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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Feb 24. 2018

프로는 새벽 세 시에 출근한다

"어디 가?"

"가게."

"에? 핸드폰 두고 왔어?"

"아니. 반찬 하러."


자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거실에 나왔는데 어둠 속에서 엄마가 옷을 입고 있다. 아침인가 싶어 시계를 보니 새벽 세 시다. 이 시간에 가게를 간다고? 물을 마시고 방에 들어와 누웠다. 내 눈을 의심하며 핸드폰 시계를 다시 봤다. 이 시간에 가게를 가?


엄마가 새벽 세 시에 출근하는 게 처음은 아니다. 김밥을 팔 때는 단체 예약 때문에 나도 몇 번 새벽에 나가 김밥을 말았다. 아침 예약이 있을 때도 엄마는 종종 새벽에 나가 음식을 했다. 이런 날은 저녁 장사를 안 하고 쉬면 좋으련만 바쁘면 저녁까지 음식을 해야 한다. 18시간 동안 일을 하는 셈이다. 육십 넘은 할머니가.


"어제 반찬 하면서 고생하셨겠어요."

"오늘 아침에 만든 거예요."

"이걸 아침에 다 만들어요?"

"네. 새벽 세 시에 나와서 만드셨어요."

"아이고. 괜한 부탁을 드렸나 봐요."

"며칠 동안 두고 먹을 건데 전날 만드는 건 좀 그렇다시네요."


내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된다.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휴가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열찬 가사노동에 시달리며 가족들을 위해 밥 세 끼를 만들어야 하는 기간이다. 맞벌이로 음식 솜씨를 가다듬을 시간도 없이 연휴를 맞은 단골 언니들이 연휴에 먹을 반찬을 예약했다. 코다리 조림, 고사리 무침, 동그랑땡, 장조림, 봄동 무침 등. 


말린 코다리를 사다 조림을 해도 될 텐데, 엄마는 말린 코다리를 그냥 쓰면 살이 부스러진다며 며칠 동안 빨랫줄에 코다리를 널어 말렸다. 연휴 내 먹을 음식인데 전날 해서 신선도가 유지되겠느냐며 반찬 준비도 굳이 예약 당일 새벽에 나가 했다. 점심 장사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벌써 눈밑이 꺼멓다.


"엄마도 극성이네."

"음식은 정성이야. 정성껏 만든 음식을 먹어야 기분도 좋고 살도 붙지."

"손님 음식을 무슨 내 식구 음식 하듯 해? 누구 사위라도 오는 줄 알겠어."


엄마의 정성(이라고 쓰고 극성이라 읽는다) 덕에 예약을 안 한 손님들까지 반찬을 포장해갔다. 반찬을 포장하고 또 포장하며 여기가 반찬가게인 줄 알았다. 식구들 먹을 걸 따로 챙겨놓길 잘했다. 다 털릴 뻔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자. 사람들도 다 고향 갔는데."

"그러게. 피곤하네. 밥 먹고 들어가자."


어지간하면 점심 장사만 하고 집에 간단 소리를 안 할 텐데 새해가 되니 엄마도 조금 더 늙은 모양이다. 기왕 고생하는 거 올해도  손님들이 엄마의 정성 가득한 음식을 먹고 기분 좋게 살이 붙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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