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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슈 Feb 12. 2024

나도 모르게 흘러 들어오는 물결

고래와 인도

살다보면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나에게로 거대한 파도가 밀려들어오듯이 무언가가 다가올 때가. 세상사에 적당한 호기심은 가지고 있었으나 딱히 그걸 쫓은 것도 아니었는데, 그 곳으로 향하는 길이 징검다리처럼 눈 앞에 나타나서 발 닿는대로 걷다보니  내가 상상하지 못한 어딘가에 서있는 나를 발견하는 때 말이다.


나는 지금 인도에 있다. 델리공항 옆 에어로시티 스타벅스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참 묘하다.

세상에서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새로운 강국이 될 것이라는 뉴스가 떠돌 때까지만 해도 인도는 내 경계 너머의 일이었다.   그러다 건명원에 들어갔는데 20대인 서른 명이 모여있는 곳에서 인도와 큰 인연을 가진 친구가 넷이나 되었다. 한 명은 인도에서 핀테크 스타트업을 하는 친구, 하나는 인도어학과를 전공하는 친구, 하나는 인도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남자 동생, 그리고 인도에서 선교사인 아버지 아래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여자 동생.

인도라는 작은 물줄기가 내게 흘러왔다고 생각되어서, 흥미를 갖고 인도와 인연이 있던 네 친구들의 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들었었다. 그 때 남자동생이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이라는 책을 인생책으로 꼽으며 추천했으나 읽진 않았다. 나는 인도의 경제적인 성장동력은 궁금해했으나 여행까지는 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류시화의 에세이와 시집은 예전부터 읽고 있던터라 그의 다른 책들을 읽으며 인도에 대해 궁금증만 품고 있더랬다.


그 뒤 친한 언니가 인도공과대학 출신인 남편과 결혼하게 되면서 나에게 흘러들어오는 인도라는 물결이 결코 작은 물줄기가 아님을 알게되었다. 언니와 언니 남편과 자주 어울리면서 IIT를 비롯한 인도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던 때에는 코로나때문에 인도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고, 2024년에야 인도에 오게되었다.


참 신기하지 않은가. 어딘가에서 내가 인도에 가야한다고 등을 떠미는 것도 아니었는데 징검다리처럼 인도로 가는 길이 나 있었다.

인도에 왔으니 인도식대로 해석하자면, 내가 인도에 올 건 이미 아주 오래 전에 예정되어 있는 신의 뜻이었을지도!




그 다음은 고래다.

내겐 고래를 아주 좋아하는 오래된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집에 가면 고래 시계도 있고, 고래굿즈가 참 많다. 그걸 보고서 나는 친구에게 '너는 고래가 왜 좋아'라고 자주 물었고, 관심이 적다보니 시간이 지나면 그 대답을 자주 까먹곤 했다.

그러던 작년 주말근무를 불사하며 듀를 맞추려 애를 쓰고 있던 때에 우연히 누군가 틀어둔 고래와 상어 다큐를 보게 되었다. 그 때 같이보던 친구는 내가 고래상어를 닮았다고 했고, 평소에 보던 장르가 아니어서 머리 식힐겸 바다 속의 고래와 상어들을 명상하듯 바라보았다. 그 다음날 또 다른 고래를 좋아하는 친구가 나타나더니 잔뜩 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갔다.

그 뒤 또다른 친구와 겨울의 몽골을 보러가려했지만, 1월에는 아무도 몽골에 가지 않는다는 여행사의 단호함에 패키지 여행을 포기하고 친구가 2안으로 생각했던 세부에 가게된다. 퇴사 후 정신적 여력이 없던 나는 친구가 가자는 대로 따를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고래상어 투어'가 있다는 거다.


'뭐지,,, 고래상어라고?'
'거기에 마침 내가 며칠 전에 본 고래상어가 있다고?'

고래상어는 아침형 고래라서 그들을 보려면 새벽 2시 반부터 출발해서 오슬롭인라는 동네에 가야한다. 그렇게 바다수영도 안 해본 나는 맨몸으로 바다 속에 들어가서 고래상어와 함께 헤엄쳤다.


세부에서 돌아왔는데 고래를 좋아하는 친구가 더 많은 고래와 상어를 알려줬다.

'이것도 나를 향해 밀려오는 밀물인가?'싶어서 그때부터 유튜브에서 고래 다큐를 찾아봤다. 고래가 수염고래와 이빨고래로 나뉜다는 것도 알게됐고 포유류인데 바다에서 산다는 점이 알수없는 끌림를 주었고 알면알수록 정이 들었다. 또향유고래가 물 속에서 세로로 서서 자는 모습을 보며 평화로움을 느꼈다.

세부에서 돌아와서 며칠 뒤 언니와 일본에 가게되었는데, 조카를 위해 돌고래를 보러 가야한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또  고래의 물결에 휩쓸려 돌고래와 파일럿 고래, 상괭이를 만났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

세부에서 기념품으로 사온 고래 상어를 단 몇시간만에 잃어버려서 슬퍼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고래상어 종이블럭을 깜짝 선물로 보내줬다. 고래상어가 멀어져도 자꾸 내게 돌아온다.



그렇게 인도와 고래는 내게 밀물처럼 밀려왔고 나는 밀물에 잠겨 그 안으로 더 들어가보게됐다. 그러면서 알게된 흥미로운 사실은 지구 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대왕고래가 스리랑카에서 자주 보인단다. 그리고 스리랑카는 인도 바로 옆에 있다. 언젠가 대왕고래를 보러 인도에 다시 오는 희미한 미래가 보인다.


누가 나를 인도와 고래와 맺어주려고 하는게 틀림없다. 그건 신의 뜻이겠지!

그리고 나는 여기 인도에서 <하늘호수로떠난여행>을 열심히 읽고 있다. 이후에 난 또 어떤 물결을 받아들이게 될까 너무 궁금하고 기대된다.


살면서 이상하게 내 앞에 생각지못했던 무언가를 향한 징검다리가 나타날 때, 어디선가 트루먼쇼처럼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손을 번쩍 들며 알려주려 다가올 때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테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내게 물처럼 밀려오라

- 이정하, <낮은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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