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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돌이 Feb 12. 2016

흐르는 강물처럼, 바다를 향해!

드디어, 졸업!

며칠 전 우리 반 학생들이 무사히 졸업했습니다.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대한민국의 고3 시절'을 함께 보냈기 때문일까요. 무덤덤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복잡한 감정이 마음을 흔듭니다. 3월의 첫날, 저를 바라보던 그 눈빛들, 긴장하다 못해 비장하기까지 했던 그 눈빛들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이제는 담임에게 농을 던질 정도가 되어버렸지만요.


'흐르는 강물처럼'. 올해 저희 반 급훈이었습니다. 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에서 빌려왔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온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는 대사를 아이들에게도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이 급훈을 고르면서 아이들에게 강조했던 한 해 학급 생활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고3 시기를 보내는 동안 흐르는 강물처럼 평상심을 유지하자는 것과 또 하나는 학급 친구들과 가족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지내자는 것이었습니다. 


담임을 하면서 안타까운 일 중의 하나가 성적에 지나치게 예민한 학생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특히 고3이라면 더더욱 자주 보게 되죠. 또는 정반대로 공부에서 아주 손을 놓아버리는 모습도 종종 있는데 가슴 쓰린 모습인 건 마찬가지입니다. 성적이 잘 나오면 잘 나오는 대로, 안 나오면 안 나오는 대로 이 맘 때의 아이들에게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한 발자국씩 나아가기 위해선 그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게 중요합니다.


게다가 고3 학생들을 괴롭히는 건 단순히  성적뿐만이 아닙니다. 부모님의 지나친 기대 혹은 무관심에 부대껴야 하고 1, 2학년 때부터 이어져온 친구들과의 불편한 관계도 극복해야 할 요소입니다. 이건 성별에 따라 조금 다르게 드러나는데, 여학생들은 부모님의 관심을 더 원하고 친구들과의 관계에 더 예민합니다. 반면 남학생들은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친구들과 어울려 너무 놀기만 하는 경우가 있죠. 어느 쪽이든 개인차는 있겠지만 학생들의 마음을 괴롭히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얼마나 강물 같은 마음을 간직할 수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들 무사히(!) 졸업하게 된 것을 보면 큰 문제는 없지 않았나 싶다가도, 끝내 졸업식장에 나타나지 않은 두 명의 아이를 생각하면 또 마음이 시립니다.


대입에 실패했다는 이유였을까요. 사실 입시에 '실패'라는 말도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은데 여기엔 참 여러 가지 사회적인 조건들이 달라붙어 있어서 여간 머리가 아픈 게 아닙니다. 고3 담임을 맡으면서 언제나 머리 속에 떠돌고 있는 근원적인 질문 때문인데, '내가 잘 하고 있는 건가,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을 줄곧 하게 됩니다.


사회생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으니 열심히 살고, 혹시 너무 힘들더라도 자책하진 말아라. 너희들 잘못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상위권(이 말도 참 웃기긴 합니다만) 대학, 커트라인 점수가 높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얼마나 더 도움이 되는지,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과감하게 제시할 순 없는지 늘 담임으로서 고민하게 됩니다.


아마도 올해 그 두 명의 아이들에게 저는 해답을 보여주지 못했나 봅니다. 대입 결과에 상관없이 졸업을 축하하며 고등학교에서의 생활을 되돌아보고 추억해볼 시간을 마련하기를 바랐지만 그건 결국 저만의 욕심이었나 봅니다. 어쩌면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고통을 처음으로 실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언제쯤이면, 졸업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십여 년 가까이 담임을 해오면서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은 우리 반 아이들을 보게 된 건 처음인지라 참 복잡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괜히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되구요.


'이런 사회에서 살게 해서 미안하다. 이 땅에서 같이 살고 있는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너희들에게 미안하고, 할 말이 없다. 쉽지 않겠지만, 기운 내라. 너희들은 잘 해왔고, 잘 해나갈 테니까. 고3이 힘들었다면 담임의 탓이고, 사회생활에 뭔가 걸림돌이 있다면 그건 어른들의 탓이다.'


거의 매 년 마지막 인사로 하는 말입니다. 올해에도, 제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고3 담임을 맡게 되었는데 아이들에게 미안하지 않으려면,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저 시간이 흐른다고 경험 많은 좋은 교사가 되기란 어렵겠지요. 3월이 되기 전, 올해 저의 숙제부터 하나씩 해결해나가야겠습니다. 저 바다를 향해 나아간 제자들에게 부끄러운 교사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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