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살게 된 지 이 년 육 개월이 됐다. 어제 꽉 찬 서른여섯이 되었지만, 오늘도 슬리퍼를 신고 동네를 뛰어다닌다. 돈은 적게 벌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하지만, 여자 친구들을 자주 만날 수 없지만, 큰 불만은 없는 생활이다.
"나 홍대 나왔는데, 사무실이야?"
"아니. 나 엄마 식당 개업해서 당진 내려왔어."
"그렇구나."
"바쁘게 오느라 연락도 못 했네."
"잘 지내지?"
"응."
작년 이맘때쯤인가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더랬다. 친구가 결혼한 후로 통 만나질 못했는데, 다시 일을 시작한 친구가 홍대에 왔다고, 그러니까 나의 회사 근처에 왔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 없었다.
"나는 그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 판단이 잘 안 서더라고."
"응?"
"내가 홍대 나왔다고 연락했는데, 너는 당진에 있다고 했을 때."
"아... 설명이 너무 없었지?"
"그보다 어떤 상황에서 내려갔는지 잘 모르니까. 뭔가 문제가 생겨 내려간 건 아닌지, 싶었달까."
"낙향 같은 느낌이었다는 건가?"
"편견이었지. 너는 너만의 방식으로 삶을 일구던 거였는데, 당진에 내려갔다는 말을 듣는 순간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며칠 전에 만난 친구와 해장으로 파스타를 먹다가 "낙향"이라는 말을 내뱉고는 생각했다. 귀향이 아닌 낙향이라... 낙향과 귀향의 차이가 뭐지? 난 귀향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남들은 낙향을 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낙향(落鄕): 시골로 거처를 옮기거나 이사함.
귀향(歸鄕):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낙향'의 '낙'은 '떨어질 낙'이었고, '귀향'의 '귀'는 '돌아갈 귀'였다. 그러니까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떤 이들은 내가 서울에서 떨어져 고향으로 왔다고 생각한 건가?
동네 사람들에게 뭔지 모를 소외감을 느끼던 이유를 알게 된 것 같다. 부은 얼굴로 슬리퍼를 신고 장바구니를 휘두르며 동네를 뛰어다닐 때,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왜 시집도 안 가고 엄마 집에 그러고 있냐고 물어올 때, 대낮에 마트에서 맥주와 과자를 잔뜩 사들고 나올 때, 어떤 이들이 나를 보는 시선은 '귀향'이 아닌 '낙향'이었다. 커리어우먼을 바라보는 부러움이나, 엄마를 돕는 딸을 보는 대견함이 아닌, 안쓰럽고 걱정스러운 마음.
식당에서 엄마 일을 돕고, 서울로 출장을 다니고, 오후에는 집에서 책 편집을 해도, 그건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다. 동창 중 누군가 잘 모르는 사연으로 당진으로 내려오게 됐다고 한다면, 게다가 부모님 집으로 다시 들어가게 됐다고 한다면, 나는 어떻게 생각할까? 집에서 무슨 일을 해, 서울에서 직장 잘 다니다가 그만두고 내려온 거면 뭔가 문제가 있었겠지, 결혼할 사람이 여기 있나.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서울에서 떨어져 시골로 와, 부모님 집으로 다시 들어간 삼십 대 중반 여성에게서 상상해낼 수 있는 사연이란 그리 복잡한 게 아닐 것이다. 그리 긍정적이지도, 건설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 여성이 신상에 별다른 변화 없이 이 년 육 개월을 지내고 있다면 더더욱.
동네 사람들이 내가 하는 일에 관심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들의 눈으로 보는 내가 나의 모습에 전부이니까. 그렇다고 제가 하는 일이 이러이러한 것인데, 엄마 식당 일을 돕게 된 이유는 이러이러한 것인데, 서울에서 망해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아직도 계속 이러이러한 연락을 받고 있는데,라고 묻지도 않는 말에 답할 수도 없다. 그저, '낙향'의 이미지가 짙게 밴 시선을 감내하는 수밖에.
그래서 나는 지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낙향을 한 것이냐, 귀향을 한 것이냐?'
나 역시도 쉽게 답할 수 없다. 좀 더 살아보면 알게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