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해를 살아낸, 나의 나이 든 고양이 이야기
2025년 10월 6일 오후
아프기 시작한 날부터, 나는 마중이와의 이별을 매일 수없이 시뮬레이션했다. 최대한 평화롭고 후회 없는 작별을 위해 온갖 경우의 수를 머릿속에서 돌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욱 갈피를 잡지 못하고, 수백, 수천 가지 결말의 파편들로 뒤섞일 뿐이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혹은 깊이 잠든 밤중에 아이가 홀로 떠나는 상황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내가 꿈꾼 최선의 이별은 차가운 병상이 아닌, 익숙한 집에서. 낯선 의료진의 손이 아닌, 내 품에서. 고통 없이 마치 잠에 빠져들 듯 마지막 숨을 고르는 것이었다.
마중이의 귓가에 "사랑한다" 속삭이며 입맞춤을 전하고, 아이가 '이 생에서 온전히 사랑받았구나' 느끼며 편안히 눈을 감는 것. 이별의 후회와 아픔은 오롯이 내 몫으로 남더라도, 아이만은 가볍게 안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완벽한 이별은 현실에 없었다. 막상 경련이 시작되고, 이별의 순간이 임박함을 느끼는 순간, 두려움은 너무도 빠르게 이성을 집어삼켰다. 숨이 가빠지는 아이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고 무력한 존재가 되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바랬다. 온몸이 뒤틀리는 아이가 더 아파할까 품에 안을 수조차 없었다. 손끝이 떨렸다. 입안이 말라 단내가 올라왔고, 누군가 내 배를 가르고 손을 집어넣어 휘젓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떨리는 몸을 부여잡고, 나는 일어났다. 본능보다 더 앞서는 무언가가 나를 이끌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어쩌면 그것은 모성이었을지 모른다. 내 속으로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가슴으로 낳아 열일곱 해를 살 비비며 키운 내 자식 아니던가. .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베란다 바닥의 냉기가 닿지 않도록 두터운 카펫을 깔고, 마중이가 쉴 수 있도록 집 안의 조도를 낮췄다. 호흡이 조금이라도 편해지길 바라며 산소 호스를 곁에 두었다. 몸을 적신 소변에 한기가 들까 봐 따뜻한 물수건으로 조심스레 몸을 닦아내고, 전기담요를 약하게 틀어주었다.
만지면 아파하니 접촉은 최소화했지만, 겨울 이불을 끌어와 베란다 문턱 바로 앞에 몸을 뉘었다. 아픈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만큼, 지척의 거리를 유지하되 내 목소리와 손이 닿는 곳에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마중아.
너무 힘들면 이제 그만 가도 돼.
"엄마가 곁에 있으니까 무섭지 않아. 엄마가 끝까지 지켜보고 있을게. 무서워하지 말고, 힘들면 이제 떠나도 괜찮아. 고생했어, 정말 고생했어. 엄마는 마중이랑 함께해서 너무 행복했어. 다음 생에도 꼭 엄마한테 와야 해. 그땐 더 잘해줄게."
그 말들은 어쩌면 마중이보다, 두려움에 떠는 내 마음을 붙잡기 위한 주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 아픔보다, 아이의 평안만이 간절했다.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응급 센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마중이의 상태를 설명하며,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다. "이 상태로 병원에 가면, 오히려 이동하는 길 위에서 떠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여기서 지켜보겠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수의사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요. 필요하다 생각되면 언제든 오셔도 돼요." 낯선 이의 그 한마디가 따뜻한 위로가 되어 가슴에 닿았다.
전화를 끊고 돌아보니, 마중이의 숨은 점점 더 얕아지고 있었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작고 차가운 발을 꼭 쥐고, 다시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가 있잖아." 마중이의 귀가 희미하게 움직였다. 아니, 움직인 것 같았다. 나는 그 작은 떨림에 모든 것을 걸었다. [To be continued]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노령묘를 반려하는 우리가 겪는 두려움과 다짐, 그리고 그 속에서도 발견되는 아주 작은 희망의 순간들을 그대로 남기고자 합니다.
이 글이 언젠가, 저처럼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지는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N마리 집사,
성진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