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나이든 고양이 마중이에게..
2009년, 어느 겨울밤.
칠흑 같은 어둠이 신촌의 좁은 뒷골목을 완전히 집어삼키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조차 닿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운명처럼 너를 마주했다.
"냐옹."
정적을 가르는 가느다란 울음소리. 어스름한 불빛 사이로 네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빛바랜 턱받이와 회색 구두, 낡은 턱시도를 걸친 듯한 모습. 길 위에서 새겨진 상흔들 사이로도 묘한 품위가 배어 있었다. 그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조용히 너에게로 기울었다.
"안녕? 못 보던 녀석이네."
화답이라도 하듯 너는 망설임 없이 다가와 내 무릎에 뺨을 부볐다. 낯선 존재의 무심한 다정함에 미소가 번졌지만, 이내 가느다란 불안이 스며들었다. 이토록 무방비한 네가, 혹독한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너의 등을 쓰다듬었다. 거칠고 윤기 없는 모질—그 찰나의 감촉만으로도 너의 겨울이 얼마나 차갑고 고단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배고픈가보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퉁이 너머로 편의점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 금방 다녀올게."
약속의 언어처럼 울리는 네 작은 대답을 뒤로하고, 나는 너를 어둠 속에 남겨둔 채 내달렸다. 혹시라도 네가 사라질까 두려워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빈 주머니를 털어 캔을 샀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알바로 근근이 버티던 때라, 단돈 몇천 원도 아쉬운 시절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날만큼은 돈이 아깝지 않았다. 골목으로 되돌아가며 제발 네가 그 자리에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다행히 불빛 사이로 너의 작은 실루엣이 아른거렸다.
캔을 따서 내밀자, 비취색 눈동자가 별빛처럼 반짝였다.
그래. 그랬다. 그 시절에도 너는 제법 매너 있는 고양이였다. 대부분의 길고양이는 허기를 채우면 미련 없이 떠나버리지만, 너는 달랐다. 밥그릇을 비운 후에도 자리를 지켰다. 고맙다는 듯 꼬리를 부르르 떨며 내 발목을 맴돌았고, 다시금 얼굴을 부볐다. 영하의 밤공기에 식은 네 뺨이 내 무릎에 닿았다. 그 차가움이 이상하리만치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제 가볼게. 다음에 또 만나."
작별 인사에 너는 낮게 울며 한참을 응시하다가, 마침내 느린 걸음으로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날 이후, 우리의 겨울밤은 하나의 의식(儀式)이 되었다.
집으로 향하는 매일 밤, 약속이라도 한듯 너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좁다란 골목 어귀에 내 발자국 소리가 나리면, 어느틈에 나타나 너는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턱시도를 걸친 채, 비취색 눈을 반짝이며. 단 하루도 빠짐없이, 너는 나를 마중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에게 기다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위안이 되는지를. 메마른 일상의 틈새에서, 너는 매일 밤 내 안의 잃어버린 온기를 되살려 주었다.
너에게 이름을 붙인 것도 그 무렵이었다.
— 마중이.
그래. 그랬다.
2009년 어느 겨울밤, 마중이 너는 그렇게 내게로 왔다.
FIN 25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