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 거대한 문화를 품고 산다는 것
오랜만에 남편과 평일 점심 외식을 했다.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직접 가 본 적은 없었던 일식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흡족한 식사를 하여 기분이 무척 들떠 있던 찰나였다.
좋아하는 고흐 그림이나 보러 갈래?
갑작스런 남편의 제안.
생각보다 식사를 일찍 마친 덕분이기도 하고, 남편 역시 몹시도 만족스러운 식사에 기분이 좋았던지 일터로 돌아가는 시간을 조금 더 늦추기로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몇 년 전, 뉴헤이븐에 살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밤. 집에서 남편과 스테이크에 와인 한잔을 하며 달큰하게 취해서는 내가 좋아했던 고흐의 그림이 어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을까? 갑작스레 궁금해져 찾아보았는데 놀랍게도 소장처가 내가 앉아있던 그 집에서 두 블록만 걸어가면 있는 예일 아트 갤러리 Yale University Art Gallery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 말 그대로 몸에 전율이라도 흐른 듯, 입에서는 절로 탄성이 튀어나왔었지. 순식간에 술기운이 확 사라지면서, 정말이지 한 걸음이면 닿을 수 있을 곳에 놓여 깊은숨을 내쉬고 있을 그 그림의 숨결이 어디선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달까.
바로 다음 날 우리는 서둘러 예일 아트 갤러리를 찾았고, 그 그림을 보았다. 당연히 한 번으론 모자라니까, 이후에도 우리는 수시로 주말 오후 한가한 시간에 예일 아트 갤러리를 찾곤 하였던 것이다.
그런 예일 아트 갤러리가 아무리 가깝다고는 해도, 그리고 누구에게나 무료로 입장을 허용하고 있기는 해도, 항상 주말에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가던 곳이었는데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점심을 먹은 후에 식후 디저트처럼 가게 될 줄은 몰랐다. 그렇지만 뭐, 안될 것 없지! 괜히 일상에서 벗어난 것 같은 묘한 흥분을 안고 우리는 예일 아트 갤러리로 향했다.
예일대 Yale University 올드 캠퍼스 Old Campus 주변에 위치한 예일 아트 갤러리는 1832년 존 트럼벌 John Trumbull이라는 예술가가 100점이 넘는 예술 작품을 기부하면서 설립되었는데, 서양에서 대학 미술관으로서는 역사가 가장 깊은 곳이라고 한다. 이 미술관은 여러 개의 건물이 이어진 형태로 되어 있는데 그중 가장 최근 (1953년)에 지어진 메인 건물은 유명한 건축가인 루이스 칸 Louis Kahn의 작품으로 건축학적으로도 아주 의미가 있는 곳이라고.
고대에서부터 현대 예술까지 시대적으로도 아주 다양한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을 넘어 아시아, 아프리카의 예술품까지 지역적으로도 아우르는 폭이 매우 넓다. 이 미술관에는 현재 20만 점이 넘는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 곳은 예일대 재학생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모두 무료로 개방되고 있다.
처음 방문했을 땐 우리도 복잡한 구조에 길을 잃기도 하였지만, 이제는 너무도 익숙하여 외우다시피 한 길을 성큼성큼 걸었다. 2층에 있는 유러피안 아트 European Art 구역. 고대 예술품들이 전시된 곳을 지나 2층으로 이어진 계단을 오른 뒤, 왼편으로 꺾어 방을 하나만 지나면 금세 찾을 수 있다.
바로 이 그림이다.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의 밤의 카페 The Night Cafe. 1888년, 고흐가 아를에 머물던 시기의 작품이다. 좁은 공간 속의 강렬한 색채들로 아주 집약된 불안함이 느껴지는 작품. 가끔 잔뜩 술에 취해서 앉아있던 술집의 남은 공간을 바라볼 때에, 내가 속한 공간인데도 나와는 조금 분리된 듯 묘한 이질감이 느껴질 때가 있는데, 나는 이 그림을 볼 때 어쩐지 그런 상황이 떠오른다.
이미 여러 번, 아주 여러 번 봤던 주제에 언제나 이 그림 앞에만 서면 처음처럼, 다시 또 그 묵직함에 놀라고 만다.
밤의 카페 양 옆으로 고흐의 다른 작품 두 점이 더 있고, 같은 방 안에는 역시나 고흐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고갱의 그림 몇 점도 전시되어 있다.
예일 아트 갤러리를 평일에 찾은 건 처음이었는데 오히려 주말보다 더 붐비는 느낌이었다. 한 중국인 단체 관광객 무리가 있었는데 가이드인 듯한 사람이 이 유러피안 아트 구역의 그림을 하나도 그냥 지나지 않고 아주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부러웠다. 나도 알아들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들 무리가 사라지고 나서 까지, 아주 한참 동안 주변을 서성, 서성대다가 결국엔 시간 탓에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 나오던 길에 찍어본 입구 쪽, 고대 예술품들 구역. 고흐의 그림보다 두층 더 위로 가면 현대 예술 구역이 있는데 그쪽은 매번 올 때마다 전시 내용과 구성들이 바뀌곤 한다. 그런데 이 쪽 고대 예술품은 절대 바뀔 이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날 나가면서 보니 예전에 내가 꽤나 마음에 들어했던 작품이 사라지고 다른 작품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언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언제고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전시실의 모습도 이렇게 신경을 써서 그 내용을 달리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새삼 놀랐다.
대학 시절에 큰 마음먹고 친구들과 3주 동안 스페인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여행의 끝자락, 바르셀로나에 머무를 당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옆에 서서, 이렇듯 거대한 문화를 생활 속에 품고 사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에 대해 한동안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렇게 한참을 바라보고도 이 성당에서 시선을 떼는 몇 초의 순간마저 안타까워 목이 꺾어져라 높이 쳐들고 계속해서 성당을 바라보는데, 이런 성당 따위는 아랑곳없다는 듯이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앞만 보며 걸어가는 주변의 생활인들을 보았을 때 느꼈던 묘한 슬픔도.
그런데 이제는 그때 그 무심해 보이던 그 생활인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이전에 수십 번도 더 그랬던 것처럼 이날 내가 좋아하는 그림 앞을 서성이다가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던 순간에 느꼈던 기분은, 지금이 지나면 일생 동안 다시는 이 곳에 와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절박함으로 거대한 문화를 바라보던 때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처음의 감격은 어느덧 사그라들어 이제는 이 주변을 지날 때마다 저기에 고흐의 그림이 있었지, 하며 생각을 더듬어 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매 순간 내가 그 작품을 바라볼 때면 느꼈던 감동, 마음의 동요, 그 감정과 정서들이 내 안에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고 믿는다. 일부러 고개를 들어 그곳을 바라보지 않는다 해도, 이미 내 안에 잘 만들어진 감정의 덩어리가 그 거대한 문화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고.
바라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 그 문화의 날숨이 자연스레 생활 속에 녹아있고,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그에 대한 나만의 감정을 마음껏 펼쳐낼 수 있다는 것.
모르긴 몰라도 생활 속에 거대한 문화를 품고 산다는 것은 이런 정도의 느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