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았냐고 하면, 사실 결코 그렇다고는 하지 못할 만한 날씨였다. 10월의 노르웨이, 심지어 북단에 있는 로포텐의 날씨는 5분 후도 예측이 어려웠다. 태풍 같은 바람과 비가 쏟아지는가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가 났다가, 그렇게 힘겹게 났던 햇살이 무색하게도 또다시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어버리는 날씨. 하지만 'There is no such thing as bad weather, only bad clothing.'이라는 말이 있는 나라에 온 만큼 날씨 탓은 하지 않기로 했다.
'레이네브링겐(Reinebringen)' 하이킹 코스로 유명한 '레이네(Reine)'에 도착해을 때도 휘몰아치는 비바람은 우리 넷을 눈앞의 카페로 등을 떠밀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고소한 커피와 빵 냄새가 실린 공기에 몸이 녹았다. 우리뿐만 아니라 이미 비에 쏙닥 젖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있었다. 커피와 번을 시키고 잠시 앉아서 창 밖을 보는데, 정말 어디서 트롤이나 고블린이 달려 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는 풍경이었다.
은은하게 어두웠던 실내가 갑자기 밝아졌다. 창으로 햇살이 드는데, 사람들이 들뜨는 것이 느껴졌다. 기다렸다는 듯 배낭을 짊어지고 나서는 사람들을 따라, 우리도 얼른 커피를 마무리하고 문 밖으로 나섰다. 어쩌면 오늘 하이킹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약간 했는데, 문을 열자마자 머리채를 잡고 뒤흔드는 바람에 하이킹 생각을 한 내가 바보 같았음을 반성했다.
비에 젖은 바위는 약간의 햇살을 받아 번쩍였다. 주민이 수백 명도 안 될 것 같은 자그마한 마을을 둘러싼 자연이 빚어낸 기암괴석은 이곳에서 전해지고 있을 설화를 궁금케 했다. 그런 와중에도 나와 같이 속수무책으로 바람에 끌려가는 지붕 위 심어진 용도를 알 수 없는 풀을 보며 희미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말 그대로 미친 날씨였다. 그래도 그 덕분에 하루 온종일 무지개를 볼 수 있었으니 그도 그 나름대로 꽤 괜찮은 딜이었다고 본다. 꼭 손에 잡힐 것처럼 선명한 무지개는 그 끝을 따라가면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어린 날 일곱 가지 색깔 크레파스로 힘주어 그렸던 뚱뚱한 무지개처럼 낱개의 색깔을 다 짚을 수 있을 정도로 쨍한 무지개를 보며 '이런 날씨라도 참 좋다.'싶었다.
사는 게 대충 이런 거 아닐까. 앞 날 예측은 고사하고 비바람이 몰아칠 때도 있지만, 그런 날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좋은 커피 한 잔 할 수 있는 거고, 그러다가 또 무지개가 뜰 수도 있는 거고. 바람이 불면 바람막이를 입고, 비가 오면 장화를 신고, 추우면 껴입고, 더우면 벗으며 발 딛고 있는 지금을 즐기고 또 기대하는 것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p.s. 아쉬움이 무색하게도 다음날은 맑은 날씨에 레이네를 조망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