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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페코 Jan 11. 2021

엽서 액자

페코의 라이프스타일 에세이. 짧은 글 05.

집 거실에 걸어둘 아트액자를 고르느라 한참 골머리를 앓았던 적이 있다. 종류와 스타일이 많아도 너무 많아, 전에 없던 선택 오류가 일어난 것이다. 


아트액자는 크게 사진, 드로잉, 그래픽 포스터 3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선택은 오롯이 개인적 취향을 따른다. 그런데 여기서 발생한 문제 하나. 내겐 아트를 즐길 만큼의 취향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트 취향 없는 ‘미대 나온 언니’라니… 믿을 수 없는 팩트다) 보통 이런 경우 그 분야 전문가의 추천이 최선일 수 있지만, ‘미대 나온 언니’의 자존심 때문에 무모한 나와의 싸움을 시작했다. 


‘나의 예술적 취향을 꼭 찾아내고야 말겠어!.’라는 스스로의 다짐. 여러 달 동안 매일 틈만 나면 아트액자를 고르고 또 골랐다. 그런데 이게 웬걸.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선택은 점점 더 힘들어졌는데, 이를테면 이런 이유들 때문이었다. 이름 모를 저가형 그래픽 포스터를 사자니 미대 나온 언니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고, 좋아하지도 않는 유명화가의 그림을 사자니 마음에 내키지 않았고,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 그림을 사자니 왠지 모를 진부한 느낌이 들었고, 몇 가지 마음에 드는 그림은 너무나 비쌌다는 게 현실.


그즈음 공간과 취향을 고려해 그림을 추천해주고 그것을 대여해주는 그림 렌털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엔 (아트를 갈구하지만 아트를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참 많구나’ 싶어 괜한 안도감이 들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아주 잠깐, 그림 렌털 서비스를 이용해 볼까 싶었지만 그마저도 이내 포기.


예술적 취향이 없다는 건, 아직 예술을 즐길 마음의 눈이 없는 것. 때문에 예술적 취향을 억지로 골라내는 것도, 그렇게 골라낸 아트액자를 오래도록 집안에 걸어두는 것도 ‘나와는 어울리지 않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을 가꾸는 일도 나 자신을 가꾸는 일처럼, 내게 어울리는 옷이 따로 있는 법이다. 결국 집에 아트액자를 걸지 않기로 했다.


대신 엽서를 끼울 수 있는 작은 액자를 하나 두고, 이런저런 마음에 드는 엽서를 돌려가며 끼운다. 이렇게 하면 대단한 아트액자 없이도 집안 분위기를 가볍게 바꿔줄 수 있어 좋다. 꼭 엽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엽서 크기의 것이면 무엇이든 오케이. 결혼기념일이 있는 달엔 청첩장을, 선물 받은 포장지가 예뻐 바로 버리기 아까울 땐 포장지를, 감각적인  그래픽 광고지가 있을 땐 광고지를 끼워둬도 좋다. 그 순간 나의 눈이 즐겁다면 그것이 진짜 나를 위한 아트일 수 있다.


집에 꼭 크고 멋진 아트액자가 걸려 있을 필요는 없다. 집에 커다란 아트액자를 걸어두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던 것 또한 무언가를 채우려고 하는 나의 욕심은 아니었는지. 이때 깨달은 교훈 한 가지. ‘그림은 집이 아닌 미술관에서 즐기는 것’.

-end-




@mrs.pe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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