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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아 Dec 25. 2020

디아나, 지구 반대편에서 내가 태어났다면.

누군가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지속되는지는 만남의 양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듯하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이라는 구절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가 있다. 그와는 그리 많은 말을 나누지도 오래 함께하지도 않았음에도.


한 달 이상 이방인으로 지낸 첫 여행. 그전에 2년간을 에콰도르에서 지낸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여행보다는 삶이었으므로, 일종의 '장기여행'으로는 처음이었다. 그 여정은 이후의 내 삶에 영향을 준 다양한 경험을 주었지만, 사십일이 조금 넘는 여행 끝 귀국 하루 전엔 조금 쪼들려 있었다. 현금을 넉넉히 챙기긴 했었는데 막판에 예정에 없던 투어를 했고, 준비해 간 신용카드는 무엇 때문인지 모르게 사용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하루를 보낸 곳은 신혼여행으로 유명한 칸쿤이었다. 한가인-연정훈 커플도 허니문을 보냈다는 칸쿤에는 명성대로 다정한 커플과 부유한 관광객이 넘쳐났다. 그들은 해안가 근처 올 인클루시브 호텔에서 묵었다. 하지만 주머니가 텅 비어있던 나는 바닷가와 한참 떨어진 시내에 위치한 하루 오 달러짜리! 숙소에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내 평생 가장 저렴했던 숙소였다. 정신병원이 이렇게 생겼을까 싶을 만큼 흰 벽에 빛바랜 흰 시트가 덮인 꺼진 매트리스의 철제 침대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방문은 잠기지 않았고, 화장실은 방밖에 있었으며, 천정에는 등이 있어야 할 자리에 뜬금없이 옷걸이가 매달려 있었다. 


웃음이 나올 만큼 어이없는 장소였지만, 그래도 주인아저씨는 친절했다. 섬 투어, 피라미드와 세노테 투어도 마치고 달리 할 일이 없어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휴양지가 어딘지 물었을 때, 그는 Playa Delfines라는 해변을 일러줬다. 시내에서 들어가는 버스 노선과 정류장, 요금 등과 함께.



집주인이 소개해 준 그 해변은 값비싼 호텔 쪽 바다를 지난 후 거의 마지막 정류장쯤에 자리했다. 그래도 투명한 에메랄드 바다 빛깔만큼은 똑같이 반짝였다. 투숙객 외엔 출입을 금지시켜 놓은 구역을 벗어난 그곳엔 정말 관광객보다는 가족단위로 피크닉을 온 멕시코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곳곳에는 마른 지푸라기로 만든 파라솔이 세워져 있었는데, 휴양객이 제법 많아 빈자리가 눈에 띄지 않았다. 파라솔 사이를 두리번 대던 나는 그늘 아래 혼자 누워있는 까만 비키니 차림의 한 여성을 발견했다.


"저...... 일행이 없으시면 혹시 자리를 같이 써도 될까요?"

조심스레 말을 건네자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던 그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아뇨."

"아, 네......"

금세 소심해져 비실비실 물러나려는데 그가 이어폰을 귀에서 빼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다시 덧붙였다.

"아니 아니, 장난이에요. 당연히 앉아도 되죠."

그러고는 어서 앉으라는 듯 몸을 한편으로 움직이며 자리를 만들었다. 나도 안심하며 두르고 있던 숄을 바닥에 깔고 가방을 베고 누웠다. 보통은 혼자 다니는 아시아계 여자 여행객에겐 질문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어디서 왔느냐, 왜 왔느냐, 언제까지 머무르냐 등. 하지만 그는 다시 음악으로 돌아갔고, 나도 노트를 펼쳐 여행 말미의 정서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번갈아 짧은 낮잠을 자기도 하고, 다 부서진 나초를 봉지째 입에 털어 넣기도 하고, 핸드폰을 들어 셀카를 찍었다. 오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으나,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그는 후루룩 자리를 정돈하더니

"자리 좀 봐주세요."

한 마디를 던지고는 바다로 달려갔다. 소매치기 걱정을 안 할 수 없는 나라, 나 역시도 쉽사리 누군가에게 물건을 맡긴 일이 없었다. 칸쿤이 아무리 안전하다 해도 경계를 풀진 못했다. 그런데 잠시간의 평화로운 시간 덕분일까, 그는 내가 오랜 친구라도 되는 듯 그렇게 이방인에게 소지품을 부탁했다. 먼저 내민 손, 양 손을 활짝 내보이며 건넨 악수와 같았다.


다시 돌아온 그는 이제 막 생각났다는 듯 그제야 이름을 물었다. 자신은 '디아나'라 했다. 통성명을 시작으로 우린 좀 더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회사를 막 퇴사하고, 40일 정도 여행을 한 후 내일 귀국한다 했다. 신기하다는 듯 박수를 치며 그는 자신도 퇴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 참이며, 그 역시 내일 떠난다 했다. 내일이 생일이라 이따 친구 집에서 파티를 한다고. 오 나도 지난달에 여행 중에 생일을 맞았다 했다. 우리는 나이도 같았다. 나는 아동복지 쪽의 일을 했었는데, 그는 동물 복지 관련 일을 했었다.  더 이런 저련 얘기를 주고받았다. 일을 그만두게 된 배경이며, 취향이나 생각들을 말하곤 했는데, 누군가 자기 이야기를 하면, 아 진짜? 나도 그래! 하며 신기해하는 대화가 반복됐다. 


대화의 끝에 우리는, (물론 인종이 다르니 생김이 달랐지만) 이 정도면 도플갱어, 소울메이트 아니냐며 까르륵 댔다. 이리저리 퍼즐을 돌려보다 딱 맞는 자리에 끼운 느낌? 내가 지구 반대편에서 태어났다면 그와 같은 삶을 살았을까 싶었다. 그러고는 같이 사진을 찍어 서로 공유하고, 페이스북 주소를 교환하고, 귀국/귀가 일정을 축복하며 쿨하게 헤어졌다.


한국에 돌아와 페이스북 친구 맺기를 했지만 그도 나도 업무용/스크랩 용으로만 사용했기 때문에 그 뒤로 다른 소통은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안부가 종종 궁금하다. 왜 그리 잔향이 오래 남았을까. 살아온 삶이 비슷해서였을까. 아니 그보다는 내가 특이한 이방인, 호기심의 대상이 아닌, 별로 특별할 거 없는 자신과 똑같은 존재로 대해졌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혹은 그때 누워 보낸 시간이 아무 근심 없는, 어떤 경계도 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로운 상태였기에, 타국에서 이동하며 자신도 모르게 붙잡고 있었던 긴장을 모조리 풀어놓았던 시간이었기 때문이었을 지도. 


환대란 어쩌면 그렇게,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는, 상대를 특수하게 대하지 않고 그저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지속하는 상태가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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