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영미문학계를 뒤흔든 삼각 스캔들에 대하여
3. 그러니까 언니가 왜 거기서 나오냐고..
두 라이징 스타의 만남과 결혼. 그래 그건 알겠고, 그래서 그 둘이 뭘 어쨌냐고? 자자. 기다려보라.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바로 지금부터다. 포어와 크라우스는 2004년에 결혼해 2016년에 이혼했는데, 그 배경에는 우리가 잘 아는 한 할리우드 스타가 있었다. 예상 밖의 장소에서 등장한 예상치 못한 인물, 바로 여배우 나탈리 포트만(Natalie Portman)이다. (아니, 언니가 왜 여기서 나오냐고!)
[레옹]과 [블랙스완]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나탈리 포트만은 2002년 포어의 첫 소설을 읽고 감명받아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십 년이 넘도록 이어진 서신 교류의 시작이었다. 2009년 포어가 육식 산업의 문제를 다룬 논픽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Eating Animals)]를 출간했을 때, 포트만은 이 책에 깊은 영향을 받아 비건이 되었고, 후에 이를 원작으로 한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까지 맡았다. "단순한 팬심" 치고는 꽤나 깊은(?)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이후의 정황을 보면 더더욱 세간의 의혹을 살 만하다.
4. 지적 교류 VS 정서적 불륜
사실 이 모든 이야기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은 순전히 포어 때문이었다. 2016년 그는 [뉴욕 타임스]의 T 매거진에 포트만과의 이메일 교환 내용을 공개했다. 인구(人口)에 회자될 것이 뻔한데 “도대체 왜?”라는 의문 가득한 선택이지만, 아마도 포어는 이것이 자승자박이 될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벌써 수년이 지난 사건이라 한발 늦긴 했지만, 당시 문학계를 뜨겁게 달궜던 두 사람의 오글거리는 이메일을 함께 들여다보자.
"아아. 우리의 존재는 부재의 흔적으로 가득해요. 유대인으로서, 우리는 항상 그곳에 없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죠.- 포트만"
"맞아요, 우리는 공허의 대사들이에요. 침묵의 공명을 읽는 사람들이죠 - 포어"
"전 남자친구는 제게 '모스크바'라는 별명을 지어줬어요. 항상 창밖을 슬프게 내다보는 모습이 러시아 소설이나 체홉의 희곡 같다면서요. 제 속엔 갈망과 열망, 언제나 다른 곳을 지향하는 성향이 있거든요 - 포트만."
"안식일조차도 우리의 시계를 멈출 수 없어요. 지금 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우리의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옮겨갔어요 -포어."
이 외에도 두 사람은 카프카, 벨로우, 도스토예프스키를 논하며 지적 교류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들의 진지하고 철학적(?)인 대화는 공개 직후 수많은 이의 빈축을 샀다. 현학적이고 가식적인 대화, 지적 허세로 가득 찬 의미 없는 말의 향연은 포어의 팬이었던 나조차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특히 포트만이 보낸 이 문장은 거의 사랑 고백에 가깝다. "당신의 문장은 나를 숨 막히게 해요. 공허한 내 마음에 불을 지폈지요." 포어의 답장 또한 다소 감정적이다. "나탈리, 내가 쓰고 싶은 모든 것이 이미 당신의 생각에 담겨 있어요." (니들, 연애하니, 지금?)
서신이 공개된 후, 포트만은 포어와의 관계가 두 지성인의 순수한 지적 교류에 불과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포어가 두 사람의 관계를 부인하지 않았다는 점, 또 그 무렵 그의 결혼 생활이 파경에 이르렀다는 점. 일련의 두 사건 사이에 모종의 인과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의심은 쉽사리 걷어낼 수 없었다.
5. 현실이 된 문학, 연극이 된 현실
실제로 포어는 포트만에게 깊은 연정을 품었고, 이를 당시 아내였던 크라우스에게 고백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6년 마침내 두 사람은 십여 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크라우스는 이혼 후 한동안 집필을 중단했다가 이듬해 [어두운 숲(Forest Dark)]을 출간했는데, 소설에는 자신과 닮은 여성 작가가 이스라엘에서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내용이 담겨 있다.
[어두운 숲]의 한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모든 이야기는 하나로 연결된다." 크라우스는 자신의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방식을 선택했다. 비평가들은 이 소설이 그녀의 이혼 경험과 그 이후의 정신적 여정을 반영한다고 해석했다.
흥미롭게도 세 사람의 얽힌 관계는 2023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연극 [방랑자들(The Wanderers)]의 영감이 되었다. 유대계 작가 안나 자이글러가 쓴 이 연극은 유명 유대인 소설가와 배우 사이의 위험한 이메일 교류를 다루고 있다. "실화 기반"이라는 홍보 문구로 더욱 화제가 되었다 하니, 인생은 때로 문학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6. 그리고 그 후.. (And Thereafter...)
세 사람의 내밀한 속사정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우리네 외부인들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스캔들 이후 세 사람 모두 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점이다. 크라우스는 앞서 술회한 대로 자신만의 시간을 가졌고, 포트만은 무용가 벤자민 밀피드와의 가정생활을 별 탈 없이 이어나갔다. 포어는 이혼 후 한동안 공개적인 연애 활동 없이 창작에 몰두했는데, 그러다 잠깐 여배우 미쉘 윌리엄스(Michelle Williams)와 데이트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포어가 마성의 남자인 걸까, 아니면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지성미에 유독 취약한 걸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영미 문학계에서는 이 사건이 21세기 초 미국 문학의 중요한 단면으로 연구되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 시대에 작가의 사생활이 작품 해석에 미치는 영향, 문학적 협업과 영향 관계의 복잡성을 드러낸 상징적 사례로 말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 된 셈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순전히 허영심에서 비롯된 뉴요커 구독은 의외의 수확을 가져다주었다. 최애 작가를 발견한 것은 물론, 현대 문학계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창구가 되었으니 말이다. 가끔은 부질없는 욕망이 이처럼 예상치 못한 보물을 안겨주기도 한다. 물론 그 이후로도 뉴요커 지는 재활용통으로 직행하는 운명을 면치 못했지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