커로 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고민을 수없이 하던 중

사람들을 만났다.



벙커 이야기 1편 '표고농사를 지으려 했어요' 끝.

벙커 이야기 2편을 이어나가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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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양양에 귀촌한 윤지상 님의 이야기를 토대로

각색 따위 없이, 써 내려가는 기록들입니다.

지금 이 벙커는 ' 벙커 팜 38.1'이라는 프로젝트명으로

지역의 의미 있는 명소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 이야기의 첫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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