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중순경이 되면 잊지 않고 무화과를 산다. 딱히 무화과를 좋아하기 때문은 아니다. 여름이 끝나고 겨울이 오기 전, 일 년 중 딱 지금 이맘때만 먹을 수 있다는 그 특별함이 나로 하여금 막연히 그것을 찾게 만드는 것 같기도 했다. 제철과일은 무조건 챙겨 먹어야 한다는 나의 생활 룰. 올해도 어김없이 무화과를 샀다.
몇 해 전 과일가게에서 난생처음 생무화과를 마주했을 때 나는 그것이 무언인지 전혀 몰라 한참을 들여다봤었다. 푸릇하기도 하고 불긋하기도 한 낯선 과일. 과일가게 아저씨한테 "이건 무슨 과일이에요?"라고 물어봤더니 무화과라는 것인데 달고 맛있으니 일단 한번 먹어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떤 달콤한 맛일까? 궁금하다 궁금해.'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던 찰나 잊고 있었던 무화과란 이름의 것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오래전 심한 변비에 걸려 한참을 고생하고 있던 내게 변비에 직빵이라며 잠깐 알고 지낸 일본인 친구가 건네주었던 존득한 식감의 그것, 입안에 넣어 씹으면 뭔지 모를 작은 알갱이들이 바사삭 으스러지다가 입안에서 톡톡 터지던 그것, 한알을 통째로 씹으면 단맛이 너무 강해 조금씩 베어 물어 오물오물 질겅 씹어 먹었던 그것이 바로 말린 무화과였던 것이다.
기억 속 말린 무화과는 완전히 샛노랗게 익은 은행열매 같은 모습이었데, 생무화과는 크기가 아주 작은 노지 호박을 닮아 보였다. 먹어는 봤지만 좀체 맛이 기억나지 않는 과일, 보기는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과는 생김새가 전혀 다른 과일. 내게 무화과는 아직까지도 맛보다 생김새가 더 진하게 기억되는 과일 중 하나다.
얼마 전 연남동에서 '어둠 속으로의 여행'이란 전시를 보고 왔..., 아니 경험하고 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로지 소리와 냄새 그리고 손끝의 감각만을 이용해 향의 원재료를 느껴볼 수 있었던 시간. 뭔가 존득한듯 하지만 물컹하지는 않고 둥그런 듯 하지만 동그랗지는 않던 어둠 속 말캉한 무언가, 은은하게 퍼지는 달콤한 향기를 머금은 그것이 바로 (말린) 무화과였다. 향수의 원재료로도 쓰인다는 무화과는 그렇게 낯선 곳에서 맛이 아닌 향으로 내게 또 하나의 기억을 남겼다.
솔직히 나는 아직까지 진짜 맛있는 무화과를 단 한 번도 먹어보질 못했다. 사람들이 말하는 '아주 달고 맛있다'는 무화과는 도대체 어디서 사 먹을 수 있단 말인가. 혹시나 무화과 맛은 원래 이맛(내가 맛본 맛)인데, 내가 너무 대단한 맛을 기대하고 상상한 탓에 맛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툭툭 자른 보통의 맛 무화과에 달콤한 메이플 시럽을 주르륵 뿌려 두세 알을 챙겨 먹고 난 다음다음 다음날,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무화과잼을 만들기로 했다. 일 년 동안에 딱 한 번이지만 생무화과 몇 알을 챙겨 먹고 나면, 그 해 무화과가 품은 자연의 기운을 내가 조금 얻어가는 기분이 들어 좋다.
무화과를 물로 헹궈 잘게 자른 후 설탕 가득 넣어 한참을 졸이면 겨우내 먹을 수 있는 무화과잼이 완성된다. 올해는 무화과를 믹서기로 갈아 덩어리 없는 잼을 만들어야지. 그러면 과육이 씹히는 맛은 없지만 부드러운 발림과 부드러운 식감이 매력적인 잼이 완성된다. (아주 안 파는 것은 아니지만) 시중에서 쉽게 사 먹을 수 없는 무화과잼, 냉장고에 무화과 몇 알이 남아 있다면 지금 바로 잼 만들 준비를 해보자. 무화과의 맛과 향을 조금 더 오래 즐길 수 있도록 말이다.
1) 무화과를 잘게 썰어 냄비에 넣는다.
2) 무화과 중량의 1/2~1/3 가량의 설탕도 담는다.
3) 둘을 섞어 중약불에서 저어가며 서서히 졸인다.
4) 이때 부드러운 잼을 원한다면 핸드믹서로 갈갈.
5) 잼 한두 방울을 찬물에 떨어트렸을 때 옆으로 퍼지지 않으면 딱 알맞은 농도.
6) 불을 끄고 레몬즙을 쪼록 넣어 섞어주면 완성.
7) 열탕 소독한 유리그릇에 담아 냉장 보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