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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스물다섯 즈음에..

2007년 어느 날의 끄적임

by JIN

이 글은 2007년에 작성되어 2019년에 발행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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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서 내려 세종문화회관을 끼고 이어지는 좁다란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면, 변변찮은 간판 하나도 없는 小雨라는 카페가 있다. 카페라고 해봤자, 햇볕도 들지 않는 반지하에 고작 두어 평 남짓한 공간이 전부다. 낮은 천장을 따라 드문드문 늘어선 백열등 아래로, 테이블 겸 선반 역할을 하는 낡은 붙박이 판자 하나에, 등받이도 없는 간이 의자 몇 개가 줄지어 놓여 있을 뿐. 목을 빼고 주의를 기울여 살피지 않으면 쉽사리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볼품이 없는 허름한 가게다.


그러나 그곳에는 사람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다. 넓지도, 그렇다고 화려하지도 않은 이 소박한 가게가 그토록 매혹적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람 냄새’ 때문이리라. 찾는 이의 수가 조금이라도 넘친다 싶으면, 주인은 열어둔 문을 닫곤 더 이상 손을 받지 않는다. 그러면 손바닥만 한 공간에 예닐곱 명 남짓한 낯선 이들이 모여, 서로 어깨를 맞댄 채 옹기종기 웅크리고 앉아,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금세 저도 몰래, 살아가는 이야기- 첫사랑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이라던가, 지난날의 어리석음에 대한 속절없는 탄식이라던가, 혹은 소일거리의 재미 따위의 것들-를 허물없이 털어놓게 되는 것이었다. 마치 오래된 벗을 만나기라도 한 듯이.




작은 비, 그 사람 냄새 가득한..

- 광화문 김광석과의 조우


사람과 술과 음악에 취한 이들에게서 풍겨 나는 질펀한 내음에 이끌려, 그곳은 늘 손으로 북적인다. 40대 초반의 회사원 둘에, 조만간 결혼을 할 것이라는 젊은 연인 한 쌍과, 이제는 제법 낯이 익은 한 중년의 단골에 나와 죽마고우 H까지, 오늘도 소우는 만원이었다. “우리 핏덩이들 왔어?”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평균 연령대가 40대임을 고려하면 이제 막 이십 대 중반에 이른 나와 H는 아직 핏덩이인 셈이다.) 단지 사람을 좋아한다는 이유 하나로 장사를 계속한다는 이모는 차가운 맥주 몇 병을 꺼내어 우리를 반긴다. 그리곤 곧 K가 올 테니 천천히 앉았다 가라고 일러주신다.


간만에 K를 볼 수 있다니, 운이 좋은 날이었다. K, 그는 이 조그마한 카페에선 여느 톱스타 못지않게 인기를 누리는 가수이다. 낮에는 변호사 사무소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이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는 카페가 처음 문을 연 20여 년 전부터 제 집 들듯 이곳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사람과, 술과, 음악을 사랑하는 소우인들의 터줏대감인 셈이다. 곧이어 문을 열고 들어선 K를 우리 모두는 박수와 환호성으로 맞이했다. 짓궂은 표정으로 씨익 웃어 인사를 대신하고선, K는 이모가 건네주는 담배 한 대를 받아 입에 문다. 그리곤 곧장 가게 한 편에 놓인 통기타를 손에 쥔 채 무대에 올랐다. 무대라고 해봤자, 사실은 출구로 향하는 계단에 의자 하나를 놓아둔 것이 전부이지만, 이곳에선 그 무대에 서는 자는 그가 누구이건, 조용필이나 양희은 같은 국민가수의 대우를 받기 마련이다.


피던 담배를 장난스럽게 귓바퀴에 꽂고, 몇 차례 목을 가다듬은 K가 드디어 노래하기 시작한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다. 자욱한 담배 연기와 주황빛 백열등 조명 사이로 감미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여기저기서 나지막한 탄성이 쏟아진다. 자칭 광화문 김광석이라는 그의 주장은 허풍이 아니었다. 조금 거친듯하지만 찰진 목소리, 귓가에 제법 묵직하게 감기는 그 목소리에, 나와 H는 손을 마주 잡고 눈을 감았다. K의 노래를 듣고는 감동에 겨워 눈물을 쏟은 이가 부지기수라는 또 다른 단골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다.




서른 즈음, 가을을 맞이하는 심정으로..

- 내게 주어진 시간


서른 즈음, 혼자서 인생을 짊어지기엔 아직 버거운 시기. 그렇다고 누구에게 기대려 하기엔 이미 다 큰 어른이 되어버린 어정쩡한 시기에, 덧없이 흘러간 지난날을 돌이켜보는 이의 심정. 애달픈 그 목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나른한 분위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알코올 기운 때문인지, 가슴을 꿰뚫는 노랫가락에 눈시울이 달아올랐다. 하루하루 멀어진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덧 나 또한 이십 대 중반을 바라보게 된 만큼, 그 심정이 새삼 낯설지 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워가는 내 가슴속에/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故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인생을 계절에 견주어보면, 갓 피어나는 십 대는 따사로운 봄과도 같다. 열정에 불타는 이십 대를 여름이라고 한다면,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삼사십 대는 가을이다. 달리 말하면, 서른 즈음에 이른 사람의 마음은 곧, 늦여름의 끝자락에 서서 가을을 맞이하는 이의 심정과도 같은 것이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선, 가을 동안 그간 가꿔온 곡식과 열매를 양껏 수확해 두어야 한다. 그렇기에 지나간 여름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가을을 맞이하는 이의 마음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기나긴 여름내 방만하고 나태하게 시간을 흘려보낸 이는 때늦은 후회로 두려움에 떨지도 모른다. 반면, 여름내 뜨거운 뙤약볕 아래 땀 흘리면서도 부지런히 영글어간 이에게, 가을은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는 반가운 계절이 될 것이다.


서른. 앞으로 5년 후, 나는 과연 어떤 심정으로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문득, 여름의 중턱에 다다른 이 순간 내게 남은 것은 지침 잃은 나침반처럼 흐리멍덩한 두 눈과 축 쳐진 두 어깨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 스물다섯 즈음에는 이미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일구어 놓았으리라. 스무 살이 되던 해, 나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딴에는 흥미를 끄는 것이면 무엇이건 닥치는 대로 몸담아 왔기에, 적어도 그리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는 않다고 자부해왔는데, 돌이켜보면 그저 치기 어린 감상에 빠져 매 순간 충동적으로 삶에 임했을 뿐, 단 한 번도 나는 가을을 위해, 가을을 준비하며 치열하게 살아 본 적이 없다. 결실을 위해서는 무한한 인고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인데, 내게는 그것을 감내할 만한 끈기도, 또 미래를 내다볼 혜안도 없었던 것이다. 손아귀에 움켜쥔 모래알처럼, 놓치지 않으려 죄면 죌수록 세월은 흔적도 없이 흩날려버리고, 이제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다섯 해 밖에 남지 않았다.


불현듯 목이 탄다. 유리컵에 반쯤 남은 맥주를 들이켜 목을 축여보지만, 좀처럼 목마름은 가시질 않았다. 콘서트를 방불케 하듯, K의 지휘에 따라 사람들은 <바위섬>을 열창하며 신이 났는데, 나는 더 이상 그 순간을 즐길 수 없었다. 목구멍 저 깊숙한 곳에 가시라도 걸린 것처럼 칼칼한 느낌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이모에게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어주어 아무렇게나 계산을 하고, H의 손을 끌어 문을 박차고 나섰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 거리는 한산하다.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취객을 끌기 위해 경적을 울려대는 택시들만이 남은 광화문 거리는 운치도, 풍류도 없이 그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코끝에 닿는 바람이 제법 쌀쌀한 걸 보니, 이제 정말로 가을이 오려나 보다. FIN20070911




덧.

2007년, 고작 스물 다섯 밖에 되지 않던 때에 '서른'의 무게는 이렇게나 무거웠나 보다. 대학교 졸업반이었던 당시, 다소 비통한 심정으로 한자한자 써내려간 글. 2007년의 나는, 삶의 중압감에 짓눌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했고, 그저 그런 별볼일 없는 서른 몇 살의 어른이 되는게 싫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흔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돌이켜보니 나의 삼십 대는 찬란하고 또 아름답게 빛나기만 한다. 십여 년 동안 닳고 닳은 탓에, 나와 H는 분명, 당시의 이모나 K만큼이나 능글맞고 또 기름진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순수함을 맞바꾼 대가로 얻은 세상살이의 수완 덕에, 이제 더는 다가올 마흔이 두렵지 않다. 앞으로 내게 주어진 나날들이 더 찬란하고 또 더 풍요롭기를... 20191205 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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