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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아 Oct 18. 2021

지음지기

지난밤 파리한 꿈을 꾸었다.



컴컴한 방에 퀸사이즈 침대가 놓여있다. 침대는 방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한다. 나는 침대 왼쪽에 걸터앉아 오른편에 앉은 사내를 쳐다본다. 금발의 외국인이다.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의 기욤 페트리를 닮았다. 내 시선은 계속 그를 향하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그는 내게 등을 보이며 누군가와 통화한다. 여자 친구라고 한다. 애인도 아닌 그가 어째서 내 침실에 함께 있을까. 기나긴 대화를 나누던 그는 "지금 갈게."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는다. 와락 눈물이 쏟아진다. 그를 붙든다. 

"이렇게 가면 어떡해."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엉뚱한 말로 답한다.

"X한테도 이렇게 하니?"

그를 잡은 팔에 이내 힘이 풀린다. X는 또 누구인가. 그와 비슷하게, 내 방에 드나드는 인물인가. 잠시 머물 뿐 함께 하지 않는, 그렇지만 그보다도 더 붙들지도 못하는 그런 인물? 그가 사라졌다. 방이 비었다. 텅 빈 방이 남았다. 방 밖 복도로 몇 명의 사람들이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며 지나간다. 아, 여기는 이국의 하숙집이다. 낯선 세계에서 이 방, 침대 하나만이 내 공간이다. 아, 꿈이구나.




자각몽이었다. 바로 잠에서 깼다. 아니 잠에서 깨어 꿈이었음을 인지했는지도. 꿈인지 생인지 모호한 반수면 상태에서 생각했다. 이건 마음 풍경이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의 크기는 딱 침대 하나 놓인 방 한 칸. 그 내밀한 침실에서도 완벽하게 소통할 수 있는 이가 없는 서늘함. 그런 사람이 한 명만이 아니라 더하기 미지수 X, 즉 N명을 의미했다.


출생 이후 나를 둘러싼 세계는 항상 이질적이었다. 연결된 이 하나 없이 이국에 고립된 느낌. 외로움으로 따지자면 혼자 있어서가 아닌 군중 속의 고독과 비슷한. 처음 만난 세계가 너무 자신과 달라서일까. 다른 가족 구성원과 성향도, 취향도, 습관도 언제나 반대였다. 나보다 먼저 만들어진 세계뿐 아니라 늦게 등장한 동생과도. 나는 말도 생각도 행동도 걸음도 느렸고, 조용했고, 무거웠으나 그들은 재빠르고, 크고, 경쾌했다. 같아지기를 노력하는 데는 너무 빨리 배터리가 소모됐으므로 책 속으로 도피하곤 했다. 결과적으로 가족과도 또래와도 점점 더 닮은 모습이 줄어갔다.


얼마 전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됐다. 초등학교 3, 4학년 무렵 학교에서 내가 누군가에게 얻어 맞고 왔다고 한다. 성이 난 엄마가 어디서 맞았느냐고, 누구냐고, 너는 가만히 있었느냐고 종주먹을 대자 이렇게 답했다고.

"내가 똑같이 때리면, 걔도 나를 다시 때리고, 그러면 또 내가 때려야 되고. 그러면 계속 싸우게 되니까 그냥 가만히 있었어."

말을 전하는 엄마는 여전히 분통 터져했으나 나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아니, 이런 비폭력주의적인 어린이라니! 


뭐, 소심한 인간의 정신승리였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는 점. 이후에도 사람과든 일과든, 어려운 도전 과제와든 나는 갈등회피자에 가까웠다. 다른 식구들은 끝까지 투쟁했다. 집밖 세상은 더욱 경쟁적이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다수와 다를 땐 "너는 왜 그 모양이니?"라는 물음이 주어지기 십상이었으므로 대책이 필요했다. 그 물음이 정당한지 분별해야 했고, 힐난에 맞서려면 제대로 된 설명을 준비해야 했다. 이를 위해 '나 자신'을 탐구했다. '내가 잘못인 걸까?'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무엇을 원하지?' '내가 잘하는 일은 뭐지?' 덕분에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요즘에는 너무 사랑하는 게 아닌가 염려가 들 정도다.


그 사랑의 일환으로 얼마 전 독립 출판을 시작했다. 버킷 리스트의 하나였다. (리스트의 항목을 빨리 해치우는 편.) 출판사 이름은 '지음지기'. 소리를 듣고 나를 인정해 주는 친구라는 뜻이다. 책이 언제나 그러한 존재였기에, 그러한 벗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한 독자를 만나기를 바랐다. 사실 처음 생각한 이름은 '지음'이었다. 밥이든, 책이든, 사람이든 '짓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므로. 한데 '지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출판사가 너무 많아 새로 궁리한 이름이 더욱 마음에 합했다. 짓다의 '지음'이자 소리를 알아듣다의 '知音'


인정해주는 벗,

짓는 벗,

이 모두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존재가 세계에 대한 낯섦과 두려움을, 고립감을 해소해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지음지기, 지음+지기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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