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해를 살아낸, 나의 나이 든 고양이 이야기
2025년 8월 중순
복수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노령묘 전문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았고, 병원에서는 심장병과 복막염(FIP), 종양 등을 의심했다. 심장 초음파상 그렇게까지 심각한 단계는 아니었기에 복막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상의 끝에 12주의 신약 치료를 시작했다. 복수는 매주 1회 천자를 병행했고, 혈전 및 이뇨제 투약과 신장 보조 관리도 함께 진행했다.
2025년 9월 초
다행히 혈액 검사 수치가 개선되며 신약의 효과가 보이는 듯했다. 매일 한 차례 주사를 놓고, 신장약과 심장약, 보조제를 꾸준히 투여했다. 저 편해지라고 맞는 주산데, 주사만 놓으려 하면 온몸에 경기를 일으켰다. 가뜩이나 약 먹이느라 나빠진 모자관곈데, 이러다 영영 틀어질까 걱정된다. 매번 주사만 맞고 나면 구석에 돌아눕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2025년 9월 말
지난 몇 주간 컨디션이 눈에 띄게 호전된 듯싶더니, 갑자기 복수가 다시 차오르기 시작했다. 기침이 심해졌고, 폐에서는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내쉬고 들이시는 호흡 한숨 한숨이 힘겹게만 느껴졌다. 막막한 심정이다. 그래도 지레 겁먹지 말자. 하루에도 대여섯 캔씩 밥 잘 먹고 똥도 잘 싸는데 잘 버텨주겠지.. 아직은 괜찮겠지..
2025년 10월 1일
내원 당일 엑스레이에서 흉수가 발견되어 흉수 천자를 시작했다. 복막염 신약 치료는 5주 차에 접어들었지만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종양 등 다른 원인도 뚜렷하지 않았다. 호전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었는지 병원 측은 더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한다. 일단 숨쉬기 힘들어하는 아이를 돕기 위해 집에 산소방을 설치하고 밀착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2025년 10월 3일
흉수 천자 중 객혈을 해 응급상황이 왔다. 과호흡이 심해진 상태고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조심스레 안락사를 권유했다. 눈물이 쏟아졌다. 마흔 넘은 아줌마가 체통 없이, 울고 불며 떼를 썼다.
"선생님, 제가 다른 건 잘 모르겠는데요,
저희 마중이 아직 밥을 잘 먹어요.
금방 갈 아이가 어떻게 그렇게 식욕이 있겠어요?
그렇잖아요. 곡기를 끊는 게 정상인데,
저희 마중이는 진짜 잘 먹는다니까요?"
나도 울고, 선생님도 울고 진료실이 난장판이 됐다. 밥을 먹는다는 건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밥 잘 먹는 마중이를 엄마인 내가 포기할 순 없었다. [To be continued...]
2025년 현재, 국내 반려인 수는 약 1,546만 명에 이릅니다.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하고 있는 셈입니다. 미디어와 SNS는 젊고 건강한 반려동물의 모습으로 넘쳐납니다. 하지만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처럼, 이들 역시 언젠가는 병들고 나이 들어 이별을 맞게 됩니다.
그럼에도 ‘자연스러운 노화의 시간’을 함께 살아내는 이야기는 이상하리만치 드뭅니다. 특히 반려묘 문화가 이제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우리 사회에서, 늙고 아픈 고양이에 관한 기록은 찾아보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듣기 괴롭고 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외면된 현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이의 마지막 길을 함께 걷는 이들에게, 침묵은 때로 잔인한 고립처럼 느껴집니다. 참고할 기록이 없다는 것은, 같은 시간을 지나는 누군가가 오롯이 홀로 그 길을 감당하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지금의 제가 그러하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노령묘를 반려하는 우리가 겪는 두려움과 다짐, 그리고 그 속에서도 발견되는 아주 작은 희망의 순간들을 그대로 남기고자 합니다.
이 글이 언젠가, 저처럼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지는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N마리 집사,
성진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