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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돌이 Apr 20. 2019

중간고사를 앞둔 너희들에게

어서 와, 상대평가는 처음이지?

고등학생이 된 지도 벌써 2달이 넘어가는구나. 어땠어? 생각보다 재미있게 지내는 사람도 있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게 지내는 사람도 있는 것 같구나. 내가 더 놀라운 소식을 알려줄게. 너희 조금 있으면 중간고사 시작이다?


우리 때는 중간고사, 기말고사라고 불렀지만 너희는 1차 지필고사, 2차 지필고사라고 한다며? 사실 대부분의 일반고에선 중간고사, 기말고사라고 해도 되지만 일부 자사고 같은 곳에선 시험을 3번 보기도 한대.


그나저나 너희들 상대평가는 처음이라며? 초등학교 때는 제한 시간 안에 누가 더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는지를 겨루는 시험 자체가 없었으니까. 중학교 때 시험이란 걸 치러보긴 했지만 절대평가였잖아. 이제 너희도 고등학생이 되었으니까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내신 9등급제’를 경험하게 될 거야. 각자의 성격이나 학업성취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도 굉장히 불쾌한 경험이 될 가능성이 많지.


절대 평가는 너희들 개개인의 역량을 평가해. 초등학교 때의 잘함, 보통, 못함의 단계를 A, B, C, D, E 5단계로 세분화한 게 중학교 방식이지. 너희들의 부모님이나 삼촌, 이모들은 ‘수우미양가’라고 하면 한방에 알아들으실 거야. 절대 평가는 개개인의 역량이라고 말했지? 그러니까 너희 반 친구들이 모두 국어를 잘한다면 모든 친구가 A를 받을 수도 있어. 반대로 모두 국어에 관심이 없고 공부도 안 했다면 모두 E를 받을 수도 있지.


하지만 상대 평가는 달라. 한 마디로 ‘줄 세우기’라고도 해. 상대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다른 사람보다’ 잘해야 해. 뭘 잘하냐고? 당연히 문제 풀이지. 주어진 시간 동안 시험지의 문제를 얼마나 빨리, 얼마나 정확하게 푸느냐, 그게 관건이야. 전교생을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운 다음 인원 비율에 맞게 1등급부터 9등급을 정해줘. 1등급을 받으려면 전체의 4%에 속해야 돼. 전교생이 100명이면 4등을 해야 한다는 소리야. 일반적인 고등학교의 경우 한 학년을 300명으로 생각해보면 전교 12등 안에 들어야 1등급이란 소리지. 이제 좀 감이 오려나? 상대평가에서는 모두가 1등급, 모두가 9등급 같은 게 나올 수 없어. 동점이면 어떻게 하냐고? 너희들의 고등학교에는 성적관리규정이란 게 있는 데 거기에 동점자가 나오면 어떻게 처리할지 적혀있어. 많은 학교들이 동점자를 피하기 위해서 한 문제당 점수 배점을 소수점 단위로 해. 시험지를 받아보면 알게 될 거야.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동점자끼리 순위를 정하도록 되어있어. 그래도 동점이 많이 나오면 어떻게 하냐고? 그럼 다시 예를 들어줄게. 전교생이 100명이면 4등까지 1등급이라고 했지? 그런데 100점을 받은 학생이 10명이 되어버리면? 수능과 내신이 계산하는 게 달라. 수능은 이런 경우, 모두 1등급을 줘. 백분위와 표준점수가 표시되니까. 1등급이지만 표준점수가 좀 낮아질 거야. 하지만 내신은 달라. 모두 2등급이 되어 버려. 내신 부풀리기를 막기 위해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어.


너희들이 1학년인 2019년 올해, 너희 선배들과 너희의 입시제도가 다를 거야. 심지어 2학년과 3학년도 다르니까. 그래서 지금 너희가 고3 선배들의 입시 준비를 보고 흉내 내는 건 큰 도움이 안 될 거야.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는 정시 비중이 조금 확대될 거라는 정도니까. 하지만 여전히 내신 등급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그래서 처음 상대평가를 경험할 너희들은 많이 불안할 거야.


몇 해 전, 고등학교에서도 절대 평가를 도입해보려는 움직임이 있긴 있었어. 성취평가제라는 이름으로. 실제로 지금 고등학생들의 학교생활기록부에 나오는 성적은 등급 외에 성취도도 함께 표시되고 있지. 대입에서도 활용해보려고 했지만 유명무실해지고 있는 상황이야. 대학 측에선 우수한 학생을 뽑고 싶어 하는데 절대평가제에서는 그걸 판단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거든. 몇 년쯤 뒤에 성취평가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려고 할 테고 고교학점제도 같이 시행될 거야. 그때쯤이면 대입 제도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지겠지. 이건 뭐 너희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 중간고사를 앞둔 너희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 외에 달리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이런 압박감을 벌써부터 겪게 만든 우리 어른들이 많이 미안해. 하지만 조금씩이나마 노력해볼게. 너희도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 부당한 방법을 생각하거나 친구를 버리는 일은 없었으면 해. 너희가 힘들어지는 건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제도 때문이지 옆자리 친구 탓이 아니니까.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면, 대학을 나온 사람과 나오지 않은 사람의 소득 수준이 크지 않다면 너희 또래는 지금보다 훨씬 스트레스가 줄어들 거야. 그런 세상이 되기 전까진 누구나 ‘취직 잘되고’, ‘누구나 알고 있는’, ‘서열 높은 대학’을 선호할 테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너희들은 경쟁의 압박 속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해야 할 거야.


너희들을 줄 세우면 대학 입장에서는 편해. 너희들도 어느 대학을 지원할 수 있을지 정보가 공개되면 차라리 속 편한 면도 있어. 선생님들도 ‘이 정도 성적이면 어디 어디 지원할 수 있어’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으니 상담도 간결해질 거야. 하지만 이렇게 되면 다시 과거처럼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겠지.


줄 세우지 않는다면? 대학 입장에서는 학생 선발에 어려움을 호소해. 선생님들은 너희 성적으로 어느 대학에 입학할 수 있을지 알 수 없게 돼. 너희들도 객관적이고 숫자로 된 정보로 대학 입학을 결정할 수 없으니 답답하게 될 거야. 내 점수로 대입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상황도 어마무지한 압박감을 주게 될 거야.


정책을 결정하는 어른들이 진심으로 너희를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아는 좋은 어른들이라면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을 충분히 고민하고 여러모로 살펴보면서 대안을 제시하게 될 거야. 비록 너희들은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했겠지만... 그래서 나는 너희가 지금 겪는 일들이 너무 힘들다고 해서 모든 걸 부정해버리거나 너무 착하게 살아서 모든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빌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넓은 세상에서, 더 좋은 세상이 되려면 어떤 고민들이 필요할지 생각해볼 수 있는 사람, 너희들의 자리에서 각자 충분히 고민하고 실천하고 투표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고등학교 시험에선 점수가 중요한 게 아니야. ‘등급’이 중요해. 그리고 등급은 ‘학기말’에 정해져. 중간고사 점수와 기말고사 점수 그리고 수행평가 점수까지 더해서 매겨지는 게 등급이거든. 그래서 100점을 받아도 1등급이 안 나올 수 있고 50점을 받아도 1등급이 될 수 있는 거지. 이번 중간고사 열심히 준비하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마. 너흰 이제 시작이잖아. 그리고 등급이 낮은 사람도 반드시 나오게 되어있어. 그건 너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을 뿐이니까 너무 낙심하지 않았으면 해.


다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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