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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아 Oct 29. 2021

N잡의 위험성

나는 '바쁘다'라는 말을 싫어한다. 누군가 그 말을 쓰면 거리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너무 바빠서'라는 말은 백이면 백, 핑계가 따라붙는다. 마땅히 살펴야 할 사람을 살피지 못하는 이유로,  시간 약속을 늦은 핑계로, 해야 할 일을 미루는 도구로. 웬만하면 피하는 말임에도 이번 달을 마감하는 이 순간, 신중히 적어본다. 올해 10월은 정말 바빴다. <직업여행자의 밥벌이 다반사>라는 책에서 프로이직러에서 N잡러로의 변신과정을 그리기도 했는데, 이 책을 내는 과정 역시 Job을 하나 더 추가하는 일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이 달에 진행한 일을 정리하면 이렇다.

- 독립 출판 - 여기에는 책 디자인, 인쇄 의뢰, 인쇄 감리, 배송 수령 및 정리, 사업자통장 개설, 서점 계약, 배송, 서평단 모집 등이 포함된다.
- 어린이 도서 편집 - 기존에 나온 청소년용 도서를 어린이 도서로 편집하는 편집일 진행. 2주마다의 회의도.
- 퍼실리테이터 - 그래도 이번에 하루짜리라 덜 부담이었다.
- 강의 계획서 작성 - 11월~12월에 6회기로 어느 도서관에서 진행할 강의 계획서를 작성해서 보냈다. 계획서 자체는 간단하지만, 활동을 고민하느라 머리가 지끈.


이 일들은 물론 소속된 직장 업무와 병행했는데, 두 번의 대체공휴일과 백신 휴가 그리고 재택근무가 아니었으면 혼이 나갈 뻔했다.(아, 이제 위드 코로나면 재택근무는 끝나겠지?) 


어찌 됐든 큰 사고 없이 대략 다 마치긴 했지만, 중간중간  '위험' 경고등이 번쩍번쩍 돌아간 일이 있었다. 새로운 길을 걸을 때 실수가 잦은 것처럼. 익숙한 출퇴근길이나 자주 이용하는 경로라면 우리는 특별한 선택이나 판단 없이 움직일 수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야 할 장소, 꺾어 들어가야 할 지점, 지하철을 내리는 위치, 환승 방향 등을 고민할 필요 없이 몸이 먼저 반응한다. 하지만 초행길에선 골목을 잘못 찾아든다거나 반대로 간다거나, 환승을 잘못해놓고도 몇 정거장 눈치도 못 채는 일이 잦다. (나는 정말 잦다.)


N잡을 한다는 건 계속 새로운 길을 걸을뿐더러
끊임없이 환승을 반복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루틴이 없이 이 일을 하다, 저 일을 하는 모드 전환이 실시간 이루어진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직접 일을 진행하는 시간이 많고 적고를 떠나서 실제보다 더 바쁘게 느껴진다. 그나마 일과 일 사이 쉼이 보장되면 괜찮지만, 갑작스레 다른 일로 넘어가면 뇌가 잠시 멈추는 불상사가 일어나고야 만다.


이번 달에 퍼실리테이터로 모임을 진행하면서 작은(주최 측으로선 클 수도 있는) 실수가 있었다. 참가자를 호명하는 방식을 이전 행사와 달리했는데, 오리엔테이션 때 분명 내용을 전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진행 시 예전 방식을 사용했다. 다행히 본 행사가 아니라 사전 점검 때의 일이라 무리 없이 넘어가긴 했지만, 어쩐지 행사도 다른 때보다 더 분주하고 마음이 붕 떠 무언가를 놓친 기분이었다.


N잡의 또 다른 위험이라면, 아니 근로자라면 다 겪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무기력의 순간이다.

끊임없이 날아오는 일감을 테니스공 넘기듯 휘딱휘딱 쳐내다 보니, 브레이크 타임이 오자 '나몰랑 아몰랑' 상태가 돼버린 것. 그야말로 '일하기 싫어증'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독자의 이런 물음이 예상된다. 그럼 N잡이 나쁘단 얘기냐? 또는 누가 N잡 하랬냐?

그러니까 말이다. 실컷 불평처럼 늘어놓고 소심하게 한마디 덧붙여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고, 아무리 힘들어도 제가 감당할만하면 할 수 있다.


#N잡 #직업여행자의밥벌이다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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