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의 공원에서, 올 해의 마지막 바비큐를 즐겼다
늦봄? 초여름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꽃향기보다는 풀내음이 그윽해지는 그 무렵부터 장시간 야외 활동은 이제 좀 무리겠다 싶어 질 만큼 쌀쌀한 초가을 정도까지 미국의 공원들은 바비큐를 즐기는 사람들로 아주 붐빈다. 시기로 따지자면 6월부터 9월 정도까지라고 볼 수 있겠다.
의식하지 않고 지날 땐 몰라도 공원에 갈 때마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살펴보면, 한 가족이 식사를 할 수도 있을 만큼 큰 테이블 옆으로 바비큐 그릴이 하나씩 놓여있는 피크닉 구역 Picnic Area이 공원 곳곳에 마련되어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마침 바비큐를 하기에 적당한 시기에 공원을 찾으면 어김없이 모든 바비큐 그릴들이 누군가에게 점유되어서 각양각색의 재료들이 아주 맛있게 구워지는 모습 또한 목격할 수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공원을 찾는 사람들은 아주 다양한데 그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구워지는 재료들도 몹시나 다채로워서 구경하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언젠가 하와이에 갔을 때, 해변을 마주하고 놓인 그릴을 이용해 바비큐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참 재주도 좋다,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미국이란 나라에서 조금 지내다 보니, 이렇게 공원에서의 바비큐가 생활화된 문화 속에 살다 보면 어느 날 마음먹고 이미 놓여있는 그릴을 이용해 바비큐를 즐기는 것은 그리 큰일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나도 언제고 하와이에 다시 가게 되면 와이키키 해변의 저무는 태양을 바라보며 바비큐를 즐겨야겠다 생각하게 될지 모르지.
이런저런 기회로 몇 번을 경험하고 나니, 나 역시 좋은 사람들과 모여 맛있게 즐기는 공원 바비큐를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일 년 중 부담 없이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가 않다.
올해는 다시 신을 일 없을 조리 모양으로 보기 싫게 타버린 발등이 이제는 샤워할 때만 눈에 띄는데, 매번 볼 때마다 올여름도 이제는 정말 끝이구나, 싶어 조금은 쓸쓸해지려던 찰나, 운 좋게도 올해의 마지막 바비큐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때는 시월의 첫 번째 주말. 기온은 지난달 말이 될수록 점점 떨어져 바비큐를 하기에 괜찮을지 의심스러웠지만 마침 바비큐를 하러 가기로 한 그 날은 이상하게도 무척 따뜻해서 하루 중 가장 더울 때는 기온이 30도가 넘을 정도였다.
맨해튼과 뉴저지를 잇는 조지 워싱턴 브리지 George Washington Bridge가 정면으로 보이는, 풍경 좋은 공원의 Ross Dock Picnic Area를 바비큐 장소로 정했다. 한창 바비큐 시즌에는 오전 10시에도 남는 그릴이 없을 만큼 인기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만큼 성수기는 아니더라도 불안한 마음에 조금 서둘러 도착했다.
오전 11시경. 전날까지 비가 내려 내내 불안했는데 다행히 하늘은 흐렸지만 빗방울이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날이 맑아져 지금은 뿌옇게 보이는 저 반대편 맨해튼의 정경이 나중에는 아주 깨끗하게 잘 보였다.
다행히 아직은 아주 여유롭게 바비큐 그릴이 남아있었다. 우리는 남은 곳 중 가장 맘에 드는 자리를 하나 고른 후 나머지 일행을 기다렸다. 그 잠시 동안에도 다른 무리들이 속속들이 도착하여 하나둘씩 그릴들을 차지하더니 곧 공원의 모든 그릴들이 점유되었다.
서두르길 잘했네, 오늘 날씨 좋을 걸 다들 알았나 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이제 열심히 바비큐 준비를 시작해 볼까?
한국에서야 맛 좋은 고기를 숯으로 구워 먹을 수 있는 고깃집이 워낙에 많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곳을 찾기도 힘들뿐더러 찾아도 가격이 몹시 비싸기 때문에, 이런 때가 아니면 좀처럼 숯으로 맛있게 구운 고기를 먹을 기회가 없다. 따라서 우리의 바비큐는 매우 한국식으로 구성되었다.
삼겹살과 목살, 양념된 돼지갈비와 두꺼운 스테이크용 소고기도 한 덩이 준비. 고기와 함께 구울 양파와 마늘, 그리고 버섯도 잊지 않았다. 구운 고기에는 상추와 청양고추도 빠질 수 없지. 집에서 쌈장과 소금, 후추, 그리고 김치까지 알뜰하게 챙기고 덩달아 옥수수를 구울 때 바를 버터까지도 살뜰하게 챙겼다.
한국인의 바비큐라면,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할 라면도 필수! 근처 한인마트에서 공수한 신라면 몇 봉과 냄비, 버너까지 빠짐없이 준비했다. 이만하면 매우 흡족한 바비큐 준비가 아닐 수 없다.
일행이 모두 도착한 후부터 차례로 재료들이 구워지고, 각자 기호에 맞는 음료를 곁들여 말 그대로 즐거운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그래, 이런 게 또 미국 생활의 재미 아니겠어?
눈 앞의 풍경은 부정할 수 없도록 완연한 가을인데, 30도를 넘나드는 유별나게 더웠던 날씨 탓에 이마에는 연신 땀이 흘렀다.
허드슨 강을 바라보며 라면까지 맛있게 끓여먹은 후에는 준비해 온 돗자리를 펴서 조금 눕기도 하고 스낵을 먹으며 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어느덧 이렇게 어둑해졌다. 하루가 정말 금방 가는구나. 아쉬운 마음도 컸지만 그래도 하루 종일 많이 먹고, 많이 마시고, 많이 웃고,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면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한나절 고기를 굽고 났더니, 발등의 탄 자국처럼 여전히 생활 속 이곳저곳에 눅진한 자국을 남기고 있던 여름을 이제는 쿨하게 보내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여름이야 기다리기만 하면, 제까짓 게 별수 있나, 다시 돌아올 수밖에. 공원의 바비큐도 그때 다시!
시월의 어느 날 뉴저지의 한 공원에서, 모처럼 즐겁게 올 해의 마지막 바비큐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