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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영등 Aug 21. 2023

술수의 시대

라오스 삼동백천기술직업학교


술수術數의 시대     


인연 따라 때가 되어 출가한다고 절로 부처가 되지 않는다. 입성과 먹거리 그리고 호칭이 바뀌더라도 지난 나날이 빚어낸 ‘나’는 그대로다. 단지 첫 걸음을 땠을 뿐이다.      


수도자의 꼴에 맞게 심신을 어떻게 가누는지 배우는 간사(행자)시절에는 열 가지 계문을 지니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는 것부터 시작해 청소를 비롯한 갖은 허드렛일을 도맡아야 할 뿐 아니라 술 담배는 물론 과식을 삼가야 한다. 스승님을 모시며 ‘나’의 계획과 ‘나’의 생각을 놓기를 끊임없이 단련했다.     

 

불경을 우렁차게 외며 부처님의 은혜가 나와 이웃을 넘어 온 누리에 이르기를 하루를 거르지 않고 기도했다. 눈 밝은 이의 힘을 빌려 천도재를 통해 내 주위를 떠도는 영혼들이 수행 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바른길로 인도했다.       


허나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마냥 거침없을 것 같은 꽃발신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전생에 닦은 곳까지야 어찌저찌 다다르나 이윽고 기나긴 정체에 시달려 지치기 일쑤다. 애달픈 노력을 더하지 않고선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막막함을 이기지 못한 간절한 심경에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기업컨설팅만 한다는 명리학자에게 내가 과연 수행자의 자질이 있는가 물었다. 유튜브 세계를 떠도는 소문을 두루 살펴 구루들의 법문을 알아내는 족족 되새겨 들었다.     


뇌파를 활용해 정신을 맑히고 집중력을 높이고자 고등학교시절 이후 처음으로 엠씨스퀘어를 찾아 기웃거렸다. 메디테이션음악을 듣고 앉는 자세를 바로잡아준다는 방석을 마련하고 또 척추를 곧추세워준다는 무릎의자도 샀다.     


뇌 기능 향상에 효과적이라는 비타민 B-12를 꼬박꼬박 챙기고 마음 안정에는 세로토닌이 좋다기에 생선, 콩, 해바라기 씨, 아몬드 등에 눈길을 줌은 물론 사상체질을 살펴 음식을 가렸다.   

  

아로마테라피 강의를 들으며 샌달우드, 프랑킨센스, 몰약, 시더우드 등의 에센스오일이 선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 적용해봤다. 수지침 선생과 한의사에게는 정신수양에 좋은 혈 자리를 물어 뜸을 뜨거나 지압을 해 막힌 혈을 풀었다.      


태극권과 도인술을 익히고 맑은 에너지를 전해준다는 은둔 고수를 여러 해 따르고 기운이 청아하다는 데마다 쫓아가보고 이름난 선방을 기웃거렸다. 또한 나의 사주오행에 물이 부족하다하여 법명에 비 雨자를 넣었으니 참으로 가지가지 해 볼만 한 것은 어지간히 다 건드려봤다.      


그래도 운세를 끌어 올리려고 성형수술을 해서 관상을 바꾼다거나 문신을 한다거나 장신구를 찬다거나 궁합을 봐서 배우자를 고르거나 풍수에 따라 거처를 정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문득 수행방편에 치우친 나머지 부모까지 등지고나와 원불교에 발 디뎠던 첫 마음을 잃어버리고만 나를 자각한 까닭이다. 그간의 노력이 헛되겠냐마는 이렇게 수단이 내 삶을 지배하고 말았다.      


방법에 치우쳐 자비의 길을 다하지 못했으니 이는 삿된 욕망에 사로잡혀 나만을 바라본 터다. 깨치지 못한 사람이 쓰는 방편은 술수가 되기 쉽기에 명상마저 상업화된 시대분위기 안에서 나도 어쩌면 장삿속에 빠져 한낱 마음공부 장사치에 머무르고 말았을지 모른다.   

   

조금 더디더라도 대지에 발을 디디고 서서 서로를 북돋으며 이웃과 더불어 손을 잡고 나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붓다가 연 인간의 길일테다.      

  

대종사의 가장 꺼리신 바는 독선기신獨善其身으로 공중도 불고하고 동지도 불고하고 저 혼자만 독특한 공부를 꾀하는 제자였나니모든 동지와 함께 동정이 한결 같은 대승의 공부를 하고모든 동지와 함께 고락을 나누는 대승의 사업을 하여야 대종사의 참다운 제자요 우리의 알뜰한 동지니라. - 정산종사법어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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