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MA Vo.12_2019년 7월호_주제 "뉴트로"
'익숙한 새로움'. 뉴트로(Newtro)는 복고를 뜻하는 레트로(Retro)에 새로운(New) 감성을 불어넣는 것으로, 지난 해부터 강력한 마케팅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베이비부머 세대 때 유행했던 나팔바지, 밀레니얼 세대가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 놓은 카페, 예전 가게들의 간판에 사용되었던 폰트 등이 다시 유행하면서 뉴트로는 다양한 영역에서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뉴트로 열풍 덕분에 재미를 보고 있는 브랜드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휠라는 20년 전에 출시했던 모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스럽터2'를 선보였고, 이 제품은 2018년에만 전 세계적으로 1,000만 족 가까이 팔리며 휠라의 부활에 날개를 달아 주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소주의 원조인 진로도 과거의 투명한 유리병 디자인을 부활시키고 요즘 트렌드에 맞게 도수를 16.8도로 낮춘 '진로'를 출시했습니다. '진로 이즈 백'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통해 브랜드의 역사성(Heritage)를 강조하는 동시에 고객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는 데에도 성공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뉴트로 = 힙한 것'이라는 공식이 성립될 만큼 뉴트로가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이러한 트렌드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합니다. 과거의 향수(Nostalgia)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내려면 그에 상응하는 고민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깊은 고민 없이 다소 무분별하게 소비되고 있는 뉴트로 콘텐츠가 많다는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야 할 젊은 세대들이 과거의 문화를 답습하며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이 하나의 강력한 트렌드가 새로운 문화 카테고리로 자리잡을 때 으레 생기기 마련인 마찰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같은 과도기를 거쳐 좀 더 성숙해지고 나면 뉴트로가 한때의 유행이 아닌 하나 확고부동한 문화 콘텐츠이자 마케팅 기법으로서 당당히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뉴트로가 가진 보존, 부활, 다양성이라는 순기능 때문인데요. 오늘은 뉴트로의 순기능을 제품과 서비스에 잘 녹인 사례들을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리며 뉴트로의 잠재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DSLR, 미러리스 카메라 등 디지털 카메라의 기술이 점점 더 발전하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들고 다니는 핸드폰 카메라의 기능도 끊임없이 개선되면서 필름 카메라는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장을 찍어도 세심한 조작이 필요하고, 필름을 현상해야만 비로소 한 장의 사진을 건질 수 있으며, 살짝 빛바랜 듯한 필름 카메라 특유의 감성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데요.
필름 카메라의 감성을 사랑하고, 그래서 그것이 오래오래 보존되길 바랐던 필름로그는 '필름 문화 확산자'를 자처하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전국 필름 자판기 설치 프로젝트가 가장 눈에 띄는데요. 과거 일회용 필름 카메라가 가지고 있던 환경적 리스크를 개선해 여러 번 업사이클해서 쓸 수 있도록 개조하고, 그러한 필름 카메라를 오프라인에서 쉽게 만날 수 있도록 자판기의 형태로 보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자판기'라는 이름 답게 필름들은 전용 용기에 담겨 적절한 냉장상태로 유지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옛 것'을 지키려는 '새로운 시도'는 뉴트로 열풍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었고, 그 결과 텀블벅 펀딩에서 2,000만 원이 넘는 후원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펀딩 목표액을 400% 넘게 달성한 필름로그는 서울, 제주, 경주, 순천 등 4곳에다 필름 자판기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인구가 많은 지역보다는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각광받는 여행지에 자판기를 배치함으로써 필름 카메라의 감성을 원하는 여행자들이 그것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약 1년 전, 후지필름이 '찾는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85년의 전통을 지닌 흑백 필름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이슈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모두가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디지털 카메라만 사용한다면, 머지 않은 미래에 컬러 필름을 생산하지 않겠다는 발표가 들려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뉴트로 트렌드는 필름로그처럼 젊은 감각으로 필름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을 지켜나가고, 그로 인해 문화를 더 다양하게 만드는 힘. 뉴트로에는 그러한 힘이 있습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태어나기 전, 그러니까 밀레니얼 세대의 부모님이 학생이던 시절에는 외국인과의 교류가 지금보다 훨씬 특별한 경험으로 여겨졌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외국인에게 어설픈 외국어 실력을 발휘하여 쓴 손편지를 보낼 때에는 뿌듯함을 느꼈고, 보내고 나서는 이번에는 답장이 올까, 온다면 어떤 내용이 적혀 있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설렘을 느끼곤 했죠. 편지를 주고받는 데에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의 시간이 걸렸지만 그러한 기다림이 편지의 감성과 펜팔에 대한 애정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곤 했습니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인터넷과 해외여행이 훨씬 보편화되었고, 외국인과의 소통 창구는 더욱 넓어졌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내가 원하는 조건에 가까운 외국인과 실시간으로 채팅을 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더 편리하고 더 빨라졌지만, 느려서 더 설렜던 옛날 펜팔의 감성은 사라져버렸는데요. 이러한 감성을 오늘날에 맞게 부활시킨 서비스가 바로 글로벌 펜팔 앱 SLOWLY입니다.
SLOWLY의 이용자들은 프로필 사진 대신에 단순한 이모티콘만 등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 국적, 관심사 등 대화에 필요한 요소들을 프로필에 적어 두면 거기에 맞춰 대화 상대가 매칭이 됩니다. SLOWLY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답장을 주고받는 데 걸리는 '시간'에 있습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편지가 도착하는 시간이 결정되는데, 가령 한국인 유저가 홍콩인 유저에게 편지를 보내면 6시간 후에 편지가 도착합니다. 한국에서 홍콩까지의 실제 비행 시간이 약 3시간이기에 거기에 2배 정도 되는 시간이 더 걸리는 것입니다.
SLOWLY는 스마트폰 어플이라는 현대적인 플랫폼을 활용하며, 관심사에 따라 상대방을 자동으로 매칭시켜주는 편의성을 제공합니다. 그러면서도 얼굴도 모르는 외국인과 기다림을 즐기며 편지를 주고받았던 펜팔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최대한 살리고 있습니다. 그때 그 시절, 펜팔을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은 이렇게 SLOWLY가 부활시킨 감성을 즐기고 있습니다. SLOWLY가 전 세계적으로 100만 다운로드를 달성한 저력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흔히 타자기를 떠올리면 과거 소설가나 기자들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이핑을 하다가 레버를 당기며 줄바꿈을 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요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듣기 좋은 타이핑 소리,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레버를 당길 때 전문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매력적이었던 타자기. 하지만 컴퓨터와 인쇄술의 발달로 타자기는 모습을 거의 감추었고, 이제는 키보드를 통해 활자를 입력하는 것이 너무도 익숙해졌습니다.
무선 디바이스가 더욱 많아지면서 거기에 연결하여 사용할 수 있는 블루투스 키보드도 계속 출시되었는데요. 기능과 편의성, 그리고 심플한 디자인에만 초점을 맞춘 결과, 시장에서는 얄상하고 매끈한 형태의 다소 획일적인 제품만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국내 소재의 글로벌 가전 전문 기업 엘레트론은 '좀 더 멋지고 아름다운 키보드를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의문을 가졌고, 그 결과 타자기를 닮은 블루투스 키보드 페나(PENNA)를 세상에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페나 키보드는 타자기의 레트로한 감성을 키보드의 디자인에 고스란히 옮겨 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와 함께 독일 회사의 정품 스위치를 사용하여 품질을 높이고 5개 기기에 동시에 페어링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저전력 블루투스 기능을 활용하여 배터리를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기능적인 측면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20만원 내외의 높은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소비자들은 레트로한 감성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페나 키보드에 열광했습니다. 그 결과 해외 크라우드 펀딩에서 16억 원이 넘는 펀딩을 유치했고, 국내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와디즈에서도 앵콜에 앵콜을 거쳐 총 4억 원이 넘는 펀딩액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페나 키보드는 획일적인 키보드 디자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거로 눈을 돌렸고, 그 덕분에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은 더욱 넓어질 수 있었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만남의 장을 열어주는 뉴트로라는 트렌드가 시장을 더욱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지금'은 과거가 됩니다. 지금 유행하는 제품과 서비스, 그리고 이 시대의 면면을 보여주는 다양한 감성들도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유물이 되어 그것을 추억하는 날이 오겠죠. 하지만 뉴트로라는 단어는 늘 '현재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과거를 현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이 뉴트로이기 때문입니다. 뉴트로는 보존, 부활 다양성이라는 힘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저는 뉴트로라는 트렌드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처럼 메인 스트림의 위치를 계속 유지하지는 못할 지라도, 하나의 변치 않는 트렌드로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 말이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라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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