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 이상 모이면 이유 없이 까르륵거리고,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치며 복도를 똑바로 걸어 다닌 적이 별로 없던. 매일 아침, 풀 충전된 명랑함이 힘겨울 정도로 꽉 차오르던. 그 해 봄. 17년 인생에서 처음 '모욕감'이라는 것을 느껴보게 되었다.
모의고사 성적 때문이었다.
동문 출신 국어 선생이던 담임은 성적표 위에 자를 톡톡 두들기더니.... 가만히 우리들을 응시했다. 한 명 한 명. 사실... 처음 본시험치 곤 나름 선방했네,라고 여기던 터라, 이처럼 무겁게 노려보는 담임의 태도가 의아했는데. 뒤이어진 말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 이래 가지고, 대학 가겠니? 어디 갈래? 그래... 너네 같은 얘들이. 무슨 꿈이 있겠냐. 이런 수준 동네에서... 쯧... 가봐."
...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학년에 이르기까지 그 동네에서 쭉 살며, '이런 수준'의 동네 친구와 추억이 전부였던 나는. '이런 수준'이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지만... 뒤이어진 한숨과 긴 침묵 때문에. 보잘것없고 초라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의 내가, 선생님의 '수준'에는 맞지 못했다고 해도... 그렇게 깊게 한숨 쉴 정도로 한심했는지는 그 후로 지금까지 동의하지 못했는데.
... 카푸치노를 마시다가 문득, 알게 되었다.
" 이 동네. 이런 수준... " 모두... 그 시절 담임선생. 자신에 대한 못마땅함일 뿐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