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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Nov 05. 2017

닭똥집은 아담호프

"뭐 먹을까?"

"닭똥집?"

"아, 닭똥집은 아담호픈데."

"그러게. 아담호프 닭똥집 먹고 싶다."

"닭똥집 시켜?"

"그냥 딴 거 먹자."


친구들과 호프집 메뉴판을 보던 끝에 아담호프 이야기가 나왔다. 십 년 전인가. 동네에 아담호프라는 술집이 있었다. 청양고추를 듬뿍 썰어 넣고 하얗게 볶아낸 닭똥집 맛이 어찌나 맛있던지. 친구가 하는 횟집에서 술을 마시다 생각나서, 노래방에서 노래를 하고 나오다 배고파서, 한밤중에 입이 심심해서, 집에 가기 아쉬워서 입가심하러 자주 가던 곳이었다. 


시골 동네에서 이렇다 할 호프집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 아담호프는 자매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내가 들어가면 주인이고 손님이고 모든 행동을 일순 멈추는 것이, 단순한 호프집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사실 엄청난 미인이라 등장하자 호프집의 시간이 일순간 멈추었다,라고 쓰고 싶지만.) 나의 등장에 처음에는 많이 어색해하더니, 눈치도 없이 계속 찾아오자 아예 포기하고 말을 트기 시작했다. 


"자주 오네요."

"네, 이 앞에 살아요."

"닭똥집 먹을 거죠?"

"원래는 닭똥집을 아예 안 먹는데, 이 집 닭똥집은 엄청 맛있어요." 


서로 술에 취한 날이면, 화장실에 다녀오다 스프링이 나간 채 가게 한가운데에 버려지듯 놓여 있는 빨간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랫지방이 고향이라던 그녀들은 젊어서부터 전국의 다방과 술집을 돌고 돌다 몸이 늙어 이 동네에 작은 호프집을 열게 되었다고 했다. 언니가 먼저 이 동네에 와 자리를 잡았고, 호프집을 열면서 동생을 불렀다고. 평생 떠돌아다니며 살 줄 알았는데 이런 날이 오긴 온다고. 언제 술 한잔 하자고. 


"오늘은 조용하네요."

"그러게. 고향에서 김치를 보내줬는데, 삼겹살에 먹으려던 참이에요."

"식사하시는데 왔나 봐요."

"그냥 이거 같이 먹지, 뭐. 앉아요."


손님이 없는 늦은 밤, 동생은 자기들만 먹기 미안하다며 구운 삼겹살에 고향에서 올라온 갓김치를 내주었다. 삼겹살에 먹는 갓김치가 왜 그렇게 맛있는지. 그렇게 같이 앉아 맥주 두어 잔을 함께했고 동생은 아기처럼 잘도 웃었다. 산책을 하다 어느 집 앞에서 실한 고추를 몇 개 땄는데 그게 너희 집 고추였냐며 진심으로 미안해하던 표정은 귀엽기까지 했다. 


동생은 여느 신파 속 이야기처럼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해 몇 년 후 자살했다. 실의에 빠져 있던 언니는 장사를 접고 어느 여인숙에 딸린 식당 주방으로 갔다던가.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은 우리 옆집 아저씨. 그날 이후로 옆집 아저씨 자동차 소리만 나면 동생이 생각 나 마음이 별로였다. 이제 좀 살 만해졌다더니 죽긴 왜 죽어. 


동생이 죽고 또 몇 년 후의 일이지만, 옆집 아저씨의 아내는 딴 남자가 생겨서 집을 나가 옆 동네에 살림을 차렸다고. 잘된 일도 아닌데 어쩐지 그렇게 될 일이었으니 그렇게 된 것만 같아 이제는 옆집 아저씨를 보아도 마음이 안 좋지 않다. 


"아담호프가 어딘디? 나도 닭똥집 엄청 좋아해. 다음엔 거기 가."

"지금은 없어."

"그렇게 맛있다면서 왜 없어졌댜?"

"그러게."


몇 년 전 서천에서 올라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친구가 아담호프의 행방을 묻는다. 우리는 또 괜히 조용해진다. 맨날 추억에 젖어 이야기하면서도 가지는 않으니 어지간히 궁금했는 모양이다. 


특별할 것도 없지만 흔할 것도 없던 동생의 맑은 웃음이 생각난다. 언니랑 같이 살게 되어 참 행복하다고 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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