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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돌이 Mar 25. 2019

스카이 캐슬이 남긴 것

그토록 열광하던 애청자들은 왜 사라졌는가

수많은 유행어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JTBC 드라마 ‘SKY 캐슬’의 마지막회가 방영된 지 벌써 두 달 가까이 지났다.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1회를 본 내가 아내에게 적극 추천했고 이후 우리는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밤11시가 되면 티비 앞에 모여 앉았다. 요일과 시간을 따져가며 드라마를 기다린 건 아마도 TVN의 ‘나인’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며 잔뜩 기대를 했고 우린 충분히 열광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일찍 끝낼 정도였고 혹여 놓친 날이면 다음날 재방송을 볼 때까지 서로에게 스포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며 인터넷 뉴스나 커뮤니티의 게시글도 잘 보지 않으려 할 정도였으니 우리가 얼마나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과감한 설정과 사건, 빠른 전개, 감각적인 화면 구도와 적절한 배경음악, 모든 단점을 상쇄할만한 연기자들과 그들의 연기력이 어울려 한국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드라마가 나왔다고 생각했다. 첫회부터 매료된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최근 고3 담임을 연달아 맡은 내가 볼 때 엄청나게 사실적인, 작가가 꽤나 공들여 조사한 것 같은 느낌의 설정과 대사들 때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듯, ‘스카이캐슬’은 상류층 사람들의 자식 교육 이야기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교육만한 것이 없음을 잘 알고 있는 ‘높으신 분들’은 자식 교육에 온힘을 쏟는다. 복잡해질대로 복잡해져버려서 정보가 곧 입시 성공의 열쇠가 된 오늘날, ‘고액 입시 코디네이터’는 그들의 욕망을 충실히 현실에서 재현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상류층에 대한 궁금증과 그들의 적나라한 욕망을 바탕으로 약간의 코미디를 섞는다는 점에서 ‘밀회’(JTBC)나 ‘풍문으로 들었소’(SBS), ‘품위 있는 그녀’(JTBC)와 유사해보였지만 드라마의 만듦새가 꽤나 훌륭해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지막 회가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스카이 캐슬에 등장하는 모든 가정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큰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던)은 그들 모두에게 각자의 캐릭터를 만들어주었음에도 악인과 선인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점이다(라고 생각했다), 전형적이지 않은, 말 그대로 입체적 인물들이 현실의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들 이야기였고 이 드라마의 묘미였다.


특히 어릴 적 아버지의 기대를 한껏(!) 받고 자랐던 나는 차민혁에게서 아버지의 향기를 느꼈고, ‘설마 저렇게까지 말하는 사람이 있겠어?’라는 아내에게 ‘우리 아버지가 딱 저랬지.’라고 말하며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었다. 강렬한 차민혁의 자식 교육은 그 자체로 공포스러웠고 현실의 일부 아버지들의 모습을 충실히 재현한 것이라 믿었다. 수한이네는 언제나 유쾌했지만 공부하라고 윽박지르다가도 그 모습이 가여워 안아줄 수 밖에 없는, 수많은 부모들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한서진, 아니 곽미향은 자신의 욕망 앞에 더없이 솔직한 사람이면서도 자식에 대한 사랑은 누구못지 않은 엄마였다. 이수임과 그 가족은 가장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다가 그 또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임을 재확인시켜준다.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김주영을 둘러싼 검은 비밀이 하나씩 드러날수록 몰입감은 커져 갔고 피디는 엔딩 장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우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이 드라마는 우리 모두가 당면한 입시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 동안 숱한 드라마들이 우리 나라의 교육 문제를 다루었지만 대동소이했고 결국 실망만 안겨주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처럼 아예 청소년 드라마를 표방한 경우는 둘째치더라도 ‘여왕의 교실(MBC)’이나 ‘강남엄마 따라잡기(SBS)’처럼 대부분 ‘꿈을 향해 노력해!’라고 말하는 척 하면서 정작 대입과 관련된 현실의 문제는 외면하는 드라마가 많았다.


‘스카이 캐슬’에 거는 기대감이 회를 거듭할수록 커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스카이캐슬은 기존의 숱한 드라마들이 빙 에둘러 말했거나 애써 외면했던 입시 문제와 그 이면의 욕망을 직접 건드리면서 속도감 있게 치고 나갔다. 그 출발이 신선했기에 근사한 도착을 기대했던 건 무리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말하자면, 마지막 회를 포함한 드라마의 후반부가 오히려 드라마 전체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모든 악인들의 개과천선으로 정리할 수 있을 드라마의 결론은 결국 오늘의 우리들에게 어떠한 새로운 의미도, 질문도, 비판도 던지지 못했다. 좋은(?) 대학에 입학해야할 이유는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욕망 때문인데 그렇다면 그 욕망이 왜 우리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지 보여주어야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모르는 이가 누가 있나. 그런 사회가 과연 옳은 사회인가. 스카이캐슬은 이 지점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는 듯 하다가 후반에 이르러 길을 잃었다. 아니 오히려 잘못된 길, 그저 뻔한 드라마의 흔한 결말로 끝맺었다. ‘모두가 반성하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대요’로 끝나는 동화처럼.


자녀 교육에 일생을 걸기도 했고, 죽음을 각오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부은 이들이 하루 아침에 반성을 하고, 하루 아침에 회개를 하고,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지난 날을 되돌아보며 담소를 나눈다는 게 오히려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어쩌면 나는 이 드라마를 통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남는 것 같기도 하다. 애초에 작가와 피디는 그런 결말을 생각하고 있었을테니.


불과 이십여 년 전만 해도, 청소년의 자살은 9시 뉴스 메인에 등장할만큼 큰 사회적 충격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에도 몇 명씩 자살하고 있다고 한다. 그 동안 어른들은 무엇을 해왔는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제목의 영화가 개봉한 것은 1989년. 2019년 오늘날의 고등학생들도 행복은 성적순임을 알고 있다. 그 동안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해왔는가. 고등학생들에게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라”라는 말은 “네가 하고 싶은 괜찮은 직업을 찾은 뒤 나중에 학종에 써먹을 만한 꺼리들을 좀 만들어두라”라는 말과 같아진 지 몇 해가 지났다. 왜 이렇게 어른들은 모두 비겁한가.


대학이 문제인가? 입시가 문제라고? 아니. 절대로.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이들과 대학을 졸업한 이들의 삶의 질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때, 우리의 아이들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문제가 먼저 해결되지 않는 한, 그 차이를 좁히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한, 모든 노력은 결국 다시 아이들을 힘들게 만들 뿐이다.

평등하지 않은 사회에서 평등을 가르치려 하는 교육은 위선이므로...


스카이캐슬은 그렇게 모든 문제를 여전히 개인의 도덕으로 해결함으로써 그 동안의 흔한 드라마들과 다를 바 없는, 아니 오히려 용두사미의 끝판왕이 되어 버렸다. 그 정도로 대한민국을 뒤흔들던 드라마였음에도 불과 한 달여 만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린 건 그만큼 사람들의 허탈함이 컸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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