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마중이 입양기
나는 사실 초능력자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초능력자"였었다". 세상의 모든 고양이를 끌어당기는 마력의 소유자. 그게 바로 나였다. '돈'이나 '이성'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초능력은 오직 고양이에게만 한정되어 있었다.
이십 대의 나는 그야말로 고양이계의 팜므파탈이었다. 걸어 다니는 고양이 마그넷, 문만 열고 나서면 세상의 고양이들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다. 독일 하멜른에 쥐 떼를 몰고 다니는 피리 부는 사나이가 있었다면, 마포 신수동엔 고양이를 몰던 내가 있었다.
거짓말처럼, 하루 걸러 한 번꼴로 냥이들에게 간택을 당했다. 나무 위에서 품으로 툭 떨어진 아깽이, 물컹거리는 감촉과 함께 발끝에 걸린 핏덩이까지. '냥줍'이란 단어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나는 온 동네 고양이들을 끌어안고 살았다.
누군가는 행운이라 했고, 누군가는 재앙이라 했지만, 그 시절의 나는 매일 예고 없는 '간택'에 속수무책이었다. 몇몇은 입양을 보냈고, 몇몇은 병원에 맡겼으며, 몇몇은 절친에게 억지로 떠넘기기도 했다. (미안해, 혜림아.) 그럼에도 끝내 함께 살게 된 아이들이 지금 내 곁에 있다.
전생에 고양이 학살자라도 되어 현생에 그 업보를 갚는 게 아닐까 싶을만큼, 기이하고 신묘한, 그러나 하등 쓸모없는 능력.
그리고 그 초능력의 정점에
마중이가 있었다.
마중이를 만난 지 한 달쯤 되었을까. 수은주가 유난히 떨어져 초승달마저 파랗게 질린 싸늘한 밤. 문득 마중이의 차가운 두 뺨에 따스함을 불어넣고 싶었다. 회색 먼지로 덮인 발을 하얗게 씻겨주고 싶었다. 돈도 없고 능력도 없던 반백수였지만 왠지 마중이 한 마리쯤은 먹여 살릴 수 있을 것 같은 호기로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데려가려니 막막하기만 했다. 기골이 장대한 수컷 턱시도냥은 5~6킬로는 족히 되어 보였다. 낯선 손에 안기는 걸 두려워하는 습성을 잘 알기에, 번뜩이던 발톱이 그날따라 유독 매섭게 느껴졌다. 혹여 억지로 들어 올렸다가 발버둥이라도 치면, 그간 쌓은 신뢰가 단숨에 무너질 터였다.
그러나 내가 누군던가. 나는 신수동의 피리부는 처자였다. 과감하게 손을 뻗기엔 두려움이 가시지 않아, 대신 목청껏 소리 높여 물었다. 어차피 좁은 골목길엔 나와 그, 우리 둘뿐이었다.
“6평짜리 원룸이라 좀 비좁겠지만, 마중아. 나랑 같이 살래?” 머뭇거리던 그가 대답했다. “냐옹.”
그 순간, 내 초능력이 빛을 발했다. 출입구를 열자, 마중이는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마치 원래 제 집으로 가는 길인 양 주저함이 없었다. 내 뒤를 좇아 가파른 계단을 폴짝폴짝 뛰어올랐다. 1층, 2층, 3층... 마침내 4층 우리 집 현관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곤 나를 올려다봤다.
“이제 문 열어, 집사.” 그 눈빛이 그렇게 말했다. 허무맹랑한 소리라 해도 좋다. MSG 1g도 안 들어간 순도 100%의 실화다. 다시 말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초능력자였다.
비밀번호를 누르자마자 마중이는 쏜살같이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새로 산 노오란 매트리스 위에 올라, 꾀죄죄한 몸뚱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뉘이곤 나를 바라봤다. 17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의기양양한 모습이 인이 박힌 듯 선명하다. 막장 드라마 속 본처의 자리를 꿰찬 새 안주인처럼, 그날 마중이는 안방을 점령한 왕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마중이의 거칠던 털은 윤기 흐르는 코트로 바뀌었고, 때 묻은 발은 눈처럼 하얘졌다. 주는 건 아무거나 잘 받아먹고, 길가에 언 얼음을 혀로 훔치며 갈증을 해소하던 녀석은, 이제 S급 사료 외엔 일절 입대지 않고, 오직 흐르는 정수기 물만 마셨다. K-드라마의 '신분 상승' 스토리는 마중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문득 석연치 않다. 그때 나는 내가 초능력자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어쩌면 그건 내 크나큰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하루 12시간씩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으로 매일 비싼 캔과 츄르를 바치고, 열 번 불러 한 번 귀만 쫑긋 아는 체 해줘도 뛸 듯이 기뻐하며, 온몸에 코를 쳐 박고 킁킁거리며 발바닥 하나하나, 하다못해 마중이 똥구멍에도 입 맞추게 된 나.
아뿔싸, 이제 보니 초능력자는 내가 아니었다.
그렇다.
신수동의 피리부는 처자 성진선은 신수동의 초능력묘 마중이에게 하릴없이, 그렇게 완벽하게 당하고 말았다.
열 일곱해가 지난 지금
마중이는 병상에 누워 있다.
숨이 가늘어지고,
몸이 식어가는 걸 바라보는 매일이 이어진다.
나는 여전히 초능력자라 믿고 싶지만
이제 그 힘은,
단 1분이라도
그와의 마지막 시간을 붙잡는 데
쓰이지 못한다.
그때의 마중이는 초능력처럼 내게 왔고,
지금의 마중이는 기적처럼 내 곁에 남아 있다.
이제 이 모든 시간의 중심엔
나이든 한 마리의 고양이와
힘을 잃고 무력한,
그러나 사랑만은 변함없는 집사만이 존재할 뿐이다.
"사랑한다 마중아,
네가 있어 나는 매일 정말로 행복했다."
FIN25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