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시작하는 것, 그리고 마무리하는 것 모두가 어렵기 때문이다. 거창한 질문인 만큼 답변을 하는 나의 마음 또한 왠지 거룩해진다. 대단한 답을 해야 할 것 같아 고민을 오래 하게 된다. 그러다 잠정적인 답도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그래서 여기에 가닿을 수 있는 메신저로 우회질문이 필요하다. 우회질문들을 던지며 얻은 답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힌트를 얻으며 더듬더듬 자신을 객관화하게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은 책을 왜 만들었는가에 대한 답변을 해야 했다. 책도 나에겐, '나는 누구인가'를 대답할 수 있게 도와주는 하나의 수단이었다. 내가 남긴 흔적들, 그러니까 글과 그림들, 그리고 나의 인생의 선택들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쓴 글을 읽어보며, 공통분모를 찾아 목차를 만들었고, 완성된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어내는 노력을 들여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려 했다. 그렇게 짜내고 짜내서 간략하게 정리해낸 것이 바로 나의 책 제목이었다. <공부쟁이의 궤도 밖의 삶>. 즉, 나는 이 책 제목을 짓기 위해 이 책을 지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책을 써내는 인고의 과정을 겪지 않아도, 글과 그림으로 흔적들을 남기지 않아도, 일상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답할 수 있는 시그널이 뭐가 있을까? 매 순간 나를 알아차리고 싶은 욕심과 고민으로 얻어낸 마법의 질문은 '굳이'다.
굳이 하는 일에 '나'가 들어있다.
살면서 그런 질문을 종종 들을 때가 있지 않은가?
너는 굳이 그걸 왜 해? 굳이 그렇게 멀리까지 니가 간다고? 왜? 굳이 그렇게까지 그 사람을 맞춰 줄 필요가 있어?
굳이. 굳이나?
이런 말은 이럴 때 듣게 된다. 생뚱맞은 선택을 하는 경우. 예를 들면 학교를 잘 다니다가 전공과 상관없는 분야에 뛰어든다던가, 누가 봐도 좋아 보이는 선택지를 놔두고 불안정한 상태에 자신을 던진다던가 하는 선택 말이다. 그리고, 나라면 안 갈 것 같은 시간도 오래 걸리는 곳에 굳이나 가겠다고 고집을 부릴 때. 멀리서 열리는 공연을 굳이 보러 갈 때도 듣게 되고, 요즘같이 온라인으로 책을 주문하면 내일 도착하는데도 굳이나 서점에 가서 직접 책을 사겠다고 할 때도 듣게 된다. 누가 봐도 얻는 게 없어 보이는데도 무보수로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도 듣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굳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을 때도 듣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굳이'라는 질문을 떠올린 뒤, '그래, 내가 굳이 왜 그럴까?'를 진지하게 탐색해보면 된다.
굳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내가 그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효율적, 합리적인 것을 뛰어넘는 가치가 거기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온라인의 빠른 책 배송이 주지 못하는 오프라인 서점공간이 주는 무언가를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고, 안정적인 무언가보다 조금은 불안정해 보여도 나는 무언가에 도전하는 데 가치를 두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나는 시간이 걸려도 직접 내 두 눈으로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을 보고 오고 싶기 때문이다. 끌림이 있기 때문이다. 끌리는 일에는 논리적인 설명이 뒤따르지 못한다.
굳이는 그래서 결국 나의 끌림을 보여준다.
그래서 당신이 굳이 하는 행동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자고 말하고 싶다.
굳이만 잘 알아차리고 있어도 내가 누군지 대강은 알 수 있지 않을까?
굳이 하는 일이 있어 조금 더 행복하다.
굳이 하는 일이 나를 태우는 연료가 되어주고, 나의 일상에 열정을 부어준다. 그리고 결국엔 삶이 힘들어질 때 굳이 하는 일이 나를 지탱해준다. '굳이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국토종주를 해야 해? 차 타고 가면 되잖아? 굳이 땡볕에 무슨 자전거 여행이야?'라는 말을 들었지만, 여행을 다녀온 나는 나의 도전정신을 떠올리며 힘든 순간을 버틴다. 자전거로 다녀왔다는 경험이 굳이 굳이 나를 살린다. 굳이 돈도 안 되는 책은 왜 만드냐, 그럴 시간에 다른 걸 하라는 말을 들어가며 굳이 책을 만들었지만, 나는 굳이 만든 책이 나와 독자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보며 행복하다. 그리고 파생된 쓰임이 나를 지탱해준다.
지금 나는 또, 아무런 대가도 보수도 나오지 않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굳이나 몇 번의 수정을 거쳐가며 이 글을 쓰고 있다. 굳이 쓰고 있는 것이다. 굳이.
한참을 굳이 굳이라는 말을 쓰다보니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굳이나 그걸 해야겠어?'라고 말하던 한 사람. 그래 '굳이 하고 싶으면 해야지.'라고 말해준 사람.
오늘의 글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살라고 했지만 굳이 하고 싶으면 하라던 어머니께 바친다.
아! 순간적인 상황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좋은 질문이 하나 더 있다.
당신을 다섯 글자로 표현한다면?
당신은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이 거창해서 거룩한 답을 내놓지 못해 숙연해질 때, '다섯 글자로 표현한다면?' 하고 글자의 제약을 주면 조금 수월하게 대답을 한다. 고민 없이 툭 튀어나오는 대답이 본심을 가장 잘 드러낸다.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며칠 전의 상황에서 나는, '좀 무서워요'라는 답을 내놓았다. 그러고선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나의 무의식은 두려움이 당시 가장 큰 고민임을알게 됐다. 오랜 생각을 하고 내놓는 답변도 좋지만, 이렇게 툭 튀어나오는 간결한 답변이 좋은 이유다. 내가 회피하거나 외면하려던 본심이 드러나는 순간이니까.
오늘 다시 내게 다섯글자로 오늘을 표현해보라고 한다면, '잘한 것 같아'다.
책 내길 잘 한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내게, 굳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기회와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하게 대뜸 오늘의 나를 다섯 글자로 표현하면 뭘까? 물어보는 기회를 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