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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송 Jul 25. 2023

엄마와 연결된 매듭 하나를 푸는 날

일상의 흔적 135

7월 25일, 구름 많은 날.

친구와 옛이야기를 서로 주고받다가 민증을 처음 만들었던 날이 떠올랐다. 민증에 넣을 사진을 찍기 위해 서툰 화장을 하며 머리도 고데기로 곱게 폈었다. 친구들과 우르르 달려가서 찍은 사진에는 어색함과 설렘이 공존하는 표정의 내가 있었다. 학생증을 만들었던 때와는 아주 다른,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내가 어른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어른의 세계로 가는 입장권을 받은 듯한 오묘한 기분. 이제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새로운 두근거림.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엄마와 주민센터로 달려가 민증을 만들었다. 어색하게 신청서를 적고 사진을 내고 지문도 등록했었다. 아주 오래된, 아마 14년 전이었을 그날의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그만큼 지나온 시간 중 강렬했다는 얘기일까. 지금까지의 기억은 그저 그날 신기했고 설렘으로 가득한 기분이 하루종일 이어졌다는 것뿐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 오늘에서야 그날의 다른 기억들이 떠올랐다.


민증을 신청하면 그때만 해도 직접 잉크를 손가락 지문에 묻혀 신청서에 찍었었다. 워낙 옛날이라 정확한 기억일진 몰라도 잉크를 손가락에 묻혀 지문을 찍었던 건 선명하게 기억한다. 모두 찍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는 나를 보는 엄마의 표정이 정확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축축하고 차가운 손을 손수건에 꼭 감싸서 품에 안아줬던 엄마, 어릴 적 엄마의 생일에 선물했던 손수건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손수건을 보고 놀란 내게 엄마는 "아까워서 자주 사용 못하다가 손 닦아주려고 들고 왔지. 이 손수건 주면서 신나게 웃던 꼬맹이가 언제 이렇게 컸지"라고 하며 애틋하게 웃었다. 말없이 손을 잡아주던 엄마가 떠올라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그땐 그저 민증 만드는 게 신나고 재밌어서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떠오른 기억에 궁금해졌다. 그날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직 물어보진 않았지만, 대학을 부산으로 가며 독립을 하게 된 나에게 했던 표현을 빌려 빗대자면 엄마와 연결된 매듭 중 하나를 풀어낸 기분이지 않았을까. 엄마는 대학을 통해 독립하게 된 나에게 이제 더 이상 연결고리가 없다는 말을 했었다. 내 성장에 따라 엄마의 영향력이 점점 줄면서 엄마와 연결된 매듭 하나하나를 풀어가는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매듭이 하나씩 풀릴 때마다 뿌듯하기도, 때론 서운하기도, 어떤 날은 외로운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고. 언제나 품 안에만 있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언제까지나 품 안에 두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라고 했다. 아직 자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지만, 오늘 문득 기억과 함께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먹먹해졌다.


어른으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민증을 발급받는 날, 거울을 통해 다 커버린 딸의 얼굴을 보고 대견하기도, 조금은 씁쓸하게도 느끼는 듯한 엄마의 얼굴. 언젠가 엄마의 감정을 진정 이해할 수 있는 때가 올까. 그저 오늘 엄마를 꽉 안아주고 싶다.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도 엄마와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언제나 엄마의 딸일거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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