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영등 Jan 17. 2023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원불교 필라델피아교당 일요예회 뒷정리를 도와드리고 나오는 길에 미니크로스백을 챙겨 돌아가려는데 가방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지갑이며 신분증, 체크카드와 현금 게다가 약정기간이 남은 아이패드 미니까지 몽땅 감쪽같이 사라졌다.       


가난한 유학생 처지에 어찌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다 하늘이 노래졌다. 점심시간 내내 교도들에게 물어보고 또 교당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으나 헛수고였다. 급하게 은행에 연락해서 카드결제가 안 되게 조치했다. 도난신고를 접수한 글렌사이드 경찰은 간단한 질문 몇 가지를 하고서 되돌아갔다.       


그때 문득 한 생각이 떠올라 방에 가서 노트북을 열고 ‘아이클라우드 닷컴’에 접속해 ‘아이폰 찾기’ 아이콘을 눌렀다. 위성지도가 펼쳐지면서 빨간 점이 깜박깜박 빛났다. 멀지 않은 레스토랑이었다. 태블릿 피시 배터리가 다 닳기 전에 놈을 잡아 되찾느냐 아니면 포기하느냐 갈림길에 섰다.      


룸메이트 데이뜬 그리고 W와 의기투합해서 추격을 결정했다. 그가 총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내 것을 빼앗겼다는 울분과 흥미진진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들썩임이 압도했다. 총장님께 곤색 엘란트라를 빌린 세 사나이는 실시간으로 분실물 위치를 파악하며 차를 몰았다.  

    

빨간 점이 동남쪽으로 계속 움직였다. 최종 행선지가 어딘지도 모르는 채 한참 운전하다가 어느 호텔 야외 주차장에서 빨간 점이 멈춘 것을 확인하고 곧장 그리로 향했다. 펜실베니아 주 경계를 넘어 뉴저지 주에 들어가 목적지에 다다랐다.      


그런데 다시 위치조회를 해보니 빨간 점은 이미 다른 곳으로 이동 중이다. 그 지역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전화로 얘기했으나 시큰 둥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온갖 사건사고가 비일비재할 미주 동부 도박의 도시 애틀랜틱시티에서 전자기기 하나 없어진 것이 뭔 대수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코웃음에 오기가 생긴 삼총사는 도둑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빨간 점을 따라 대서양쪽으로 내달렸다. 어느덧 평원에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고 깜깜해질 즈음이 되서야 드디어 빨간 점을 거의 따라잡았다.      

하지만 휘황찬란한 카지노 옆, 핫핑크 네온사인을 온통 두르고 번쩍이며 위용을 뽐내는 15층 높이의 거대한 주차타워 앞에 서자 문득 정신이 아득해 입을 딱 벌렸다. 멍하니 한참을 있다가 그만 접기로 결심했다.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셋이 다 말을 잃었다. 당황, 걱정, 분노, 초조, 불안, 흥분, 허탈, 실망, 체념이 휩쓸고 간 뒤 찾아온 고요한 침묵이다.      


온종일 꼬리를 무는 감정을 쫓다가 마음도 몸도 지쳤다. 잃어버린 건 소지품만이 아니었다. 애착에 붙들려 ‘지금을 사는 나’를 잊고 하루를 지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란한 도박장 불빛 아래서 작은 깨침이 샘솟아 밖으로만 쏠렸던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니 눈에 든 한 티끌에 허공 꽃이 요란하게 떨어지는 이치를 비로소 알아차렸다. 그렇게 잃어버린 나를 찾았다.     


개는 던진 흙덩이를 쫓아가지만 사자는 던진 자를 문다. - 전등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