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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아 Nov 05. 2021

진심은 가장 좋은 전략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전화번호마저 저장되어 있지 않던 직장동료였다. 입꼬리가 절로 씰룩이고 광대가 들썩이는 기분 좋은 문자였다. 

현 직장에선 정체성, 그러니까 자연인 유진아를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사회적 공간에서 나 자신으로 살 때의 위험을 이제 알아서였는지 모르겠다. 그와는 정확히 한 달에 한번 회의 때나 봤던 사이였다. 그나마 절반은 온라인 만남. 사적인 대화는 없었고, 다른 소통이라고는 역시 한 달에 한두 번 업무 상 이메일뿐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내 이름을 검색하여 알리지도 않은 신간 소식을 발견했으며, 구매의사를 밝혔다. 뒤이은 문자로 우리는 당장 점심 약속을 잡고, 한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 만남을 가졌다. 단숨에 글을 읽은 그는 자청해서 '알라딘'에 서평을 남겼는데, 세세하고 진심 어려있어 감동과 위로를 주는 글이었다. 마지막으로 우린 2주 뒤 치맥을 위한 날을 정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이런 연결이 이어졌을까? 내가 책을 낸 적이 있다는 얘기는 회의 첫 만남에서 자기소개를 하며 지나가듯 한 말이었다. 자랑삼아했다기보다 현재 하는 일은 '글쓰기'와 관련된 일인데 내 석박사 학위가 그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전공이라, 무언가 자격을 증명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에 언급했던 말이었다. 


무미건조한 사이에 이름을 검색해볼 마음을 먹은 건, 알지 못할 매력에 이끌린 사심 따위는 아니었다. 참고로 그는 나와 성별이 같다.(물론 동성 간에도 로맨스는 이뤄질 수 있지만 확률상 꽤 낮은 편이므로) 추측건대 그 시작은 며칠 전 내가 보낸 업무 메일인 듯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너무 춥지 않아 가을을 즐길만한 시절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단풍 색이 달라지는 장면을 보는 일도 작은 즐거움이네요.


매달 같은 형식에 날짜와 첨부파일만 바꾸어 전송하던 메일에 이번엔 살짝 감성 한 스푼을 추가했었다. 춥고 어두운 겨울엔 한껏 웅크리는, 꽃피는 봄엔 방방, 목소리도 얼굴 표정도 구름 위를 떠다니는, 더운 여름엔 크게 짜증은 안 내더라도 뭐든 그만두기를 잘하는(여름에 이직률이 놓다), 사계절을 있는 그대로 타는 인사였기에, 날마다 짙어지는 단풍에 <천사들의 합창>에서 말끝마다 '낭만적이야'를 붙이던 라우라처럼, 낭만에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회신으로 파일을 전송할 때  저 문장을 언급하며 덕분에 단풍을 오래 감상했노라는 문장을 덧붙였다. 책을 검색할 때까지 내 이름이 기억에 남은 건 가을 덕분이었다.


책을 내고 홍보가 참 고민이었다. 연결된 소모임에 서평을 부탁하고, 외부에서도 서평단을 모집했다. 그리 소통지수가 높진 못하지만 나름대로 SNS도 평소보다 열심히 들락거렸다. 하지만 본디 인간관계가 넓지도 못해 개인 역량으로 무언가를 알리는 일은 한계가 컸다. 그런데 이렇게, 느슨하디 느슨한 관계가 홍보의 고리가 될 줄이야. 역설적이게도 일부러 홍보를 안 했던 관계에서 말이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홍보를 내세우지 않아 진짜 홍보가 됐는지 모르겠다. 진심이 가장 좋은 전략이므로.


책을 내면 감사할 일이 많아진다. 좁은 내 관계망 안에서도 이런저런 모양으로 도움 준 이가 참 여럿이었다. 잘 팔리면 물론 좋겠지만, 책은 삶에서 작은 부분일 뿐이다. 사람보다는 말이다. 판매보다 관계에 더 진심이기를 계속 그런 사람으로 남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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