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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bet Apr 23. 2017

한양도성길 2코스, 낙산길

봄날처럼 가벼운 산책


한양 도성길의 두 번째 구간인 낙산길은 혜화문에서 시작되어 낙산공원을 지나 흥인지문으로 끝난다. 약 1시간 반 정도의 짧은 코스로 한양 도성길 4개의 구간 중 가장 평이하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 입구역에서 내려 약 5분 정도 걸으면, 낙산길의 기점인 혜화문을 대로변에서 만나게 된다. 


안타깝게도, 한양 도성의 사소문 중 하나인 혜화문은 대로를 사이에 두고, 성벽길과 단절된 채 건너편에 섬처럼 동떨어져 있다. 


사실, 한양 도성길은 각 구간 별로 단절되어 있다. 첫 번째 구간인 북악산길의 종점과 두 번째 구간인 낙산길의 기점 사이 역시 성벽길이 단절되어 있다.



[ 헤화문은 섬처럼 홀로 단절되어 있었다 ]



현존하는 전 세계 도성 중 가장 오래도록 성의 역할을 하고 있는 건축물인 한양도성이 이렇게 훼손되고, 단절된 근원은 일제 치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제의 농촌 수탈로 농촌의 인구가 경성부로 급속히 유입되었는데, 이에 조선 총독부는 경성부를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로 개발하고자 경성부의 개발 면적을 사대문 밖으로 대폭 확장하여 성벽 주변으로 택지와 도로를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경성부 확장에 장애가 되는 성벽을 일부 허물고, 성돌을 건축 재료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오랜 세월에 걸쳐 성벽이 허물어진 자리에 다른 건축물들이 자리 잡았고, 그 자리는 어느새 오랜 세월 축적된 우리 삶의 흔적들로 복잡하게 얽히게 되었다. 



[ 낙산길의 출발점, 혜화문 ]



서울시에서 몇 해 전부터 한양 도성길의 단절된 구간을 복원하기 위해 여러모로 애를 쓰고 있지만, 허물어진 성벽 자리에 이미 오랜 세월 자리 잡아 버린 삶의 흔적들을 제거하고, 다시 옛 성벽을 온전히 복원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혜화문의 건너편 대로변에서 시작되는 낙산길의 초반 코스는 계단을 한번 오르고 난 뒤, 대체로 평이하다. 성벽을 따라 약간 굴곡이 있는 평지를 산책하는 정도이다.  


오른편으로는 오래된 성벽을 두고, 왼편으로는 아직 개발이 더딘 북서울의 도심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 봄날처럼 가벼운 산책, 낙산길 ]




성벽의 바로 아래 편으로는 옹기종기 주택들이 모여 복잡한 골목을 이루고 있는 삼선동 장수마을이 있다. 


옛 기와지붕과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들이 뒤섞여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동네 풍경을 앞에 두고, 그 너머로 조금 떨어진 풍경에 상업지구와 아파트 단지가 눈에 띈다. 그리고, 그 뒤편으로 온화한 자태로 도심을 감싸고 있는 북한산이 있다. 


아, 이렇게 서울은 완벽했다. 자애로운 어머니처럼 큰 산줄기가 포근하게 도심을 감싸 안고, 그사이 사이 젖줄처럼 물이 흐르는 도시. 한양을 도성으로 조선을 개국한 정도전의 안목은 참으로 탁월했다.



[ 서울은 이렇게 완벽했다 ]




봄 향기가 가득한 성벽길을 따라 30여분 걸어가면, 이제 거의 최초이자 마지막 가파른 언덕길이 나타난다. 낙산길의 하이라이트. 이 언덕길을 오르면 북서울의 도심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낙산 공원이 있다. 


언덕길을 오르는 내내, 뒤편으로 펼쳐진 시야가 궁금하여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오르면 오를수록 더 멋지게 펼쳐지는 풍경들. 용의 몸통처럼 길게 늘어진 성벽을 너머로 북서울의 평화로운 정경과 저 멀리 인자한 자태로 북서울을 품에 안은 북한산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마침내 낙산 공원의 전망대에 이르러,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낸 이 멋진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게 된다. 



[ 낙산 공원에서 바라 본 북서울 ]


[ 인자한 자태로 도시를 감싸고 있는 북한산 ]



아,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 그 치열한 삶의 현장도 이렇게 한 걸음 떨어져 먼발치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처럼 평화롭게 보이는구나.


가끔은 우리 일상에서도 여행자의 시선이 필요할 때가 있다. 굳이 여행을 떠나지 않더라도 일상을 여행처럼 바라보는 것. 우리 삶을 좀 더 여유롭게 사는 지혜가 아닐까?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쨌든 우리가 노력해야 할 일이긴 하다. 


낙산 공원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이제 흥인지문까지 성벽을 따라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 성벽을 따라 내려가는 길 ]



왼편으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주택가들이 보이고, 저만치 동대문 상가 한가운데 우주선처럼 내려앉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가 보인다. 그리고, 성벽을 따라 오른편으로는 이화동 벽화마을이 있다. 


성벽을 따라 내려오는 길에 서울의 하늘 동네, 이화동에서 잠깐 차 한 잔 마시며, 봄날의 여유를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봄날처럼 가벼운 낙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흥인지문에 이르게 된다. 짧지만, 그래서 더욱 아기자기했던 낙산길은 가족과 함께 봄날에 걷기 좋은 산책 같은 하이킹 코스다. 


(글/사진) Trip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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