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MA Vo.13_2019년 8월호_주제 "등 돌린 소비자"
요즘 '불매'라는 말이 뜨겁습니다. SNS에서는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든 유니클로 매장의 사진이 앞다투어 올라오고 있고, 수입맥주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사히 또한 맥주의 계절인 여름임에도 저조한 판매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먹여살리다시피 했던 일본의 중소도시에도 눈에 띄는 경제적 타격이 나타나고 있다는 보도가 들려오는 가운데, 등을 돌린 한국 소비자들의 강력한 행동력과 단결력에 일본 정부도 다소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입니다.
'등을 돌린 소비자'. 고객들이 자신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매일같이 고민하는 마케터에게 재앙과도 같은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등을 돌린 소비자들이 연대해서 불매 운동으로까지 확산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명이 단축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요. 오늘은 우리가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기업이나 브랜드들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짜게 식도록 만들었던 사례들을 살펴보며, 혹시라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예방주사를 맞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지난 6월, 마케팅 잘 하기로 소문난 배달의 민족(이하 배민)은 사과문을 올려야만 했습니다. 바로 '쏜다 쿠폰' 때문인데요. 평소 배민의 고객들은 다소 낮은 적립금 제도에 불만을 제기해 왔습니다. 배민의 적립금 제도에 따르면, 가장 낮은 등급인 화이트 등급은 결제 금액의 0.1%, 가장 높은 등급인 블랙 등급은 0.3%가 적립되는데요. 블랙 등급의 회원이 한 달 동안 30만 원을 사용해야 겨우 900원의 포인트가 쌓이는데, 1,000원 이상의 포인트가 쌓여야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객의 등급 또한 한 달마다 바뀌어 실제로는 포인트 혜택을 온전하게 누리기가 굉장히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배민이 쏜다 쿠폰을 통해 유명 연예인이나 유튜버, 블로거 등 인플루언서들에게 무려 만 원짜리 쿠폰을, 그것도 대량으로 뿌려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거센 역풍을 맞았습니다. 배민은 쏜다 쿠폰이 나눔의 즐거움을 퍼뜨리고자 진행한 캠페인이라고 설명했지만, 백 장은 족히 되어보이는 쿠폰을 받은 한 래퍼가 SNS에 '이거 다 내가 쓸거야'라는 글을 올리면서 고객들의 불만이 터져나왔습니다. 배민을 아무리 열심히 사용해도 포인트 천 원을 모으는 것이 어려웠던 다수의 고객들은 "충성고객들에게 돌아가야 했을 혜택이 일반 대중들보다 훨씬 많은 수입을 올리는 유명인들에게 돌아갔다"라고 입을 모았는데요.
결국 배민은 해당 내용에 대해 사과문을 게재했고, 쏜다 쿠폰을 폐지하고 적립금 제도를 개편하겠다는 발표를 내놓았습니다. 배민의 경쟁사인 요기요는 이러한 상황을 놓치지 않고 '모두에게'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배민에게 실망한 고객들을 품고자 했는데요.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할 때 고객들 사이의 '형평성'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어떤 희생을 치뤄야 하는지 잘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 6월, 저는 패션 커머스의 왕좌에 오른 무신사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무시무시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무신사의 저력이 무엇인지를 소개했는데요. 그 저력 중 하나로 넘쳐나는 '양질의 콘텐츠'를 꼽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글을 쓴 지 한 달 뒤, 저는 다소 머쓱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바로 무신사가 제작한 콘텐츠가 구설수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된 콘텐츠는 건조가 빨리 되는 양말을 소개하는 카드뉴스였습니다. 제품의 특징을 강조하기 위해 "책상을 탁 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문구를 사용했는데요. 이는 1987년,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고문 치사한 박종철 의사의 사망 원인에 대해 공안 경찰이 밝혔던 "책상을 탁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라는 표현에서 따온 것입니다. 한 청년이 독재 정권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실을 적나라게 보여주는 표현을 그저 양말을 홍보하는 콘텐츠에 활용했다는 데에서 많은 고객들은 충격을 받았는데요.
이에 많은 고객들은 거세게 항의하며 불매 운동을 선언했고,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무신사는 바로 다음날 2차례에 걸쳐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이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들이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를 찾아가 직접 사죄했고, EBS의 최태성 강사를 초대해 전직원을 대상으로 역사 교육을 진행하는 한편 해당 콘텐츠를 작성한 직원에게 징계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이 모두 담긴 사과문을 다시 한 번 홈페이지에 게재하여 고객들의 마음을 달래고자 했는데요.
기업이 고객과 소통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이 '콘텐츠'인 만큼,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의 생각과 콘텐츠가 담고 있는 내용은 곧 기업의 생각이자 가치관이 됩니다. 잘못 제작된 콘텐츠 하나를 수습하는 데 들어가는 노력과 비용이 이렇게나 거대하다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콘텐츠 마케터들은 콘텐츠의 제작과 검수 과정에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할 것 같습니다.
'수지 폰케이스'로 이름을 알린 패션 브랜드 마리몬드는 제품 판매 금액의 일정 부분을 위안부 할머니들과 학대 아동들을 위해 기부해 온 소셜벤처입니다. 진정성 있는 캠페인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많은 고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꾸준히 성장해왔고, 그 결과 22억이 넘는 금액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2018년 초, 마리몬드는 한차례 위기를 겪었습니다. 마리몬드 대표의 아버지가 미투 운동으로 논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대표는 진정성 있는 사과문을 올렸고, 상황은 어느 정도 진정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마리몬드가 내부에서 작성한 '미투 대응 전략'이라는 문건이 공개되면서 다시 한 번 고객의 마음을 싸늘하게 식게 만들었는데요.
해당 문건에서는 미투 이슈로 마리몬드를 떠난 고객들을 두고 '마리몬드의 가치에 공감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보여주기식 소비를 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고객'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표방한 '존엄성'이라는 가치에 스스로 금을 내놓고, 여기에 실망한 고객들을 '줏대 없는 소비자'로 단정해버린 것입니다.
마리몬드의 고객들은 소비에 있어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그렇기에 마리몬드가 떠나간 고객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자 더 큰 실망감을 내비치고 있는 것인데요. 현재 마리몬드의 대표는 모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겠다는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한 상태입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한 기업이나 브랜드가 고객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소비자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브랜드들은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라는 소리를 들어 왔고, 5년 이상 꾸준하게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으며, 마케팅을 잘 하는 것으로 많은 이들에게 칭찬을 받아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고객과 긴밀하게 신뢰를 쌓아온 브랜드도 실수를 하기 마련이며, 그 실수의 정도에 따라 공들여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가 한 순간에 무너져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마케터분들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마케팅 캠페인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보고, 미래의 우환을 미리 제거하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칩니다. ⓒ라꾸
* 본 콘텐츠는 요즘 마케터들의 매거진, <YOMA>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저와 함께하는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를 <YOMA> 매거진에서 확인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