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어느 날의 끄적임
그렇다. 나는 N마리의 고양이를 키운다. 007 비밀작전도 아니고 굳이 N마리라고 두루뭉술 에둘러 표현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처음으로"냥줍"을 한 때가 2009년 즈음이었던가. 당시만 해도 고양이는 보편적인 반려동물이 아니었다. "나만 없어 고양이" 같은 밈이 유행하는 것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당시에는 고양이를 향한 모종의 사회적 반감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영물(靈物)이라 터부 시 하던 고양이를, 한 마리도 아닌 여러 마리를 기른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신랄하기 짝이 없었다. 혹자는 나를 애니멀 호더라 낙인찍었고, 또 다른 이는 날더러 '시집은 다 갔다'며 대놓고 비아냥을 일삼았다.
그렇게 몇 차례의 데임(?)을 겪고 나면 꽤나 무뎌질 법도 한데, 집사 17년 차가 된 지금까지도 "캣밍아웃"은 여전히 불편하고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캣밍아웃을 하고 나면 어느 틈에 "쟤 고양이 엄청 많이 키우는 걔" 혹은 "캣맘" 같은 꼬리표가 붙고만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렇게나 나를 규정하는 시선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굳이 불필요하게 입에 오르내리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그냥 N마리의 고양이를 기른다고 답한다. 왜? 그래야 내가 편하니까.
N마리의 고양이를 기른다고 답하는 두 번째 이유는 꽤나 단순하다.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 N+1마리가 될 수도 있고 N-1마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내 마음이나 내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얼토당토않게 들리겠지만, 나는 N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게 된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 참고로 나는 뼛속까지 무신론자다. 집사 경력 만 17년 차에 이르러 생각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세상에 난 순간부터 개인에게는 이른바 소명처럼 책임져야 할 생명의 수가 정해지고, 소명을 받은 이는 주어진 할당량을 채워 정성껏 돌봄으로써 도리를 다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각설하면 "고양이 소명론" 정도로 이름 붙일 수 있는 개똥철학인데, 나는 이 철학에 따라 소신껏 하늘의 뜻을 받들기로 했다.
십여 년 전 "한 마리 더 들이면 성을 갈아버리겠다"는 결연한 다짐을 저버리고 N번째의 고양이를 냥줍 하면서, 나는 일체의 모든 의지를 다 내려놓았다. "이 또한 하늘의 뜻이리라"며 내게 주어진 몫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자 모든 게 편해졌다. 혹자는 내가 작정하고 N마리를 목표로 냥줍 한 것이 아니냐 하는데, 전문 분양 업자가 아니고서야 실제로 그런 마음으로 고양이를 수집(?)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올해로 17살이 된 첫째 구름이 외에는 맹세코 단 한 마리도 내 의지로 데려오지 않았다. 지금 당장 데려오지 않으면 죽을 것이 뻔한 녀석들이었기에, 눈앞에서 꺼져가는 생명을 외면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데려오게 된 것이 어느 틈에 N마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엄동설한에 홀로 버려졌거나, 사고를 당해 부상을 입었거나, 태어나자마자 약하다는 이유로 어미에게 버림받았거나.. 제각기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 죽을 운명에 처한 아이들이었다. 꺼져가는 생명에 잠시나마 불지필 마음으로 데려오게 된 것인데, 불행히도 그렇게 데려온 아이들은 하나같이 길냥이에 외모도 볼품이 없고, 심지어 건강 상태도 좋지 못하기에 다른 곳에 입양 가지도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운명이라 생각하고 내가 거둘 수밖에..
다행히 운명은 관대하여 내게도 숨 쉴 구멍을 터주었다. 처음 냥줍을 하던 그 순간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가들을 다 품을 만큼, 딱 그만큼의 경제력을 내게 선사해 주었다. 경기가 어려운 요즘 같은 시기에도, 별다른 홍보나 노력 없이도 사료와 캔, 모래를 살 정도의 일감이 늘 나에게 주어진다. 또 하나 신기한 점은 일을 정말 열심히 해서 수입이 짭잘했던 20대 때는, 주변 친구들이 하늘만 쳐다보고 다니라고 할 정도로 자주 고양이들과 맞닥뜨렸었다. 말그대로 길 가다 발에 차일 만큼 수없이 많은 고양이와 연이 닿았더랬다. 그런데 또 일거리가 많이 없고 벌이가 이전만 못하게 된 이후에는 알아서 고양이가 눈에 띄거나 발에 밟히지 않는다. 나름의 순리에 따라 그렇게 수급의 균형이 맞춰진 것이다. 그러니 이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라 하겠는가....[To be continued 25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