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영미문학계를 뒤흔든 삼각 스캔들에 대하여
2010년경, 아직 패기 넘치던 이십 대 무렵의 일이다. 당시의 나는 똥덩어리 같은 지적 허영에 가득 차 꼴 같지 않은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곤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영미판 고급 잡지 구독'이었다. 한 때 타임지 구독이 고상한 취미로 세간에 유행한 적 있었다만, 지적 해갈(解渴)에 목마른 열혈 지식인(?)인 내게 그런 대중적인 시사지가 성미에 찰 리 없었다.
지적 수준도 얕고 영어 실력도 형편없었지만 메타인지가 부족했던 나는 뻔뻔하게도 뉴요커지 [The New Yorker]를 구독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뉴요커 지는 영미권에서도 수준 높은 인텔리만 보는 잡지로 정평이 나있었다.)
다달이 우편함으로 배송되던 '인텔리의 증표'를 침대맡에 쌓아두면서, 나는 밥 안 먹어도 배부른 듯한 가슴 벅참을 느끼곤 했다. 권수가 차곡차곡 늘어날수록, 내 지식의 총량과 깊이도 그에 비례해 증폭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물론, 채 반절도 읽히지 못한 잡지 더미는 이후 불쏘시개로도 쓰이지 못하고, 죄다 재활용 꾸러미에 내던져졌다만..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기십만 원의 구독료를 완전히 허공에 날린 건 아니었다. 덕분에 내 인생 최애 작가를 만나게 되었으니 말이다. 영미 문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했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그 이름, 바로 조나단 사프란 포어(Jonathan Safran Foer)다.
1. 분더킨트의 등장, 조나단 사프란 포어
2010년 뉴요커 지는 북미 문학계를 이끌 40대 미만 작가 20 인선 [20 Under 40] 코너를 게재했다. 특집으로 소개된 포어의 단편 [Here We Aren't, So Quickly]은 파편화된 기억과 관계의 순간을 독특한 문체로 담아낸 작품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유려한 문체와 독창성이 묻어나는 구성. 포어의 글에 매료된 나는 마치 보물 찾기라도 하듯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2002년 첫 장편 [모든 것이 밝혀졌다(Everything Is Illuminated)]로 25살의 나이에 등단한 포어는 말 그대로 분더킨트(Wunderkind, 천재적 신인)였다. 그의 작품은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전통적인 소설의 경계를 무너뜨렸는데, 특히 2005년 작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에서는 빈 페이지, 사진, 그림, 글자 크기의 변화 등 온갖 실험적인 표현 방식을 동원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런 시각적 장치는 단순한 기교가 아니라 9/11 트라우마를 겪은 소년의 내면세계를 세밀하게 표현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사람은 슬픔을 표현할 방법이 없을 때 침묵하거나 새로운 언어를 만든다"라는 포어의 작품 속 문장처럼, 그 자신도 기존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추구했던 것이다.
2. 영미 문학계의 파워커플, 포어와 크라우스
조나단 사프란 포어하면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사랑의 역사(The History of Love)]로 유명한 그의 전처, 니콜 크라우스(Nicole Krauss)다. 두 사람은 문단의 라이징 스타로 같은 문학상 후보에 오르면서 처음 만났다. 유대계 혈통에, 파격적인 문체로 문단의 주목을 받던 이들은 첫 만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했고, 곧 '영미 문학계의 파워 커플'로 불리게 되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두 사람의 작품 세계는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줬다.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는 출간 시기도 비슷하고, 홀로코스트의 그림자, 유대인 정체성 탐색, 상실과 기억이라는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마치 쌍둥이 작품 같았다. 이 때문에 일부 비평가들은 "누가 누구를 베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지만, 실상 두 사람의 작품은 비슷한 듯 또 완전히 그 결이 다르다.
[사랑의 역사]의 주인공 레오 구르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한때 나는 내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글로 옮기려 했다. 하지만 글은 결코 삶을 담아내지 못한다." 크라우스의 작품은 포어에 비해 이런 철학적 사색이 돋보인다. 조용하고 깊은 물결처럼 서정적인 문체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크라우스와 달리, 포어는 언제나 한 발짝 튀어나온 문장과 실험적인 형식으로 독자를 놀라게 했다. 이런 차이는 두 사람의 성격 차이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