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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나 Feb 19. 2018

고기는 뜯어야 맛이지

"짤랑, 짤랑."


한가한 토요일 점심시간. 구부정한 할머니 한 분이 식당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오셨다. 평소에 할아버지나 할머니 손님이 오시면 엄마는 몇 배나 더 친절하게 응대한다. 혼자 온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노여움을 더 잘 타신다고, 나이 드신 분들께 식사 대접했는데 서운해하시면 엄청 속상하다면서 말이다. 일관성 있게도 고무장갑 벗기 귀찮아서 설거지 할 땐 전화도 잘 안 받는 양반이 설거지 하다 말고 어느샌가 할머니 앞에 섰다.


"할머니, 뭐 필요하세요?"

"밥 먹으러 왔지."

"뭐 드시게요?"

"글쎄. 뭘 잘혀?"

"음. 된장찌개 드시겠어요?"

"아이고, 기운이 없어서 고기 좀 먹을까 허는디."


며칠 감기를 앓아 기운이 없어 고기를 먹으러 나오셨다는 할머니에게 엄마는 갈비찜을 권했다. 단체 예약이 있을 경우 여분으로 미리 조리를 더 해두지 않는 이상 1인분만 판매하는 경우는 없지만, 엄마는 기운이 없다는 할머니를 외면하지 못했다.


"조금 앉아 계세요. 고기 익히려면 시간이 걸려요."

"그려. 찬찬히 혀. 버스 시간 될라믄 아적 멀었어."


불금을 보낸 탓에 홀에 반쯤 누워 있던 나는 어적어적 일어나 할머니에게 보리차를 한 잔 따라드렸다. 그러곤 주섬주섬 반찬을 담아다 상을 차리고 TV를 켰다. 할머니들은 뭘 잘 보시더라. 모르겠다. 말이라도 좀 걸어볼까.


"버스 타고 나오셨어요?"

"이. 초락도서 왔어."

"어? 거기 제 친구 사는데. 박은미라고 아세요?"

"박은미? 내가 걔 작은 할미여. 어이구. 시집은 갔어?"

"아니요. 은미는 간대요?"

"물러. 시집들은 안 가고 뭣들 허는지."


할머니는 많이 시장하셨는지 밥도 없이 반찬을 드시며 나의 말에 대꾸하셨다. 반찬이 맛나다며. 그렇게 괜히 말을 걸었다 싶게 어색한 대화를 주고받은 지 이십여 분. 갈비찜이 드디어 나왔다.


"뜨겁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갈비찜을 가져다 드리며 상을 스캔했다. 의외로 햄과 샐러드를 잘 드시는 할머니다. 부족한 반찬은 더 채워드리고, 밥은 조금 많다 싶게 떠다 드렸다.


"할머니, 천천히 드세요. 남은 건 싸드릴게요. 무리하지 마시고요."

"그려. 고마워."


엄마의 친절함에 할머니의 허기가 약간은 가셨는지 반갑게 답하신다. 할머니들은 이도 안 좋다던데 갈비 뜯다가 이라도 빠지진 않을지 슬쩍 걱정이 됐다. 그렇다고 밥 먹는 사람을 대놓고 볼 수는 없으니 텔레비전을 보는 척하면서 슬쩍슬쩍 할머니를 살폈다. 오물오물 뭔가 열심히 드신다. 압력밥솥에 갈비찜 1인분만 넣고 조리하면 맛이 안 나 여유 있게 넣고 조리했다는 엄마의 말을 듣고 포장용기를 준비했다. 아마도 기운 없는 할머니가 집에 가 혼자 밥 해드시는 게 안타까워 갈비찜을 더 한 거겠지.


할머니는 열심히 식사를 하시고 엄마와 나는 열심히 할머니를 살폈다. 제법 전투적으로 식사를 마친 할머니가 일어나셨다. 엄마가 또 할머니 곁으로 달려 나간다.


"맛있네, 맛있어."

"버스는 금방 와요?"

"물러. 장이나 보러 가게."


포장용기를 들고 홀로 나오는 나에게 엄마가 눈짓을 한다. 아마도 포장용기를 가져오지 말라는 의미인 듯하다. 어색하게 돌아서 주방으로 들어가 식혜를 들고 나왔다.


"식혜 드시고 가세요."

"그려."


시원하게 식혜를 들이켠 할머니가 씩씩하게 식당을 나서셨다. 들어오실 때보다 허리가 좀 펴진 것도 같다.


"갈비찜 안 남았어?"

"어. 다 드셨어."

"뭐? 그 정도면 내 친구 둘도 다 못 먹는데?"

"많이 시장하셨나 봐."

"와우! 할머니 푸드 파이터 준비하시나."

"맛있게 드셨으면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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