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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기시대 May 25. 2021

중고가 좋아졌다 2

2015년 어느 날, 저녁

이거

굴러가긴 하는 걸까?


그래도 시동은 걸어보자며

다가선 차 앞에서

내 의구심은 점차 확신이 되어 갔다.


차마 운전석의 문은 열지 못하고

괜히 애꿎은 트렁크를 먼저 열어보았다.

끼~우이익!

흡사 공포영화 속

사람이 살지 않은지 수십 년은 되어 보일 어느 폐가의

대문을 여는 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효과음이었다.


아차


여긴 폐가가 아니야

그저 흔한 자동차의 트렁크 문일 뿐이라고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드디어 뒷문을 개방했다


잠깐

여긴 또 다른 공간으로 나가는 문인가?


문이 열리자

역시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

아니 전혀 다른 세상이 열렸다.


우선 분명히 차 안이거늘

무수한 흙무더기와 심지어 돌무더기까지


차 안이라기보다는

약간 어스름이 해가 저물어가는

어느 뒷동산의 산책로 같은 비주얼이었달까


방금 전 트렁크 문을 여는 순간까지는 공포영화였는데,

문이 열리자 나니아 연대가 마냥 판타지 물이 되어 갔다.


계속 보고 있노라니,

혼란스럽던 머릿속은

점점 아득해져 가기 시작했다.


안돼!


시간과 공간의 문을 통해

다른 차원으로 빨려 들어가기 전에

정신을 부여잡고

얼른 트렁크 문을 닫아 버렸다.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형에게 갔다.


적당해야 화도 나는 법이거늘

이건 화조차도 나지 않았고,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게 되더라.



나 : "형, 이차 맞아?"


형 : "그럼, 내가 여기까지 끌고 왔어, 너 주려고 짜식아!"


뭐지?

뭔가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야 하는데

형의 저 자신감 넘치는 말투와

그보다, 무언가 내 생일도 아닌데,

서프라이즈로 내 선물을 준비한 것만 같은 뉘앙스로


어때? 죽이지? 라며,

람보르기니라도 한대 뽑아준것마냥

오히려 의기양양한 모습이라니


내가 잘못 본건가?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아, 일단 와우! 형! 정말 고마워! 어디서 구했어!

나 정말 오래전부터 엄마 뱃속부터 갖고 싶었던 드림카야!

라면서 팔짝뛰며, 약간의 눈물을 머금은 채,

감동에 몸서리치는 떨리는 목소리를 억지로 눌러가며

감사의 표현은 형에게 건네야 했던 건가?

내가 예의가 없었나?


아.. 아니야!

정신 차려!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트렁크를 열어본 광경을 형에게 이야기했다.


그래...

이건 뭔가 잘못된 게 맞아!


형 : "어 전 차주가 농사짓던 분 이래"


끝!


엥?

그게 다라고?

아니 농사를 지었다고 해서,

차 안을 농장으로 꾸밀리는 없잖아!


형은 어차피 세차는 한번 해야 할 거 아니냐며

너무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셨고,

난 너무도 자연스럽게 동의해버렸다.


그래,

일단 벌어진 일

뭐 세차하고 손보면 괜찮아지겠지 뭐


그리고

그렇게

세차만

2박 3일간

하게 되었다.


.

.

.

.

약 7년 전의 에피소드입니다. 고증을 위한 사진자료를 담은

외장하드가 날아가, 일부 당시 SNS에 올린 사진을 수집하고 있습니다.

그 사진이라도 올리며, 실제 참담함을 보여드리고자 하였는데,

애석하게도 세차 후의 사진자료만 남았네요.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머릿속에 그리는 것이 더 아름다울 때가 있지요


하지만,

머릿속에 그리는 것보다

실제 더 처참한 모습이 확실할

그 사진을 못 보여드림이 한이 됩니다.


중고가 좋아졌다 3편에서

이후의 모습들을 조금씩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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