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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영등 Feb 15. 2023

낮은 데로 임하소서

낮은 데로 임하소서.     

(월간원광 3월호 기고문)


구름 한 점 없는 건기의 하늘은 한적하다. 이따금 창공을 가르는 새가 있어 시선을 앗는다. 누런 먼지를 일으키며 메마른 대지 위를 달리는 베이지 빛 차량 뒷좌석에 카키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두 줄 세로로 빼곡하게 마주 앉았다. 차 겉에 성조기와 MAG(The Mines Advisory Group)로고가 선명하다.     


오가며 자주 마주치는 그들은 불발탄과 지뢰를 제거한다. 지뢰고문단은 2021년 한 해 동안에만 20,342개의 폭발물을 처리해서 10,361,034평방미터의 강토가 두려움에서 벗어났다.       


월남전 당시 북베트남과 라오스 민족주의 좌파세력 빠뗏라오는 미국에 맞서 싸웠다. 미군은 베트콩의 보급로를 파괴하기 위해 라오스를 지나는 호찌민루트를 융단 폭격했다.      


“미군 전폭기는 50만회 이상의 출격으로 집속탄 2억 7천만 발을 포함해 2만t이 넘는 폭탄을 라오스 땅에 퍼부었다.”, “58만 3백 44회 출격해 작전을 벌였다. 700만개의 각종폭탄을 라오스 땅에 투하시켰다.”, “58만 번 폭격으로 약 200만 톤의 확산탄이 뿌려졌다.” 등 1964년부터 1973년까지의 기록은 다양하다. 당시를 살아낸 사람들은 폭렬탄이 비처럼 쏟아졌다고 기억한다.     


폭발탄 중 약 30%가 터지지 않았다. 5월에서 10월까지 이어지는 우기로 물컹해진 땅에 떨어져 꽂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소형 집속탄두를 건드리다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폭발물 해제조가 해체하고 남은 탄피는 농갓집 기둥으로 사용되거나 상점 앞에 놓여 관광객에게 이색풍경이 된다. 녹여서 알루미늄 숟가락을 만들기도 한다. 농부는 폭격으로 패인 웅덩이에 물을 모아 논물로 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폰사완 항아리평원에서도 공중폭격으로 움푹 파인 큰 구덩이를 볼 수 있다. 선사시대 유적지를 둘러보던 여행자들은 크레이터 앞에서 그만 입을 다문다.  거기에서 1시간 30여 분 거리 무앙캄 탐퓨동굴에 시민들이 올린 꽃과 향불은 1968년 11월 24일, 폭격기가 전진하며 그 관성으로 폭탄을 굴에 밀어 넣어 공습을 피해 숨어있다 희생당한 주민 374명을 추모하기 위한 공양이다.      

 

하늘을 뒤덮었던 미공군은 이미 사라졌으나 그들이 흩뿌린 죽음의 씨앗은 여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몸을 끊임없이 위협한다.      


오늘 원불교 수행자로서, 삼동백천기술직업학교 임원으로서, NGO삼동인터내셔널 활동가로서, 하지만 또 어쩔 수 없는 이방인으로서 매 순간 라오스에 한 점 생채기를 남기지 않도록 한 톨의 상(相)도 드러나지 않도록 밑 간데없는 하심(下心)으로 나 하나를 밝힌다.          


https://www.youtube.com/watch?v=Es1A1XoM5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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