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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알로하링 Jul 17. 2019

9. 임신을 기다리며 피식 웃었던 날[난임 일기]

발을 동동 굴렀을 김남 편과 그 마음이 고마웠던 나

임신을 기다리며 피식 웃었던 두 개의 에피소드

우리는 여전히 똑같다. 바쁜 일상도 똑같고 여전히 '결혼해서 너무 행복해'라는 말을 하루에 열 번은

말하고서야 잠이 든다. 처음엔 진짜 우리가 행복한 건가?라고 의심이 들 정도로 자주 내뱉어지는 말 때문에

너무 가볍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행복함>은 갈수록 진해졌고 매일 말해도 질리지 않는 말이 되었다.


가장 최근에는 제법 진한 두 줄을 봤다. 하지만 이내 매월 같은 증상이 반복되었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아직이다!

야속한 단호박 임신테스트기에도 아주 조금은 속상했지만 숨을 한번 크게 쉬고 마음을 꾹 누른 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번 달도 아닌가 봐!!!' 라며 의연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여전히 주변 지인들로부터 '왜 애 안 가져?'라는 불편한 질문을 받지만 그때마다 '준비 중인데 안 생겨 - '라고 무심하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잠깐의 침묵이 아직도 불편하지만 금세 괜찮아지고 있다.


즐거운 일, 슬픈 일, 속상한 일, 답답한 일들 속에서 임신을 기다리며 우리에게 있었던 아주 소소하고 작은 에피소드 두 가지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우리 부부가 평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인 '소소하지만 특별하게' 정말 소소한 에피소드이지만 훗날 기억해 보면 귀여운 상황이었네 라고 곱씹어 보고 싶은 일이다.

episode. 1

"너무 깜짝 놀랐잖아, 혼자 슬퍼하는 줄 알고"

우리는 저녁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경우도 많지만 같은 공간에만 있으면 되기에 각자 하고 싶은걸 하면서

저녁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다. 따로 TV를 보거나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끝내지 못한 회사일을 마무리하거나

그냥 멍하니 누워있거나 어떠한 자세로 있어도 모든 게 오케이 되는 저녁시간이다.

어느 날 '나 회사 사람들이 게임하자고 하는 게 해도 돼?'라고 물어왔다. '그럼 당연히 해도 되지! 얼른 해, 오늘 게임 멤버는 누구야?'라고 물어볼 정도로 나는 김남 편이 좋아하는 게임하는 시간을 열렬히 지지하고 있다.

그래야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영상을 실컷 보거나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이기도 하다.



남편은 게임을 시작했고, 나는 화장실에 갔다.

아주 잠깐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문득 화장실을 청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이 저녁 11시쯤이었다. 오랜만에 꽂힌 화장실 청소를 하다 보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몰랐다.

내 생각엔 족히 30분~40분 정도는 훌쩍 지난 시간이었던 것 같다. 평소 마음먹어야 하는 청소이기에 깨끗해지는 화장실을 보며 욕심내서 구석구석 열심히 청소를 했다.


그리고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언제부터 여기 서 있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경직되어 있는 남편이 서 있었다.

금방 툭 건드리기만 해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고, 얼굴을 빨개져 있었다.


"왜 여기 서 있어? , 여기서 뭐해?"

"너무 깜짝 놀랐잖아, 혼자 슬퍼하는 줄 알고"

그냥 화장실을 간 아내가 10분, 20분 아니 30분이 넘어도 나오지 않는 것에 게임을 하다 말고 걱정이 돼서

서 있었다고 한다. 혹시라도 오늘은 그날이고 실망스러운 마음에 속상한 마음에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고 혼자 슬퍼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난임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나의 작은 행동과 말에 남편은 온전히 집중해 있었다. 작은 움직임에도 변화에도 귀 기울이고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아 뭐야 , 나 저번에 끝났잖아"라고 말했음에도 놀란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는 남편과 이 상황이 어리둥절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미안한 마음이 너무 컸다. 행복해도 모자를 시간에 사소한 모든 것에 신경이 쓰인 다는 것이. 정말 고마워 , 그리고 미안해



episode. 2

"괜찮아? 괜찮아?"를 스무 번 넘게 외쳤던 날

이번 일도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 이후로 화장실에 오래 있어도 더 이상 문 앞에 서 있지 않는 남편이 되었지만 어느 날 출근 준비를 하는 아침 , 나는 이를 닦고 있었다. 원래도 신경 쓰고 있었지만 최근에 더욱더 혀클리너에 꽂혔다. 종류별로 혀클리너를 사용해 보기도 하고 이를 닦을 때 최대한 혓바닥도 닦아보며 이를 닦을 때 항상 신경 쓰고 있는 것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나에게 치명적인 약점은 칫솔을 조금만 넣어도 참지 못하고 '우엑'하고 불편함이 바로 느껴진다. 아직도 그래서 나에게 맞는 그리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혀클리너를 찾지 못했다.


'우엑, 우엑'

괜찮아? 괜찮아? 무슨 일이야?라고 화장실 문 밖에서 다급하게 남편의 외침이 들렸다.

'나 지금 이 닦는 중이야!'라고 전한 후에야 남편의 약 스무 번의 괜찮아 외침은 끝났다.

남편은 내가 그런 증상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니 애초에 임신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우익' 거릴 일이 뭐가 있겠어 라고 말했고 아 그런가? 하고 피식 웃으며 지나갔다. 아니 남자들이란 이렇게 모르나 라고 생각하며 웃었다. 남편에게 요즘의 나는 '마치 온 신경은 너에게 있어'라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하니 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이 처럼 아주 소소한 에피소드와 함께 여름을 맞이했다. 사계절 중 제일 좋아하는 가장 좋아하는 여름.

임신을 기다리며 사계절을 두 번이나 보냈다. 또다시 찾아온 여름 역시 힘껏 즐기고, 힘껏 놀자고 했다.


그래, 우리 올여름도 신나게 놀자! 좋아하는 여름이 왔으니까  


7년 연애 후 결혼 3년 차, 신혼의 기준이 아이가 있고 없고 라면 우리는 아직 신혼부부. 원인 모를 난임으로 스트레스도 받지만 뭐든 써내려 가다 보면 조금 위안이 됩니다. 내려놓기가 어려워 우리만의 방식으로 감당해보는 시간. ㅣ 일복 wait for you <난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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