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돌이 Jul 22. 2015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면 환자일 뿐

인성교육진흥법 시행을 지켜보며

2015년 7월 21일 화요일. 오늘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된다. 지난 해 12월 29일 국회 여야 102명이 공동 발의해 199명 전원일치로 통과시킨 인성교육진흥법이 올해 1월 20일에 공포되었고 6개월이 지난 오늘부터 시행되는 것이다.

(국가법령정보센터 - 인성교육진흥법)


세계 최초로 인간의 성품을 국가에서 관리(?)하겠다는 발상은 세월호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승객을 내팽개친 선장과 같은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란다. 인성교육진흥법이 목표로 제시한 8대 가치는 예절 효행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이다. 단순히 말해보자면 저 8개의 가치가 부족해서 학생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천천히 생각해보라. 아이들의 죽음이 아이들의 탓이었는가?


이건 모든 사회적 문제의 책임을 개인의 문제로 되돌리는, 전형적이고 천박하기 그지 없는 기득권의 논리다. 청년 실업? 낮은 임금이 성에 차지 않아 마다하는 젊은이들의 문제. 낮은 출산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팽배한 젊은이들의 문제. 가난? 열심히 일하지 않은 자들. 이런 이야기의 연장선인 것이다.


내가 현재 일선 학교의 교사로서 가장 자괴감이 드는 순간은 아이들에게는 꿈과 미래를 이야기하면서도 교사란 결국 이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정립하고 내면화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이다. 현실이니까, 먹고 살려면, 아직 어려서 등등의 이유를 들먹이며 지금 이 땅의 어른들이 만든 세계에 적응해야함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으니 힘 있는 다수의 의견을 따라야하지 않겠는가. 인문계 고등학교의 고3 담임을 맡으면서 이런 생각은 더욱 자주, 강하게 나를 괴롭히곤 한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들 한다. 그럼 청소년은? 어른의 거울이자 이 사회의 자화상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아이들이 이기적이다? 이 사회가 이기적인 것이다. 아이들이 배려할 줄 모른다? 이 사회에 배려심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사회를 두고 아이들의 인성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건 이율배반에 지나지 않는다.


인성교육진흥법에서 인성평가 결과를 대입에 반영하겠다는 내용이 빠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삼는다. 하마터면 학원에서 인성을 배우는, 세계최초의 어처구니없는 교육이 될 뻔 했다. 이미 대입 수시모집 학생부 종합평가에서 지원자의 '인성'은 평가항목 중의 하나이다. 자기소개서와 학교생활기록부에서 본인의 인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학교와 학원에서 다양한 '꼼수'를 이용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는 걸 감안하면 생각보다 더 큰 문제를 야기할 뻔 했다.


무엇보다도 저 법이 무서운 건 지금도 순종적인 학생들이 더더욱 이 사회 기득권들의 목소리에 아무런 저항없이 순종하기를 강요한다는 점이다. 어른들의 불합리한 점을 지적하는 건 '예절'에 어긋난다. 결국 아이들은 입다물고 어른이 시키는대로 하게 되지 않을까? 벌써 그렇게 지내고 있긴 하지만 더욱 격렬하게 무비판적인, 순종적이기만 한 이들이 되는 것은 아닐까.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말이 아이들 사이에서도 꽤 인기있었다. 특히 입시 준비에 지친 아이들이 위안을 얻는 말로 손꼽기도 했는데 대부분 현재의 고통을 자신이 마땅히 겪어야 하는 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아이들에게 너희는 아무 잘못없다고, 너네가 도대체 뭘 잘못했길래 힘들어야 하냐고, 너희가 힘든 건 어른들의 탓이고 나도 그 어른 중의 하나인지라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했다.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우리 나라의 교육이 문제라고들 한다. 숱한 이유를 거론하지만 학교현장에서 가장 뼈저리게 느끼는 건 지나치게 근시안적인 정책들이 교육을 망치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사회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학교에는 공문이 내려오고 새로운 정책이 시행되고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입시 제도가 바뀌고 수업이 달라져야 한다. 왜 아이들이 고통받는지, 그 고통의 근원에 대한 진지한 물음과 해답을 찾기 위한 진지한 성찰은 생략되고 눈앞에 닥친 현안을 덮기에 급급한 것이다.


아프면 병이 있는 것이고 질병의 원인을 찾아 치료해야 다시 재발하지 않는다. 지금 이 땅의 아이들이 아프다면 그건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좀 어른들이 알아야 하지 않나. 얼마나 더 오랫동안,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아파해야 어른들이 스스로를 반성하게 될지 나는 전혀 알 수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선택을 앞둔 아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